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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최애돌이 알고보니 날 짝사랑한 순정남? '선재 업고 튀어'

팬심과 첫사랑의 결합이 만드는 '싱숭생숭 시너지'…센스 있는 각색으로 원작 초월 평가

2024.04.25(Thu) 10:25:51

[비즈한국] 살면서 한 번도 아이돌의 팬인 적이 없다. 나 자랄 땐 누군가의 팬이 아니기가 힘든 분위기였다. 선글라스 낀 심신으로 시작해 서태지와 아이들, H.O.T.와 젝스키스, 신화, NRG, 태사자, S.E.S.와 핑클, god 등 학창시절 반에선 누군가의 팬이 아닌 사람이 드물었다. 그 속에서 나는 고고하게 박경리를 읽던 ‘문청’이었고, 어느 정도는 한심한 눈으로 팬질하는 친구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러니 나는 팬의 심리를 모른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감사를 표하는 마음을 모르겠다. 연애 상대를 대하는 것과 스타를 대하는 팬의 심리는 닮은 듯 또 다를 테니까. 그런 내가 요즘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를 덕질하고 있다. 늦바람은 무섭다. 드라마 본방, 재방은 물론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편집본을 샅샅이 훑고 있다.

 

열아홉 살에 의문의 사고로 두 다리가 마비된 임솔. 라디오 방송에서 연결된 아이돌 스타 류선재에게 위로를 받은 임솔은 절망을 딛고 그의 팬이 된다.

 

‘선재 업고 튀어’는 팬의 마음을 완벽하게 저격한다. 사고로 다리가 마비된 임솔(김혜윤)은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 자신을 위로하며 살게 해준 아이돌 스타 류선재(변우석)의 열성 팬이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류선재가 죽어버린다. 자살 혹은 쇼크사로 추정되는 죽음. 그 순간 류선재의 죽음에 절망하던 임솔은 선재가 스타가 되기 이전인 2008년의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최애’ 류선재를 살릴 수 있는 꿈 같은 타임슬립. 팬이라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타를 살리려 애쓸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선재 업고 튀어’가 스타와 팬의 심리 또는 성공한 덕후가 되는 스타와 팬의 연애에 집중했다면 나 같은 ‘팬못알’들은 심드렁했을지 모른다. 스타와 팬 사이, ‘선재 업고 튀어’는 한국 드라마 팬들이 죽고 못사는 첫사랑 서사를 삽입해 아련한 감정을 한껏 키운다. 임솔과 류선재는 과거 이웃한 고등학교를 다닌 1990년생 동갑내기인데, 알고 보니 둘은 서로 마주한 집에 살았던 이웃사촌이었고, 알고 보니 류선재는 이미 임솔에게 한눈에 반해 짝사랑하는 상태였으며, 알고 보니 그 짝사랑을 장장 15년이나 지속해 온 순정남이었다는 서사.

 

그룹 이클립스의 멤버인 류선재는 은퇴를 결심하고 콘서트를 치른 이후, 2023년 1월 1일에 죽음을 맞는다. 자살인지 실수로 인한 쇼크사인지 혹은 제3의 인물이 그의 죽음 뒤에 있는지 아직 알 수는 없다.

 

개인적으론 첫사랑 서사, 특히 지고지순한 첫사랑 만능주의 서사를 싫어하는 편이다(‘눈물의 여왕’에서 운명적 사랑의 양념으로 서로가 첫사랑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학을 떼고 있는 중). 그러나 제 아무리 유치하고 비현실적인 첫사랑 서사여도 시청자와의 공감에만 성공하면 그것은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반박할 수 없는 절대반지 같은 존재가 된다. 요는 공감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누구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알싸한 첫사랑의 심정을 진득하게 공감시키며 스타와 팬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물론, 타임슬립물의 허술한 설정에 대한 비판마저 비껴가게 만든다.

 

드라마에선 비 오는 날 우산이 등장하는 신이 유독 많이 나온다. 류선재가 처음 임솔에게 반한 장면에도, 30대의 임솔이 스타 류선재를 처음 마주하는 장면에도, 열아홉으로 되돌아간 임솔이 류선재와 가까워지는 장면에도 우산이 등장한다.

