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공의 집단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이 4일 “의사들의 카르텔을 깨부숴야 한다”며 지방 의료소외지역의 의료공백을 한의사가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 것. 두 단체 모두 최근 집행부가 바뀌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연 한의계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지 따져봤다.
#한의협 회장 당선인 “한의사가 일차의료 공백을 메꿀 수 있어”
우선 한의사의 법적 지위를 살펴보면 이들은 의료법상 의사, 치과의사, 조산사, 간호사와 동일하게 ‘의료인’에 해당한다. 모두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 일부 언론 등에서 의사만을 포함해 ‘의료계’라고 칭하는 경우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의사도 의료인이다.
2016년 대한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의료계’라는 표현에 대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의료계라는 단어는 모든 의료인을 포함하는 표현이지 결코 특정 직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계’라는 통칭을 자신들만이 사용하고 자신들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며 “모든 직능 의료인들의 화합과 상생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향상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작은 올바른 용어의 사용부터다”라고 비판했다.
이번 의사-한의사 갈등에 불을 붙인 것인 것은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장의 발언이었다. 윤 회장이 “한의사를 활용해 의료소외지역의 일차의료 공백을 메꿀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바로 다음날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당선인은 “현재의 의료공백 해소를 위한 세부적인 대책방안과 구체적으로 응급환자, 중환자, 수술환자 전원이 가능한 한의원과 한방병원, 한의과대학 부속병원의 명단을 거듭 요청한다”며 한방의료기관은 응급환자를 받을 수 있는 응급의료기관이 아닌 점을 비꼬았다.
#한의사, 의사와 동일한 수련과정 거쳐…교육과정 75% 의대와 동일
한의사들은 과연 일차의료를 담당할 수 있을까? 답은 ‘가능하다’다. 일차의료란 환자가 최초로 접촉하는 의료로 주로 중증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감기, 소화기 장애, 두통 등으로 동네 의원을 찾아 받게 되는 진료가 이에 해당한다. 한의협 관계자는 “일차의료는 환자가 최초로 접촉하는 의료를 말한다.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판단하고, 2차 병원으로 가야할지, 지금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또는 만성질환 진료도 다 일차의료에 해당한다. 현재도 한의계는 일차의료에서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원의 경우 ‘이비인후과 의원’ ‘산부인과 의원’과 같이 과목이 나오지 않아 알기 어렵지만, 한의사도 진료과목별로 전문의가 있다. 의사와 동일하게 국가시험을 통과해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 자 가운데 전문수련의 과정을 거친 이들이다.
한방전공의 교과과정 자료를 살펴보면 △한방내과 △한방부인과 △한방소아과 △한방신경정신과 △침구과 △한방안·이비인후과 △한방재활의학과 △사상체질과 등이 있다. 생소한 과목으로는 침구과와 사상체질과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침구과는 침과 뜸 치료, 신침요법 등과 관련한 학문이며, 사상체질과는 동서의학의 각종 체질론, 치료법 등을 다룬다. ‘한방’이 붙은 경우 우리가 익히 아는 과목들을 한의학적 관점에서 다룬 것이다. 한방신경정신과를 예시로 보면 △정신의학적 진찰법 △정신병리학 △정신과 응급처치 △한방정신요법 등의 내용이 교과과정에 있다.
진료 과목이 겹치는 데는 한의대의 교육과정이 의과대학과 75%가 겹치는 데 있다. 이렇다 보니 한의계 일부에서는 “나머지 25%에 대한 추가 교육을 해 일차의료를 포함한 필수의료 인력을 키우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의사 A 씨는 “지금 새롭게 의대 정원을 늘려도 10년 동안 가르쳐야 하지 않나. 한의사는 이미 75%에 대한 교육을 마쳤으니 25%에 대한 추가 교육만 하면 되지 않겠나. 한의사들이 당장 수술방에 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의(GP) 정도로 교육시켜, 당장 기본적인 진료도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을 살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성찬 회장도 “지금도 보건지소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 존재하는 보건진료소에는 간호사, 조산사 등이 보건진료전담공무원으로서 일정 교육과정을 거친 뒤 감기와 소화기 장애, 소아과, 이비인후과, 치매와 두통 등 신경과 영역에 이르기까지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다”며 “현재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한의사들 역시 보건진료전담공무원 이상으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등을 공부한 전문가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의계는 일차의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환들에 대한 이들의 치료 효과와 질환 관리가 의사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엑스레이 등 진단기기를 사용하는데 제약이 있고, 건강보험과 실손보험 등에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의사들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반면 의사 단체에서는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해 12월 ‘첩약 건강보험 적용 2단계 시범사업’을 두고도 대한의사협회는 과학적 미검증, 과도한 수가 책정 등을 언급하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김석희 한의협 홍보이사는 “한의협은 수술환자, 응급환자에 대한 공백을 메꾸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일차의료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일차의료와 관련된 부분도 정부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의협에서 이렇게 명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당황스럽다. 의협에 별도의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의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해 한의원, 한방병원, 한의대 부속병원 등에서는 자발적으로 평일 야간과 공휴일의 진료 시간을 늘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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