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중견 게임사 웹젠의 임금·단체협약이 결렬된 가운데 노조가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노조 측은 설립 당시 100명 규모였던 조합원 수 회복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2년 전 게임업계 최초로 파업 위기에 봉착했던 웹젠은 다시 교섭 파행 사태에 처했다. 웹젠은 당시 국회의 중재로 2개월 만에 최종 노사 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쟁의권 최초 사용’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은 매듭지었지만 그동안 노사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최근에는 노조원 부당해고, 지회장 임금인상분 미지급 문제가 형사고발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노사는 재교섭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악화일로를 걷는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조 “기존보다 후퇴…체결할 이유 없다”
게임업계 및 노동계에 따르면 웹젠의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은 노사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노조가 지난달 사측에 협상 결렬을 통보하면서 최초 교섭 시행 후 2개월여 만에 파행했다. 비즈한국이 입수한 웹젠 노조의 단체협약 요구안에는 근로시간면제자 처우, 회사 분할·합병 시 사전합의, 가족 돌봄 휴직, 직장 내 괴롭힘 조사, 본인 및 자녀 교육비 지원 등 총 24개 안을 변경 또는 신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본급 평균 임금과 복지 지원을 확대하고 노조 설립 3주년을 맞아 조합 활동 여건을 개선하는 안건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임금의 경우 노조는 기본급 평균 560만 원 인상안을 내밀었지만 사측은 올해 기본급 총 재원 5% 증액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이 노조 안에 아무런 의견 없이 철회를 요구했다며 ‘노조 무력화 시도’라고 비판한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 안에는 △근로시간면제시간(타임오프)을 4분의 1로 축소하고 △노조 사무실 제공을 중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단협의 연장기간을 3개월 후 소멸되게 하는 안도 담겼다.
웹젠 사측은 노조원 수가 감소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웹젠 노조는 출범 당시 약 100명 규모에서 지난달 말 기준 26명으로 줄어들었다. 4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된 것인데 이를 반영해 조합 활동 지원 등을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는 것. 웹젠 관계자는 “노조원 규모가 줄어들었으니 법적 한도 최대치에 맞췄던 타임오프도 축소하는 게 맞지 않겠냐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노영호 웹젠 노조 지회장은 “사측은 노조 안 24개 조항을 모두 철회하면 타임오프는 보장하겠다는 식의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 노조의 조건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교섭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실적 부진 속 강대강 대립…재신임 김태영 대표 리더십 시험대
노사의 신경전 속에서 웹젠 노조는 오는 5월 1일까지 조합원 100명 모으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현재 확보한 조합원은 50명이 넘었다. 지난 2일부터는 매주 화요일 네이버, 넥슨, 스마트게이트, 엔씨소프트, 카카오 등 판교지역 IT 노조와 함께 판교 웹젠 사옥 앞에서 집중 홍보활동과 연대 시위에 나섰다. 웹젠 노조 측은 “조합 사무소 비용 청구 등 사측이 노조와 대립하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노조 활동이 위축된 경향이 있다”며 “사측이 이직, 이탈으로 조합원 수가 줄어든 것을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으니 일단 조합원 수 복구를 목표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이라 재교섭이 진행돼도 노사 양측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웹젠 사측과 노조는 △2022년 10월 노조 집행부(수석지부회장) 해고 건과 △노조 지회장에 대한 2년간의 임금 인상분 및 인센티브 미지급 건으로 대립하고 있다. 해고된 노조 집행부에 대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각각 부당해고와 원직 복직 판정을 내렸는데 사측은 이행강제금을 내며 복직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회장 임금 지급 거부와 관련해 사측은 지난달 20일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한 중노위의 결정문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지노위 결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했으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문제가 노사 양측의 ‘기싸움’으로 번지면서 이번 협상도 꼬인 것으로 보인다. 노조원 정보 제공과 얽혀 있는 지회장 임금 지급 문제에 대해서는 노사의 입장 차가 뚜렷하다. 노조는 “체크오프(임금에서 조합비 공제)로 동의 받은 조합원 정보를 제공했지만 사측이 계속 ‘전체’ 조합원의 정보가 필요하다며 지급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사측은 “단체협약대로 노조원 전체 인원의 평균을 요구했고, 이후에는 노동위원회에 제공한 평균치를 근거로 삼겠다고 양보했지만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웹젠의 노사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사측이 지난해 10월 수석지부회장을 사문서 위조로 고소한 데 이어, 노영호 지회장도 김태영 웹젠 대표를 고소하면서 고소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실적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는 웹젠의 행보에도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지난달 22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재신임안이 통과되면서 김태영 대표의 리더십도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웹젠은 2020년부터 3년간 2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지만 신작 부재 등으로 상반기 수익성 개선에 실패하면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8.9% 감소한 1962억 원, 영업이익은 39.8% 줄어든 499억 원이었다. 웹젠은 대표작 ‘뮤’에 대한 의존력이 상당한데 올해는 뮤 IP(지적재산권) 기반 게임 중심 수익구조에서 탈피하기 위해 서브컬처와 방치형 RPG 시장으로 영역 확장에 나선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게임학과 교수는 “지난해 게임업계 매출이 총 3조 원 빠지며 게임산업 전반이 위축된 상황이 반영된 사태”라며 “경영 상태가 좋으면 노사 합의가 더 원활할 수 있겠지만 시장이 타격을 입은 상황이라 강대강 양상이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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