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게임업계가 유료 아이템 엉터리 확률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게임 이용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간단체가 올해 두 번째로 출범했다. 지난 1월 한국게임이용자협회가 업계 처음으로 이용자 권익 보호 비영리 단체를 표방하며 공개 총회를 열고 발족한 지 3개월 만에 한국게임소비자협회가 출범한 것. 두 협회는 개별 게임사에 트럭 시위, 집단 소송으로 항의하는 기존의 게임 소비자 운동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용자 의견을 조직화해 정치권과 업계에 개선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확률 표기 조작, 부실 운영 등으로 게임사에 불신이 커진 이용자들은 소비자 편에 선 협회의 등장을 우선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동시에 운영 방식과 활동 계획이 더 구체화돼야 한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협회에 대한 이용자들의 평가도 극명하게 엇갈려 목소리를 결집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유저협회 당시 게임산업 종사자 인권 보호에 무게
지난달 31일 게임업계 기업윤리 정착과 소비자의 권리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게임소비자협회가 정식 출범했다. 협회 측은 이날 공식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법률·행정 자문 결과, 협회의 사단법인 설립 허가 및 등기까지는 4~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간에 필요한 여러 활동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비영리임의단체의 자격을 유지하여 협회 활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현재 정관과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로, 창립총회는 오는 27일 개최된다. 올해 사업계획서 및 단체 소개서에 따르면 협회는 △게임업계 연구 △게임업계 개선 운동 △피해자 구제 창구 마련 △관련 단체 협업 및 MOU 체결 등의 활동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 협회는 지난해 7월 국내 인디 게임사 ‘프로젝트 문’의 모바일 게임 ‘림버스 컴퍼니’ 논란 속 사측 대응을 비판하며 결성된 PM유저협회를 계승한다. 앞서 지난 10월 PM유저협회는 소비자협회 설립취지서를 발표하며 이념과 회원, 자산을 온전히 계승하는 사단법인 단체의 출범을 예고했다.
림버스 컴퍼니 논란은 게임 운영 방향에 문제제기를 하던 일부 이용자들이 원화가가 과거 SNS에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와 한국 남성을 비난하는 취지의 게시물을 공유한 것을 두고 반발하며 일어난 일련의 사태다. 사측이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해당 담당자의 작업물을 향후 게임 내에 포함하지 않겠다”며 직원과의 계약 종료 계획을 밝히자 PM유저협회는 “사상검증에 따른 부당해고”라며 비판하며 트럭 시위 등 항의 활동을 벌였다.
결성 초기 사이버불링 여파에 따른 사측의 해고 조치를 문제 삼으며 모인 단체인 만큼 게임 산업 종사자 인권 보호책 마련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 대표는 “‘PM유저협회’ 시절에는 노동권 관련 활동을 주로 펼쳤지만 소비자 중심적인 활동으로 이어갈 것”이라며 “입법 제안과 불공정 거래 시 기업 규탄 활동이 두 축”이라고 말했다.
새 협회는 초기 체제를 만든 김민성 협회장, 경기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고 현재 경기도노사민정협의회 위원으로 있는 이종찬 사무국장이 이끈다. 김환민 사단법인 게임개발자연대 대표와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직장갑질 119 법률자문스태프)가 상임고문으로 합류했다.
#전문가들 “사익추구, 방향 상실 견제해야”
지난 1월 13일 창립총회 이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한국게임이용자협회는 최근 넥슨, 엔씨소프트 등 대형 게임사에 대한 소송 및 집단민원과 ‘그랜드 체이스’. ‘군주 온라인’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소비자 보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대통령 민생토론회에 참석, 이후 게임 이용자 권익 관련 정책에 대한 입장문을 냈고 6개 정당을 상대로 정책질의서 평가도 진행 중이다.
게임이용자협회는 공정위가 메이플스토리의 확률 조정 미고지 등을 이유로 넥슨에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 등을 계기로 설립됐다. 협회는 게임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해 결성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게임물관리위원회 분과위원 등을 지내고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리니지 2M’ 등 여러 소송을 대리한 이력이 있는 이철우 게임 전문 변호사가 초대 협회장이다. 집행부에는 세무사 출신 한건희 사무국장과 게임사 회계감사 경험이 있는 오세영 감사(대주회계법인 회계사)가 올랐다.
확률공개제 시행으로 시험대에 오른 게임위는 최근 두 협회와 소통을 시작했다. 두 협회는 지난달 14일 게임위가 주최한 게임이용자 협·단체 비공개 소통간담회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는 상견례 형태로 간소하게 진행됐는데 사행성 등과 관련한 자율규제 문제, 심의 기준,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제도 보완책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게임시장은 2022년 정점(매출 22조 원)을 찍고 꺾여 지난해 19조 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규모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건 2013년 이후 10년 만이다. 그동안 게임계에는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가 부재했다. 일명 ‘뽑기형’ 수익 모델이 국내 게임업계 대표 BM(비즈니스 모델)으로 자리잡으면서 사행성 조장과 이용자 기망 논란이 반복된 만큼 게임 이용자 권익 단체가 생긴 건 당연한 수순이라는 평가다.
이철우 게임이용자협회 대표는 “확률형 아이템이 자율 규제로 불충분하다는 점이 확률 정보 공개 10일 만에 드러났다. 제도 안착을 위해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계속 의견을 내고 피해 보상안 마련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과 교수는 “열린 소통, 투명한 조직 구조로 운영된다면 협·단체의 등장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전체 이용자의 대표자로 나서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거나 처음 의도와 다르게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두 협회를 지켜보는 일부 이용자들의 시각차도 상당하다. 그 배경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과열된 젠더 갈등이 자리한다. 넥슨의 게임 캐릭터 홍보 영상 속 집게손 모양이 ‘남성혐오’라는 주장이 제기된 일명 ‘집게손가락’ 사태에서 당시 PM유저협회는 게임노동자 사상 검증 문제를 띄우며 항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일부 이용자들은 소비자협회가 이용자 권익보다 노동자 보호에 치중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두 협회 모두 활동을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두 단체가 이용자들의 권익뿐만 아니라 게임 문화 발전에도 관심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여러 단체가 난립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이용자 권익 증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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