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이브가 QR 코드 방식의 플랫폼 앨범을 재활용·생분해 소재로 전면 교체한다. 팬사인회 응모나 포토카드 수집을 위해 다량의 음반을 구매하는 케이팝 문화를 두고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요구에 부응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엔터사와 음원 플랫폼에 기후 위기에 대응할 것을 주문해온 팬들의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앨범 종류 수 축소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는 미뤄두고 일부 앨범에서 소장용 포토카드 등의 소재를 교체하는 조치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오고 습하면 어떡하나” 팬들은 ‘갸우뚱’
하이브는 지난달 25일 데뷔한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데뷔 앨범 3종 중 ‘위버스’ 버전에 지속 가능한 소재를 도입했다. 위버스 앨범은 QR 코드를 통해 전용 앱으로 음원을 감상할 수 있는 다소 새로운 방식의 음반이다. 플랫폼 앨범 혹은 디지털 앨범으로 불리는 위버스 버전엔 CD, 앨범 상자, 두꺼운 화보집, 포스터가 없다.
단출한 종이 케이스 안에는 음원·사진 접속용 QR 코드와 멤버의 사진이 담긴 포토카드 뭉치가 담겨 있다. 실물 음반 형태로 판매 중인 ‘SUPER REAL ME’, ‘REAL ME’ 등 다른 두 가지 버전과는 달리 오로지 포토카드에만 집중한 형태다.
최근 엔터업계에서는 앨범과 공식 상품(MD)에 플라스틱 사용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소재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앞서 YG도 송민호, 트레저의 앨범에 저탄소 친환경 및 콩기름 잉크, 환경보호 코팅을 사용했다. 위버스 앨범의 경우 이번 사례부터 포장 비닐은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생분해 가능 소재로, 플라스틱 재질의 QR 카드는 지류로 바뀐다. 종이 케이스와 포토 카드는 물에 잘 녹는 수성 코팅 소재로 교체된다. 하이브는 “아일릿 앨범을 시작으로 하이브 레이블 아티스트들의 신보에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을 접한 케이팝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우선 소장품의 성격이 큰 포토카드의 품질 저하를 우려하는 시각이 나온다. 황 아무개 씨(24)는 “환경보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타깃이 잘못됐다. 엔터사는 팬들이 포토카드 때문에 여러 장의 앨범을 사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자가 있으면 포토카드만 별도로 교환이 될 정도로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품”이라며 “많은 양의 앨범을 무리하게 구매하고 처치곤란인 앨범들이 버려지는 게 문제의 핵심인데, 출시 앨범의 종류나 각종 판매 프로모션을 줄일 의지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새 소재로 만들어진 포토카드는 기존 포토카드보다 내구성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다. 회사나 그룹마다 카드 규격이 다르지만 비교적 얇은 편이고 광택도 적어 빛에 비춰보면 카드 표면에 있는 많은 결이 육안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SNS 상에는 “여름에 습기 관리 해야겠다”거나 “지금도 흠집 날까봐 플라스틱 케이스에 넣고 다니는데 뭘 더 해야 하나”와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포카·n종 앨범·팬싸’ 음반 판매 경쟁 속 기후 대응 의지 있나
앞으로 하이브 산하 그룹의 위버스 앨범에 새 소재가 확대 적용되는 탓에 특히 하이브 레이블 팬덤 사이에서 반발이 크다. 이 아무개 씨(29)는 “앨범에 랜덤 포카를 넣으며 다량 구매를 유도하기 시작한 엔터사들은 한번 컴백할 때마다 커버와 구성품만 바꾼 ‘n종 앨범’을 내놓고 멤버별 앨범, 저렴한 가격의 쥬얼 앨범까지 판매한다. 다 합치면 10종이 넘기도 하는데, 여기에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를 뽑을 수 있는 럭키 드로우 앨범 팝업은 필수가 됐고, 한 회당 많게는 수백 장씩 앨범을 사야 당첨되는 팬사인회도 끊임없이 연다”며 “팬 문화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회사 입장에서 가장 손쉽고 보여주기 좋은 방법을 선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발매된 하이브 보이그룹의 신규 앨범은 일반 3종, 멤버별 라이트 버전 5종, 위버스 버전 2종, 키트 버전 1종 등 총 11종이었다. 하이브 관계자는 “아직 모든 아티스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순차 확대할 계획”이라며 “일각의 우려처럼 물에 젖으면 녹거나 퀄리티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내구성 테스트를 거쳤고 재활용 하기에 용이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반은 기획사의 핵심 매출원 중 하나다. 2019년 1555만장 수준이었던 상장 기획사 합산 음반 판매량은 2022년 3020만장으로 두 배 뛰었고 이듬해 2983만장까지 급증했다. 흥행력과 팬덤의 규모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지표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팬들이 포토카드 수집 목적이나 행사 응모권 당첨 등을 이유로 다량의 앨범을 구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과대포장, 앨범폐기 등 쓰레기 문제가 떠올랐다.
엔터사들은 실물 CD와 포스터 등을 빼고 플랫폼을 이용해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형태의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업계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대형 기획사가 아닌 곳에서도 다양한 해법을 고려하고 있다. 다만 초동 앨범 등 음반판매량이 곧 성적표이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줄이지 않는다면 지금으로선 발매 종류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부피를 줄이거나 구성품을 간소화한 형태의 앨범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바뀌는 부분이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유혜인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앨범 구성품에 주로 쓰이는 PVC는 자원순환 분야에서 꼭 줄여야 할 재질로 보고 있다. 이번 변화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폐기 관점에서는 포장재를 줄이고, 복합 소재로 만들어지는 앨범의 분리배출이 잘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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