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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재미는 있는데 납득이 잘 안되네 '눈물의 여왕'

흥행 보증수표 조합이 가져온 시청률 고공행진…허술한 상황 설정과 미숙한 서사 "이건 좀"

2024.04.11(Thu) 10:38:47

[비즈한국] ‘눈물의 여왕’의 시청률 상승세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1회 시청률 5.9%로 시작해 10회 시청률19%(닐슨코리아 제공,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tvN 역대 드라마 시청률 3위에 올랐다. 2위는 20.5%의 ‘도깨비’, 1위는 21.7%의 ‘사랑의 불시착’이다. 알다시피 ‘사랑의 불시착’은 ‘눈물의 여왕’을 쓴 박지은 작가의 전작으로, 박지은 작가가 남은 6회분에서 시청률을 높여 자신의 전작을 이길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엄청난 경제적 격차를 딛고 사랑에 빠지며 결혼까지 성공한 홍해인-백현우 커플. 그러나 3년 만에 사랑하던 사이엔 냉기가 감돌고, 백현우는 어떡하든 홍해인과 이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사진=tvN 제공

 

‘눈물의 여왕’의 성공은 방영 전부터 어느 정도 예측되긴 했다.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프로듀사’ ‘푸른 바다의 전설’ ‘사랑의 불시착’으로 작품마다 화제를 모은 박지은 작가의 작품인 데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CP와 PD로 만났던 장영우 감독과 김희원 감독의 공동연출, 연기와 비주얼 모두 믿음직스러운 김수현과 김지원의 케미 등 이른바 ‘작·감·배’가 훌륭하기 때문. 클리셰 안에서 역발상을 꾀하는 센스도 ‘눈물의 여왕’의 인기에 큰 몫을 했다. 이른바 신분을 초월한 재벌가의 러브스토리를 다루되 재벌 남성과 서민 여성의 신데렐라 스토리 대신 재벌 여성 홍해인(김지원)과 서민 남성 백현우(김수현)의 ‘남데렐라’ 스토리를 보여주고, 그에 따라 흔한 며느리의 시집살이 대신 사위들이 처가살이를 보여주는 식으로 익숙한 모습을 비틀어 웃음을 선사했다. 처가살이에 넌덜머리 내며 이혼을 꿈꾸던 백현우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홍해인에게 잊었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사랑에 올인하는 모습도 시청자들에게 통하고 있다.

 

홍해인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이혼하지 않아도 저절로 해방이 될 거란 생각에 다시 사랑에 빠진 남편인 척 연기하다 진짜로 옛 감정이 되살아난 부부. 심지어 백현우의 이상형이자 첫사랑의 상대가 홍해인인 것으로 밝혀지며 이들이 운명적 관계임을 부여한다. 사진=tvN 제공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눈물의 여왕’이 상위 0.01%의 이야기를 다루는 판타지성 드라마라지만, 나는 몇몇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제거되지 않는 치석처럼 걸리적거린다. 사랑해서 어마어마한 경제적 신분 격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던 커플이 3년 만에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될 순 있다. 불평부당한 처가의 문제 외에 아이를 유산한 이후 서로의 상처를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오해를 쌓았다는 이유도 있으니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시한부라는 홍해인의 고백을 듣고 처가의 후환없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적 환호를 보여줬을 만큼 홍해인과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낀 백현우가 단시간에 사랑을 회복하는 과정은 납득되지 않는다. 맥락상 홍해인 자체보단 홍해인과의 결혼생활에 지쳐서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던 것으로 표현하지만, 그렇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품었던 상대가 죽는다는데, 오롯이 자신이 무사히 떠날 수 있다는 것에만 기뻐할 수 있었을까? 김수현과 김지원의 연기로 커버하곤 있지만, 나는 아직도 절절히 사랑했던 아내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자신의 해방에 기뻐하는 남편의 모습이 걸리적거린다. 

 

친어머니와 함께 퀸즈그룹을 차지하기 위한 계략에 동참한 윤은성. 그러나 어머니 모슬희와 달리 윤은성에게는 홍해인이라는 인물이 또 하나의 목표이다. 사진=tvN 제공

 

친어머니 모슬희(이미숙)와 연합해 퀸즈그룹을 차지하고자 거의 전 생애를 바친 윤은성(박성훈)이 홍해인에 대해 보이는 집착 어린 사랑도 납득되지 않는다. 윤은성이 어린 시절 홍해인을 구하려다 다친 자신을 보면서 외면했던 모슬희에게 복잡다단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계략에 적극 동참하는 윤은성이, 단지 어린 시절 다친 자신에게 손수건을 감아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단 이유로 홍해인에게 그토록 절절한 짝사랑을 품고 있었던 점은 놀랍다. 퀸즈를 차지하고 나서 어머니와 반목하며 홍해인과 결혼할 거라 주장하는 윤은성의 심리가 나만 이해되지 않는 걸까? 물론,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여자의 주변을 몰락시키는 남자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란 명대사를 남겼던 ‘모래시계’의 박태수(최민수)도 있었고, 반한 여대생을 창녀로 만들어 버렸던 영화 ‘나쁜 남자’의 한기(조재현)도 있었지···. 그래도 윤은성이 30년 가까운 세월 끝에 홍해인을 목표로 삼았던 것엔 충분한 서사가 부여되지 않아 보인다.