 

이 공감엔 주연을 맡은 김혜윤과 변우석의 존재가 주효했다. 사고를 당해 온 세상을 등지고 싶은 상처 입은 얼굴의 임솔부터, 팬심을 기반으로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임솔, 15년 전으로 돌아가 열아홉 살이 된 임솔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김혜윤의 연기는 시청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팬심은 아니어도 우리는 삶의 힘든 순간에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지해 극복한 경험들이 있고, 누군가를 좋아할 때 한없이 무모하게 군 경험들이 있다. 김혜윤은 그 말간 얼굴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우리의 지난 경험들을 환기시킨다. 게다가 김혜윤이 인형처럼 예쁜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라는 점도 시청자의 공감에 큰 몫을 한다(우리 대다수는 인형처럼 예쁜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잖아).

 

류선재가 음료수를 받아먹으며 자연스러운 플러팅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밖에 들킬세라 류선재의 입을 맞는 임솔의 모습 등 첫사랑 서사를 보여주는 학원물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극강의 ‘심쿵’ ‘숨멎’ 포인트가 한 아름이다.

 

드라마 ‘청춘기록’과 영화 ‘20세기 소녀’ ‘소울메이트’로 첫사랑 재질의 라이징 스타로 시선을 끌었던 변우석은 ‘선재 업고 튀어’로 ‘확신의 로코·멜로 남주’ 자리를 꿰찼다. 188cm의 큰 키에 드넓은 어깨, 하얀 피부에 아련함과 순수함을 탑재한 눈빛, 믿음직한 남성미와 안아주고 싶은 소년미의 그것을 동시에 담고 있는 변우석에게 반하지 않기란 힘들다. 이전의 작품에서도 훈훈한 미모와 피지컬은 돋보였지만, ‘선재 업고 튀어’는 아마도 오랜 시간 그의 인생작이 될 만큼 변우석의 장점을 120% 활용한다. 류선재가 촉망받던 수영선수 출신이란 점을 활용해 대놓고 빈번하게 노출신이 등장하지만 변우석의 상큼함이 더해져서 보는 이들은 음흉함을 덜어내고 맘껏 그의 피지컬에 탄복할 수 있다. 류선재가 큰 손을 살며시 떨며 임솔을 부드럽게 안을 때면, 보는 이들마저 주책 맞게 심장이 찌르르한 느낌을 받는다(설마 협심증은 아니겠지).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우산 신은, 강동원의 레전드 우산 신에 맞먹을 만큼 치명적이다. 

 

‘선재 업고 튀어’는 과거로 돌아가 사건을 막으며 미래의 운명을 바꾸려는 여주인공과 그 여주에게 반하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남주인공의 모습이란 점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와도 흡사한 부분이 많다.

 

센스 있는 각색도 ‘선재 업고 튀어’의 인기 요인 중 하나. ‘’선재 업고 튀어’는 김빵 작가의 인기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원작으로 했지만 타임슬립한 팬이 스타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기본 설정 외에 많은 부분을 각색해 몰입도를 높인다. 첫사랑 서사는 물론이고, 6년 전으로 타임슬립한 원작과 달리 무려 15년 전의 과거로 타임슬립하는 것으로 설정해 싸이월드, 2008 베이징 올림픽 등 그 시대 감성을 소환하며 10~20대는 물론 80년대 후반~90년대생들의 시선을 붙든다. 류선재가 신경 쓰이는 사랑의 라이벌 김태성(송건희)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했다가 ‘****번째 방문자 이벤트’에 당첨돼 경악하는 장면을 보며 그 시절 흑역사를 새록새록 떠올린 이들이 한둘이 아니리라. 임솔의 사고와 류선재의 죽음 뒤에 있는 범인의 존재를 쫓는 스릴러적 요소와 타임슬립으로 인해 운명이 어떻게 뒤바뀔지 추측해보게 만드는 판타지 요소도 극을 쫄깃하게 만든다.

 

‘SKY 캐슬’ ‘어쩌다 발견한 하루’ ‘어사와 조이’ ‘불도저에 탄 소녀’ 등 차곡차곡 존재감을 키워온 김혜윤과 ‘청춘기록’ ‘20세기 소녀’ ‘소울메이트’ ‘힘쎈여자 강남순’으로 라이징 스타의 면모를 키워온 변우석. ‘선재 업고 튀어’는 오랜 시간 두 사람의 인생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재 업고 튀어’의 시청률은 3%대이지만 화제성은 ‘눈물의 여왕’의 뒤통수를 칠 만큼 폭발적이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4월 2주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조사 결과에서 4만2393점으로 최근 1년간 방송한 TV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첫 주 화제성 점수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화제성은 마찬가지로,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방영 첫 주 전 세계 133개국 1위에 올랐다. 16부작에서 이제 6회를 끝냈으니 아직 덕질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남은 시간 동안 내 심장이 이 찌르르한 감정을 잘 견뎌주길 바랄 뿐.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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