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875원이라는 가격을 “합리적”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물가를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물가 감각’ 논란은 오래됐다. 후보자가 아닌 현직임에도 물가에는 무지한 경우도 적잖다.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의 ‘버스요금 70원’ 발언부터 한덕수 국무총리의 ‘택시요금 1000원’ 발언까지 정치인의 ‘물가 감각’ 사례를 살펴봤다.
#한덕수 총리 “택시요금 1000원”, 박원순 전 서울시장 “버스요금 1150원”
21대 총선을 열흘 정도 앞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윤 대통령이 “대파가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이 민생 점검 차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를 들고 이 같은 발언을 했다. 대파 시중 가격이 4250원까지 오른 상황이었지만 정부의 납품단가지원금 2000원, 농산물 할인 지원쿠폰 30%(375원), 농협 자체 할인 1000원이 적용돼 875원이 나왔고, 윤 대통령이 이를 두고 합리적이라고 하자 “물가를 잘 알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 방문 당일 875원이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여주기식’이라는 말도 나왔다.
정치인들의 ‘물가 감각’ 논란은 수년 전부터 반복되고 있다. 불과 1년 전 한덕수 국무총리는 택시요금 1000원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이 “택시비도 올랐는데 얼마인지 아냐”라고 묻자 “기본요금 말하는 것인가. 한 1000원쯤 되지 않나”라고 답변을 한 것이다. 당시 기본요금은 4800원이었다. 이후 한 총리는 “이번에 인상되는 것에 대해 보고를 많이 듣고 고민을 했어서 착각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2월 서울시가 택시 기본요금을 1000원 인상한 것을 잘못 대답했다는 취지다. 앞서 한 총리는 이 의원이 서울시 시내버스 요금을 묻는 말에도 “지금 한 2000원…”이라며 정확히 답하지 못했다. 서울시 시내버스 요금은 전체회의가 있기 2주 전 인상돼 1500원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논란이 되면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소환되기도 했다. 2008년 당시 최고위원이었던 정 이사장은 당 대표 후보자 생방송 토론회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부터 “서민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정 이사장의 ‘재벌’, ‘귀족’ 이미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정 이사장은 “요즘은 카드로 탄다. 한 번 탈 때 70원정도 하나”라고 대답했다. 당시 버스 기본요금은 1000원이었다. 정 이사장은 “총선 때 사당동에서 마을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그때 요금을 700원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고 답변을 하면서 착오를 일으켰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불과 얼마 뒤 전당대회에서 꺼내든 교통카드가 일반인용이 아닌 청소년용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한번 곤혹을 치러야 했다.
그런가 하면 본인의 시정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8년 3선에 도전하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한 방송에서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을 묻는 말에 “1250원인데 교통카드를 찍으면 1150원”이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교통카드 기준 지하철 기본운임은 1250원이었다. 이에 “본인이 시장으로 있는 곳도 알지 못하면 어떡하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승차권 발권기에 만원 두 장…엉뚱한 단말기에 교통카드 태그
행동으로 뭇매를 맞은 사례도 적지 않다. 2017년 대선 후보로 나섰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귀국 당일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기에 1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편의점에서 ‘에비앙’ 생수를 선택하면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그가 자신을 “평시민”이라고 소개한 것과 다른 모습에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결국 며칠 만에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제가 이제 온 지 6일째인데 다니면서 여러 활동을 했다. 여러분은 파리에 가서 전철을 끊을 때 금방 할 수 있나. 그걸 못한다고 비난하면 그게 공정한 것이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정몽준 이사장은 2014년 다시 한번 논란을 겪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당시 서울의 한 고시원을 방문해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은 것. 한 경찰학원을 방문한 후 고시원을 찾은 것인데, 열악한 환경에 놀란 기색을 보여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겠나”라는 말이 나왔다. 지금까지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집을 둘러보고 왔는데 정몽준 이사장 표정 나왔다” 등의 표현이 사용될 정도다. 정 이사장은 학원의 자율배식 식당과 노숙인 급식소 배식 봉사 활동에서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으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총선 선언을 한 2020년 동대문역에서 교통카드를 잘못 찍는 일이 있었다. 통상 개찰구 오른쪽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나와야 하는데 반대편에 찍었다. 이에 이 전 총리는 주위의 도움을 받아 다른 출입구를 통해 나와야 했다. 특히 그는 만 67세로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하지만 굳이 교통카드를 찍으며 코스프레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그는 지하철 내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옆 좌석에 일반 승객이 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이준석 당시 새로운보수당 젊은정당비전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아무래도 총리님은 지하철 사진은 그만 찍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비판했다.
관용차를 타는 정치인이라면 택시, 버스 요금에 무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를 하겠다고, 혹은 정치를 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국민 눈높이의 정책을 펼치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중들은 정답을 말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을 갖추고 있길 바라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선거 때마다 시장, 대중교통, 쪽방촌 등을 방문하며 ‘서민’과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보여주기 보다 더욱 진정성 있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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