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요즘 TV 채널을 잽핑하다가 무심코 느끼고 깨닫게 된 하나.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예능 프로그램에 정말 많이 출연하는 이가 방송인 서장훈이라는 거다. 대한민국 농구계에 ‘국보급 센터’로 불리며 농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레전드 선수였던 그였는데, 그의 이러한 방송 맹활약을 보면서 그는 방송 또한 농구처럼 맹렬히 성실하게 하는구나 싶었다.
서장훈이 TV를 켤 때마다 자주 보이길래 도대체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건가 싶어 현재 그가 출연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검색해서 헤아려 봤다. 따져보니 본방 사수 기준으로 1주일간 우리가 서장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은 주 7일 중 6일. 월요일에는 KBS JOY의 ‘무엇이든 믿어보살’, SBS ‘동상이몽’, 화요일에는 KBS JOY의 ‘연애의 참견’, 수요일은 MBN ‘고딩엄빠 4’. 그리고 목요일에는 JTBC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 AXN ‘풀어파일러 4’, SBS ‘덩치 서바이벌_먹찌빠’까지 무려 3개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금요일 하루 딱 건너뛰고, 토요일엔 다시 JTBC ‘아는 형님’, 일요일은 SBS ‘미운 우리 새끼’까지, 1주일 동안 출연하는 프로그램만 총 9개다. 그리고 이 중 프로그램 몇 개는 무려 5년에서 8년이 넘게 진행하는 장수 프로그램이라는 사실 또한 꽤 놀라웠다.
가장 최근 그의 활약상을 눈여겨 보며 확인한 프로그램은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JTBC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이였다. 이혼을 고민 중인 부부들에게 이혼 숙려 및 조정 기간을 가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서장훈은 그 캠프의 소장 및 가사 조사관의 역할을 하면서 부부들의 문제점과 갈등의 원인을 날카롭게 파악하며 진행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방송 1~2회차에는 다단계 네트워크 사업에 빠져서 남편과 이혼의 위기에 놓인 아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말 안되는 다단계 사업에 빠져서 3년간 단 한 푼의 돈도 수익화하지 못한 아내에게 그녀가 하는 그 사업이 얼마나 말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서장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건 방송 안 나가도 상관없다”라며 “이건 제가 개인적으로 000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부자 되려고 하는 거냐. 안 된다. 절대! 될 수가 없다. 돈을 벌기 위한 기본 바탕이 뭐냐. 땀이다. 내가 힘들게 노력하고 내 몸을 써서 나오는 그 땀이 없으면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라며 아내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는 뒤이어 “난 진짜 내 인생을 농구에 갈아 넣었다. 여러분이 소주 깔 때, 개판 치고 이럴 때 나는 엄청 뛰었다(해당 프로그램 회차에 알콜중독증 남편과 막말하는 남편 출연 회차여서 이런 말이 나옴). 숨이 꼴깍 넘어가도 ‘나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뛰었다. 그랬으니 이 정도 모을 수 있던 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다. 돈은 요행으로 벌리지 않는다. (요행으로는) 부자가 되지 않는다.” 서장훈은 이렇게 자신의 과거사까지 언급하며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아내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팩폭’했다.
그런데 그의 쓴 말이 여기에서 끝났으면 독설만 시원하게 잘하는 진행자구나 싶었을 텐데, 그는 아내가 해당 다단계 사업에 뛰어들게 된 현실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남편에게 생활비로 어느 정도의 돈을 받았는지를 물어본다. 그 금액으로 빠듯한 독박육아하면서 살림살이를 해내야 했을 아내의 힘든 입장도 두 부분의 문제 사이에서 분명 살펴봐야 한다며, 아내의 입장 부분까지 헤아려 정리해 진행한다. 방송 초창기에도 입담 좋은 서장훈이었는데, 방송 생활 10년이 넘은 그의 진행능력을 보면 그 사이 정말 무섭게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순간 방송계로부터 이토록 지속적인 러브콜을 받는 서장훈이 대중들에게 각광받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서장훈과 ‘무엇이든 물어보살’과 ‘연애의 참견’을 함께 해온 KBS의 임용현 국장의 말에 따르면, 방송인 서장훈의 최대 강점을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독한 말을 하면서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점”을 꼽았다. 여기에 더해 그는 “최대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하는 진행자”라고 표하며,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했다.
농구를 할 때도 무척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플레이를 했던 그의 성향 때문일까. 지금의 자리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던 프로그램들의 초창기부터 그는 자신의 의견을 요구하는 출연진들에게 ‘팩트 폭격’에 가까운 뼈 때리는 말들을 사이다처럼 잘 해내서 주목받았더랬다. 그의 그러한 통쾌한 발언은 듣는 이의 감정도 움직였고, 시청자들의 공감지수도 함께 올리는 역할을 해왔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놓치지 말고 짚어봐야 할 부분은 서장훈이 방송의 재미를 위해 뼈 때리는 독설을 했어도 그가 하는 말에는 상식이 있고, 논리가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그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출연진들에 대한 서장훈식 조언과 위로는 차갑고 씁쓸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위로가 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에 있다. 그 현실 자각을 위해 조금 독한 말을 하지만, 그 매운 말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하게 만들고, 다시 또 용기 내어 걷게 만드는 시작의 초석이 된다. 무엇보다도 상대를 위해 성심을 다해 말하는 서장훈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이 말하는 ‘말의 진위’는 단순한 독설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당신이 누군가에게 조언 혹은 위로하려는 영역에서 본인이 서장훈처럼 성심을 다했던 사람이라면, 정말 아끼는 누군가에게 조언 혹은 위로할 때 방송인 서장훈처럼 말해 보면 어떨까. 앞에 있는 이의 말을 진중하게 경청하되,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따뜻하고 달달한 말 보다는 그 사람이 현실이라는 땅 위에 딛고 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말을, 맵더라도 조금은 제대로 표현해 보자. 상대에겐 조금은 매울 수도 있는 그 말이, 상대를 위해 얼마나 고민하며 생각해 낸 말이라는 것을 함께 표현할 수 있는 진중한 태도까지 서장훈처럼 보태진다면, 매운 말에 대한 오해도 덜어지는 위로와 조언이 될 것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베베스킨 라이프’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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