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3월 25일, 한국과 유럽의 과학기술 관련 분야 사람들이 동시에 주목한 소식이 있었다. 바로 유럽연합(EU) 최대 연구혁신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에 한국이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났기 때문이다.
호라이즌 유럽은 EU에서 1984년부터 시작한 연구혁신 자금 프로그램(EU-FP)이다. 2014년부터 호라이즌(Horizon)이라는 명칭으로 불린 ‘호라이즌 2020(2014~2020)’에 이어 2021년부터 2027년까지 유럽 최대이자 세계 최대의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다. 총 7년간 955억 유로(139조 원)를 지원하는 세계 최대 규모 연구개발 자금 지원 프로그램이니만큼, 호라이즌 유럽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이 준회원국으로 가입하는 최종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호라이즌 프로그램은 EU 회원국 및 인근 국가에만 참여 자격을 부여되다가 2021년부터 우수한 과학기술 역량을 보유하고 지식재산권 보호 및 개방 경제 등을 충족하는 비유럽지역 6개국에 준회원국 가입을 제안했다. 그 주인공은 뉴질랜드, 캐나다, 대한민국, 호주, 일본, 싱가포르로, 올해 안에 협정 체결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한국은 6개국 중 뉴질랜드(2023년), 캐나다(2024년)에 이어 2025년 가입하며, 아시아 국가 최초의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이 된다.
호라이즌 유럽은 그동안 EU 회원국 외에도 어느 나라든 연구 주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었지만 자금 지원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국가는 제한되어 있었다. 특히 준회원국이 아닌 제3국의 연구 주체는 일반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자비로 참여해야 했다. 그동안 한국은 ‘그 외 제3국’ 자격으로 참여했는데, 이번 결정으로 그 위상이 달라질 전망이다.
#한국과 유럽의 오랜 교류 역사
연구 혁신 분야에서 한국과 EU의 협력은 2007년 발효된 과학기술협력협정으로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상호 호혜적 차원의 공동이익 증진을 위한 연구개발 참여 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한국 정부는 호라이즌 프로그램의 전신인 ‘EU FP 협력사업’에 예산을 지원해 국내 연구자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진행해왔다. ‘EU FP’ 과제 참여가 확정된 국내 연구자에게 매칭펀드 형식으로 연구비의 일정 부분을 지원했고, 과제 준비 단계로 유럽과의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자 하는 국내 연구자들의 준비금도 일부 지원했다.
이러한 협력은 한-EU 과학기술공동위원회를 통해 관리했다. 이번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의 준회원 가입 의향도 지난 2022년 2월에 열린 제7차 과학기술협력공동위원회를 통해 공식 표명했고, 1년여의 준비 끝에 좋은 결과를 얻어내었다.
한국과 유럽의 주요 기술 분야에 관한 협력도 제안됐다.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는 5G, IoT, 클라우드 등의 실무 논의를 재개했고,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상호 연구 자원 교류와 전임상시험 협력을 논의했다. 그 밖에 기후변화와 미래 기술 영역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특히 탄소중립 원천 연구, 청정에너지로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수소 분야, 지배 기술이 정립되지 않은 유망기술인 양자 분야에 관한 협력 논의를 추진하기로 했다. 관련 분야 스타트업이라면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 연구자들이 참여할 방법은?
한국은 호라이즌 유럽 세부 분야(Pillar) 중 ‘글로벌 문제 해결’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두 번째 영역인 ‘필러 2’에 한정해 준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된다. 준회원국이 됨에 따라 재정 분담금 기여를 통해 우리 연구자들이 호라이즌 유럽 연구비를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그 밖에 첫 번째 영역인 ‘필러 1’의 경우 과학적 탁월성 확보를 위한 기초연구 및 인력교류 지원, 세 번째 영역인 ‘필러 3’의 경우 혁신역량 강화를 위한 혁신기업 지원 등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직은 참여가 제한적이지만,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는 535억 유로(78조 원)가 필러 2에 투입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필러 2’에는 정책 추진에 필요한 민관 파트너십 체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미션 과제에 시민참여 확대 등을 강화함으로써 R&D의 성과와 혜택이 민간과 사회로 파급, 환원되는 측면에도 주목하고 있다. 기후, 에너지, 디지털 경제, 건강 부문의 글로벌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솔루션을 가진 기술 기업과 스타트업들은 참여를 고려해볼 만하다.
#스타트업에는 무엇이 좋을까?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이 되면 스타트업에게는 무엇이 좋아질까.
먼저, 다자 간 과학기술 연구 협력 네트워크가 확대된다. 호라이즌 유럽은 세계 최대의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전 분야를 아우르는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 가입을 통해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의 협력 네트워크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스타트업의 경우는 어떨까. 좋은 연구 인프라를 가진 스타트업의 경우는 글로벌 대기업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 기회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이디어와 솔루션, 연구개발에 관한 계획은 있지만, 상용화해 제품을 만들기에는 재정 기반이 약한 스타트업이라면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잠재 협력사와 고객사를 만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EU 연구 혁신 개발 과제에 직접 참여하게 됨으로써 유럽의 R&D 기획·선정·평가 시스템을 적접 습득할 기회도 얻게 된다. EU로서는 한국과 같은 기술 기반이 훌륭한 나라의 연구개발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서 좋고, 한국의 기술 기업은 유럽의 R&D 과제 시스템을 학습하면서 이를 활용해 초기 아이디어를 더 탄탄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국가혁신시스템과 연구개발 지원시스템의 개방성도 확대되어 글로벌 기준에 맞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 체계로의 전환이 가속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유럽은 이에 대응할 자기만의 카드를 갖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팬데믹·기후변화 등 전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학기술 분야의 국제협력과 공조 체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 어느 나라보다 진정성 있게 고민해왔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2027년까지 진행될 ‘호라이즌 유럽’이다. 여기에 한국 과학기술 리더들이 참여할 문이 더 넓어진다니 매우 기쁘다.
EU가 한국보다 우수한 기초연구 역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호라이즌 유럽은 스타트업이 유럽에 주목한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베를린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예술의 도시이자 유럽 스타트업 허브인 베를린에 자리 잡고 도시와 함께 성장하며 한국과 독일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123factory를 이끌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유럽스타트업열전] 가뭄과 물 부족 해결할 혁신은?
·
[유럽스타트업열전] 레오나르도, 기네스, 스눕독…스타들이 투자하는 스타트업
·
[유럽스타트업열전] ESG시대, 요즘 뜨는 글로벌 친환경 인증마크는?
·
[유럽스타트업열전] MWC 2024에서 스타트업의 미래를 만났다
·
[유럽스타트업열전] 친환경 시대, 그린스타트업의 생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