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현대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있다. 바로 ‘바나나’다. 하얀 벽에 덩그러니, 노란 바나나를 덕테이프로 붙여놓은 작품. 작품이 맞나 싶지만, 놀랍게도 1억 원짜리 바나나다. 관람객으로 온 다른 행위예술가가 바나나를 떼어 먹어버리면서 더 유명해진 작품이다. ‘코미디언’이라는 작품 제목처럼 정말 실소가 터지는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최근 이 바나나 같은 재밌는 발견이 천문학계에서 벌어졌다. 논문 제목부터 당돌하다. ‘Galaxies Going Bananas!’ 은하가 바나나가 되고 있다, 또는 은하가 미쳐버렸다는 뜻의 말장난인데, 이 논문은 제임스 웹으로 확인한 초기 우주 은하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바나나같이 휘어진 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발견을 담았다. 말 그대로 과거로 갈수록 은하들이 바나나가 된다는 것이다! 나선 은하, 타원 은하, 그리고 이제 바나나 은하라니. 다양한 모습을 한 은하들의 과거를 캐보자.
우주 끝자락에서 발견된 바나나(?) 모양의 이상한 원시 은하들의 정체를 이야기해보자.
은하의 모양과 관련해서 심심치 않게 받는 질문이 있다. “중력은 사방에서 작용하는데 왜 우리 은하는 납작한 원반 모양을 하고 있나요?”
우리 은하, 안드로메다은하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답게 소용돌이치는 은하는 대부분 납작한 원반 은하다. 그 외에 별들이 펑퍼짐하고 둥글게 모여 있는 타원 은하가 있다. 얼핏 별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타원 은하가 훨씬 자연스럽게 보인다. 납작한 원반 은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반대로 접근해야 한다. 사실 원반 은하가 훨씬 설명하기 쉽고, 오히려 타원 은하가 까다롭다.
천문학자들은 초기 우주에 존재하던 거대한 가스 구름이 수축하면서 은하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주 거대한 가스 구름은 처음에는 아주 느리게 회전했다. 서서히 자체 중력으로 인해 크기가 줄어들고 수축한다. 중력 수축으로 가스 구름의 회전 반경이 짧아지고, 가스 구름은 각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 더 빠르게 회전하면서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뭉쳐진다. 둥근 밀가루 반죽을 빠르게 돌려서 납작한 피자 도우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면 쉽다. 태양계 행성들이 대부분 비슷한 평면 위에서 궤도를 도는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은하는 태양계의 거대한 버전이어야 한다. 거대한 가스 구름이 수축하면서 은하가 반죽되었으면 우주의 모든 은하는 원반 은하여야 한다!
우리 은하 바깥에 또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밤하늘에서 동그랗게 보이는 은하들이 너무나 많이 관측되었다. 허블은 처음엔 납작한 원반 은하를 다양한 각도에서 봐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비스듬히 보면 얇게 보이지만, 정면에서 보면 동그랗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우주에 원반 은하만 존재하고 관측되는 각도 때문에 은하가 동그랗게 보인다면, 얇게 보이는 은하와 동그랗게 보이는 은하의 수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아야 한다. 관측되는 은하 원반이 어느 정도 각도로 기울어져 보일지는 무작위일 테니까. 그런데 실제 우주에선 너무나 많은 동그란 은하들이 보였다. 그건 분명 납작한 원반이 아니라 정말 둥근 공 모양의 은하가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타원 은하였다.
타원 은하의 발견은 천문학자들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거대한 가스 구름이 회전하면서 반죽한 결과가 은하라면 모든 은하는 원반 모양이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납작하지 않은 공 모양의 은하가 존재하는 걸까?
천문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타원 은하는 원반 은하에 비해 유독 은하들이 더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모여 있는 은하단 중심부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타원 은하가 은하의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더 쉽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은하를 이루는 별 각각의 역학적 움직임을 더 면밀하게 관측하면서 타원 은하의 비밀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원반 은하의 별들은 태양계 행성들처럼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돈다. 반면 타원 은하의 별들은 중구난방 궤도를 그리며 복잡하게 돈다. 타원 은하는 비교적 크기가 작은 원반 은하들이 서로 충돌과 병합을 하면서 반죽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은하를 이루는 별들의 임의의 궤도가 복잡하게 섞이면서, 그 모습이 마치 별들이 둥글거나 펑퍼짐하게 모인 것처럼 관측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은하의 탄생 과정을 꽤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우주 역사에서 가장 최근의 이야기, 인간의 역사로 치면 근현대사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정작 빅뱅 이후 최초의 은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최초 은하들의 씨앗이 어떻게 오늘날의 덩치 큰 은하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선 아직 풀리지 않은 비밀이 많다. 여전히 우리는 우주의 고대사를 잘 모른다.
