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 포털 사이트에는 대량의 정보가 업로드 돼 있다.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들은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러 경쟁 사이트의 상품 카테고리·상품 정보 등을 모아 더 완벽한 상품 구색과 정보를 갖춘 쇼핑몰 사이트를 구축하거나, 다른 사이트의 정보를 기반으로 몇 가지 옵션을 더한 서비스를 제공해 이용자를 유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터넷에서 다른 사이트의 정보를 추출하는 작업을 ‘크롤링(crawling)’이라고 한다. 최근 쇼핑몰 사이트 간에 경쟁이 치열해져서 서로 크롤링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적법한 크롤링과 위법한 크롤링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크롤링으로 인해 발생하는 민·형사 사건도 증가하고 있다.
크롤링으로 인한 법적 책임 여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조항은 저작권법 제91조 내지 제98조의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 보호 조항이다. 데이터베이스란 ‘소재를 체계적으로 배열 또는 구성한 편집물로서 개별적으로 그 소재에 접근하거나 그 소재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보호하는 법인데, 저작물이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을 의미하니 이러한 창작물로 볼 수 없는 데이터 또는 데이터베이스는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견해는 현실에서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체계화하여 배열·구성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나, 이를 베끼기는 매우 쉽다. 따라서 법으로써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데 들인 시간과 비용을 회수할 수 없고, 종국에는 데이터베이스 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2003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은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조항을 규정했다. 대표적인 조항이 저작권법 제93조 제1항으로, 위 조항은 데이터베이스제작자는 그의 데이터베이스의 전부 또는 상당한 부분에 대해서 복제 등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위 조항에 따르면 제삼자가 허락 없이 데이터베이스의 상당한 부분을 복제하는 것은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되므로 위법하다. 문제는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데이터베이스의 상당한 부분’이라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경쟁사인 ‘잡코리아’의 허락 없이 잡코리아 채용 정보를 크롤링해 사용한 사안에서, 서울고법은 영업에 이용할 목적으로 반복적·체계적으로 경쟁사의 채용 정보 부분을 복제해 게재했다는 이유로 데이터베이스제작자의 권리 침해를 인정한 바가 있기는 하다(2016나2019365).
최근 사례에서 대법원은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숙박 예약 플랫폼 ‘여기어때’와 ‘야놀자’ 사건에서, 시장의 후발 주자인 여기어때는 회사를 설립했을 때부터 경쟁사 분석 업무를 담당하는 영업지원팀을 두고, 선두 주자인 야놀자의 숙박업소 정보를 수시로 취합해 왔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상당한 부분을 복제함으로써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때 양적인 측면이란 ‘복제된 부분이 데이터베이스의 전체 규모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질적인 측면이란 ‘소재의 제작 또는 그 소재의 갱신, 검증 또는 보충에 상당한 투자를 했는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준에서 대법원은 여기어때가 수집한 정보는 이미 상당히 알려진 정보로서 그 수집에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들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거나, 이미 공개돼 야놀자 앱을 통해서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데이터베이스의 갱신 등에 관한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데이터베이스 제작자의 권리 침해를 부정했다(2021도1533).
해당 판결에 따르면 데이터베이스 제작자가 권리를 보호 받기 위해서는 소재 수집뿐만 아니라 그 소재를 갱신·검증·보충하는 데에도 상당한 인적·물적 투자를 해야 하므로, 저작권법 조항으로 권리를 보호 받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했다. 다만 해당 조항에 대해서는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이를 문제 삼는 경우 형사고소를 제기할 수는 없고,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하다.
여기어때-야놀자 사건에서 서울고법은 여기어때가 크롤링 프로그램으로 야놀자의 제휴 숙박업소 정보를 복제해 자신의 영업에 이용한 행위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경쟁 관계에 있는 원고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 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한, 야놀자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2021나2034740, 확정).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저작권법 위반이 문제가 된 형사사건에서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며 여기어때에 무죄를 선고했으나, 서울고법은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 문제가 된 민사사건에서 더욱 유연한 기준을 제시해 여기어때에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10억 원 및 지연손해금)을 인정했다.
하나의 사건에서 민·형사상 판결이 서로 다르다는 점은 일견 모순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저에 깔린 사정은 다음과 같다. 법원도 타인의 성과물을 도용하는 크롤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크롤링한 사람을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부담스럽게 여긴다. 크롤링의 대상인 정보의 가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데다 합법적인 크롤링과 불법적인 크롤링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크롤링을 문제 삼고자 한다면, 저작권법상 형사처벌 조항을 근거로 형사고소를 하는 것보다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부정경쟁방지법 조항을 근거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낫다. 다만 이러한 민사소송에서 인정되는 손해액은 실제 입은 손해보다 훨씬 적은 액수가 될 가능성이 높고, 불법행위의 요건을 일일이 입증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 민사소송이 전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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