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고법 가사2부에서 진행 중인 이혼소송 항소심 마지막 변론 기일에 참석한 것. 먼저 도착한 최태원 회장은 심리 종결 심정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하고 나오겠다”고 답했고, 노소영 관장은 답을 하지 않은 채 법정에 들어섰다.
노 관장은 재판 이후 취재진에 “재판이 아주 세심하고 치밀하게 진행돼 재판부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며 “잃어버린 시간과 가정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가정의 가치와 사회정의가 설 수 있길 바라며 가정과 사회정의를 위해 남은 삶을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양측은 항소심 재판에서 노 관장이 SK그룹 주식 형성과 유치 등에 기여했다는 주장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는 특히 노 관장 측이 2심에서 꺼내든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의 상당한 역할을 했다’을 주목한다. 1심에서 SK그룹 주식을 모두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재산 분할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박이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 “SK 지분 상당 부분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반영” 주장
지난 2022년,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노소영 관장에게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로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노 관장이 애초 요구한 최 회장 보유의 SK(주) 주식의 50%(1조 3000억 원대)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SK그룹의 지분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라고 보고, 함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며 노소영 관장 측의 몫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 관장은 이혼 소송에 나서기 전부터 변호사들에게 “SK그룹을 일구는 데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큰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을 만나 상담을 한 적이 있는 한 변호사는 “노소영 관장 측이 ‘SK그룹 지분 중 상당 부분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반영됐다’면서 이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받을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더니 2심에서 노 관장 측은 비자금을 꺼내들었다. 지난 3월 12일 열린 항소심 첫 변론기일에서 노 관장 측은 재산분할의 근거로 50억 원짜리 어음 6장의 사진을 제출했다. 노 관장 측은 1991년 부친인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300억 원을 사돈인 최종현 선경 회장에게 건넨 뒤 선경건설의 어음을 담보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당시 선경그룹이 태평양증권(현 SK증권) 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비자금이 사용된 만큼 이를 재산 분할에서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 측은 1997년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2심 무죄 판결을 비판하며 낸 상고이유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당시 검찰은 선경그룹의 태평양증권 인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등을 문제 삼으며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회장에게 받은 30억 원이 ‘대가성 있는 뇌물’이라고 주장했다. SK그룹의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물론 뇌물 성격의 혜택도 있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법조계는 “노소영 관장 측이 진짜 카드를 꺼내들었다”고 분석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는 “자신의 재산 형성 기여도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치부’라고도 볼 수 있는 과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꺼내든 것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SK그룹 “특혜·지원 없었다” 반박
반면 최태원 회장과 SK 측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특혜나 지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300억 원 규모의 비자금이 SK에 제공됐다는 주장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 당시 선경그룹은 무죄를 받았다는 점도 최 회장 측이 내놓은 설명이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 재판부는 16일 결심 공판에서 선고기일을 오는 5월 30일로 지정했다. 항소심에서는 재산 분할에 어떤 판단을 내놓을지 관심이 커진다.
이혼 재판 경험이 많은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내용은 전혀 모르지만, 재판부로서는 ‘언론 보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면서 “또 SK그룹이라고 하는 굴지 기업의 경영권이 흔들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비자금을 입증하는 노소영 관장 측의 증거가 얼마만큼 확실한지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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