1990년대 중반, 허블 우주 망원경이 먼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하면서 천문학자들은 흥미로운 발견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확인한 먼 우주에서 드디어 초기 은하들의 어렴풋한 모습을 확인했다. 과연 초기 은하들은 원반 모양일까? 타원 모양일까? 재밌게도 둘 다 아니었다. 피클 또는 바게트 빵처럼 둥글고 기다란 이상한 모양이었다.
최근 제임스 웹을 통해 대대적으로 관측한 결과도 이 모습을 재확인해준다. 이번 연구에서 천문학자들은 초기 우주를 관측하는 CEERS 관측 프로젝트를 통해 약 50개의 아주 먼 원시 은하들을 포착했다. 그리고 이 은하들의 실제 형태가 어떤지를 추정하기 위해 3D 모델링 분석을 진행했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가정해 은하들이 실제로 납작한지, 기다란지, 둥글게 뭉쳐 있는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재밌게도 천문학자들은 원시 은하들의 형태를 그 특징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종류로 구분했다. 모든 방향이 거의 고르게 공처럼 둥근 모양 ‘발리볼’, 한쪽 방향만 납작하고 나머지 방향은 둥근 원반 모양의 ‘프리스비’, 한쪽 방향으로 납작하고 한쪽 방향은 타원 모양으로 찌그러진 ‘서핑보드’, 두 방향에서 둥글고 한쪽 방향으로만 기다란 ‘피클 또는 국수가닥’.
비교적 가까운 우주에서는 피클 모양의 은하가 전체 은하의 25%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100억 년 전 초기 우주로 나아갈수록 피클 모양 은하의 비중은 50~80%까지 올라간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 은하들은 납작한 원반 모양도, 둥근 타원 모양도, 우리에게 익숙한 그 어떤 모양도 아닌 피클 같은 이상한 모양이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이런 피클 모양의 이상한 은하들이 어떻게 초기 우주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슈퍼컴퓨터를 통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가 적용된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을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빅뱅 직후 인플레이션, 즉 급팽창을 겪은 우주에는 태초에 무작위로 존재한 양자 요동이 반영된 밀도 요동이 존재했다. 주변에 비해 좀 더 밀도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암흑 물질이 모여들고, 밀도가 낮은 지역은 사방으로 암흑 물질을 빼앗겼다. 그 결과 우주에는 암흑 물질이 거대한 그물처럼 얽힌 우주 거대 구조의 골격이 만들어졌다. 암흑 물질이 길게 흘러가는 흐름을 우주 거대 구조의 필라멘트라고 부른다. 은하들은 이렇게 필라멘트를 따라 물질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반죽되고 형성된다.
초기에는 필라멘트가 갓 만들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 두께가 두껍지 않다. 가느다란 빨대라고 생각하면 좋다. 가느다란 필라멘트를 타고 유입된 물질이 반죽되면서 그 속에서 은하가 만들어진다면, 피클처럼 길쭉한 원기둥 모양의 은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최근 많은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이 먼 과거 초기 우주 시점에 탄생한 원시 은하들이 피클 모양이었음을 재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피클 조각 원시 은하들은 다시 서로의 중력을 통해 충돌과 병합을 반복한다. 초기 원시 은하들은 어린 별을 만들 신선한 가스 물질을 아주 많이 품고 있다. 가스 물질을 많이 머금은 은하끼리 충돌하게 되면, 마치 유체의 점성처럼 은하 속 물질이 더 납작하게 반죽되는 일종의 마찰력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초기 우주에 비해 훨씬 더 두껍게 성장한 필라멘트 구조를 따라 일관된 방향으로 계속 물질이 유입되면서, 성장한 은하는 그 물질 유입이 진행된 방향으로 회전하는 성분을 갖게 된다. 오늘날 우주에 존재하는 빠르게 회전하는 원반 은하의 탄생까지 자연스럽게 재현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조금씩 완성해 나가고 있는 우리 우주의 은하 진화 대서사시의 큰 그림이다.
참고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3arXiv231015232P/abstract
https://webbtelescope.org/contents/media/images/2024/104/01HHZE0D278BBH24A0YDY7ESQ3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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