 

‘신데렐라 언니’ ‘아이언맨’에 이어 또 한 번 깊은 관계로 얽힌 이미숙과 김갑수. ‘눈물의 여왕’은 메인 주인공 커플 외에 김갑수, 이미숙, 정진영, 나영희, 김정난 등 관록의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진=tvN 제공

 

홍해인과 백현우 커플 못지않게 짠한 사랑을 보여줄 것으로 보이는 홍수철(곽동연)과 천다혜(이주빈) 커플도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철부지 금쪽이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절절한 홍수철의 모습은 분명 뭉클하다. 그러나 모슬희-윤은성 모자의 계략에 참여한 천다혜는 수철과 사기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을 만큼(홍수철의 아이는 아니라고 하지만) 부를 차지하기 위해 진심이었던 것 아닌가. 아무리 어린 시절 얽힌 추억이 있고, 홍수철의 진심 어린 사랑 때문에 감화되는 것으로 묘사된다지만, 부를 위해 어마무시한 사기를 치는 캐릭터가 이토록 사랑 앞에 순수하다는 설정은, 그래, 삐뚤어진 나만 납득 안 되는 거겠지? 차라리 30년을 홍만대(김갑수) 회장 옆에서 헌신하는 척 연기하다 배신을 때린 모슬희가 뒤늦게 후회한다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될 것 같은데 말이지(김갑수와 이미숙이 출연했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처럼). 

 

아직 서사가 덜 부여된 탓도 있겠지만, 홍해인에게 격렬한 애증을 품고 있는 어머니 김선화(나영희)의 모습도 이해 불가다. 해인을 구하려다 죽은 큰아들에 대한 상처 때문에 해인에게 위악을 부린다는 건 알겠는데, 조금만 돌이켜보면 해인에게 뭔가 일이 있음을 감지할 법한데도 미움의 감정이 더 커서 부모의 정이라곤 전혀 없어 보일 만큼 무자비하게 구는 모습에 정이 떨어진다. 나중에 해인의 시한부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감정 극대화를 노린 것일 테지만, 그때가 되어 후회하고 반성한다 한들 그렇게 극단을 달렸던 모녀 사이가 제대로 회복될 것인가.

 

홍해인-백현우 커플 외에 다른 결의 짠함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홍수철-천다혜 커플. 사기로 시작됐으나 사랑으로 귀결될 것 같은 이 커플에 얼마나 납득될 것인지도 후반부 관건이다. 사진=tvN 제공

 

많은 사람들이 짚었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재벌가에 대한 묘사는 넘어가련다. 그래도 그들의 현실 감각엔 한 소리 해주고 싶다. 망하고 나서 백현우 고향집인 용두리에 떨어지고도 며칠 전만 해도 456억원짜리 세금계산서에 사인했던 자신이 지금은 2000만원도 없다며 한탄하는 홍범준(정진영) 부회장이나 정지된 신용카드 때문에 커피 한 잔 사지 못하는 선화 등 차원이 다른 그 현실 감각. 물론 웃자고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말해주곤 싶다. 저기 부회장님, 손목에 찬 그 시계만 팔아도 2000만원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사모님, 그 똥 밟았던 500만원 넘는 구두, 중고나라에 팔면 용두리에 있는 내내 커피는 맘껏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삼성 이재용 회장님도 중고차 구매해 직접 운전하는 모습으로 현실 감각을 뽐내는 실정인데,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재벌이라면 그 정도는 알아서 처신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허술하기 짝이 없어 경영권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쫄딱 망할 위기에 처한 것으로 묘사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재벌가 사람들. 현실의 재벌들에게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사진=tvN 제공

 

인기 절정의 드라마에 이렇게 딴지를 거는 이유는, 그래도 ‘눈물의 여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에, 조금만 디테일을 가하면 딴지 걸 여지없이 납득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한 가족극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긴 그렇지만, 박지은 작가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기막힌 설정도 없잖아 있었지만 충분히 납득이 되면서 웃겼고 울리지 않았나.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 ‘별에서 온 그대’도 여러 인물들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잘 납득시켰더랬다. 그러니, 시청률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보이는 ‘눈물의 여왕’에 좀 더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한 끗 차이 디테일로도 납득할 수 있는 게 또 드라마란 마법 아닌가 말이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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