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의정 갈등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에 대해 집중신고를 받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달 초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사 집회에 동원됐다는 의혹을 직접 언급했다. 이를 두고 제약업계의 리베이트가 오래된 관행인 만큼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의사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제약업계는 의료대란이 이어지며 영업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는 상황에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이 업계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불법 리베이트 집중신고에…제약업계 “영업 활동 위축 우려”
21일 정부의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신고 기간이 시작됐다. 정부는 “그간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제약사 직원의 의사 집회 동원 등 의료 현장에서 불법 리베이트가 계속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에 따라 신고를 유도해 불법 리베이트를 적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대한의사협회가 개최한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제약사 영업 직원을 동원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정부가 칼을 빼든 셈이다. 당시 의협은 “의협이나 시도 의사회 차원에서 제약사에 그런 것을 지시하거나 요구한 적은 없다. 개인 일탈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자체적으로 징계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여론이 나아지지 않자 의협은 해당 게시글 작성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리베이트란 의약품 공급자(제약사·도매상), 의료기기사(제조·수입·판매업자)가 의약품·의료기기 판매촉진을 목적으로 허용된 경제적 이익 이외에 의료인 등에게 금전, 물품, 편익, 노무, 향응, 그 밖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 및 의료인 등이 수수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정부가 발표한 유형 및 사례를 살펴보면 △의약품 채택료(랜딩비) 명목으로 현금 제공 △처방을 약속한 병·의원에 선지원금 제공 등 금전적인 유형과 △지방출장 대리운전 △가족행사 참석 및 보조 △학회·예비군 대리 출석 △음식 배달 △창고 정리 △심부름 등 편익 유형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진 불법 리베이트 사례다.
제약업계는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학술대회 지원 등 합법적인 리베이트도 어려운 상황인데 영업 활동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병원 출입이 제한되면서 대면으로 이뤄져야 하는 영업 활동이 타격을 입었다. 지출보고서 공개를 두고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제약업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이고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의사 단체와의 대치 상황에서 이들을 압박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 모임’은 25일 보건복지부 뇌물 공무원 신고 보상 게시글을 올리는 등 맞불을 놨다. 대표로 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아직 제보는 없다”면서 “철 지난 유행가처럼 복지부가 무기라고 내세운 것이다. 요새 리베이트 받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되도 않는 이야기로 의사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누명을 씌워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아주 불순한 의도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 도입에도…불법 리베이트 여전
정부가 말하는 합법적인 리베이트의 기준은 무엇일까? 현행법상 허용되는 경제적 이익에는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등의 지원 △제품설명회 △시판 후 조사 △대금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 할인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학술대회나 제품설명회의 경우 교통비, 식비, 숙박비, 등록비 비용 지원 등이 포함된다. 대금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할인은 거래일로부터 몇 개월 내에 결제하는지에 따라 거래금액의 0.6~1.8% 이하의 비용을 할인하는 방식이다.
2018년 이른바 ‘K-선샤인 액트(K-Sunshine Act)’로 불리는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가 도입됐다. 의료인과 약사 등에게 제공한 법령상 허용된 경제적 이익 내역을 작성·보관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로, 의약품·의약기기 거래의 투명성과 자정 능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체 1만 1809 업체(의약품 3531개, 의료기기 8278개) 자료 분석 결과, 2022년 기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기업은 전체 3274개소(27.7%)로, 제공 규모는 금액 기준 8087억 원, 제품 기준 2047만 개 수준으로 나타났다. 제공유형별로 보면 의약품은 대금결제 비용할인이 83.3%, 의료기기는 견본품 제공이 62.4%로 가장 높았다. 다만 불법 리베이트는 법망을 피해 이뤄지는데다 금전이 아닌 편익 제공 등의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올해는 6~7월 중에 실태조사를 마친 후 12월 중 처음으로 대국민 공개가 될 예정이다. 다만 정부는 제약업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임상시험 등의 지원(시험 정보, 연구 정보, 시험 책임자, 연구 책임자, 공동 연구자 성명 등), 제품설명회(의료인 정보, 장소, 일시 등), 시판 후 조사(의약품 정보, 의료인 정보 등) 항목 등에 대해서는 비식별 조치가 이뤄진다. 제약업계는 영업상 전략 유출과 리베이트 오인 소지 등을 이유로 비식별 조치를 주장해왔다.
업계는 지출보고서 공개로 인한 분쟁도 우려한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출보고서 공개의 주체는 의약품 공급자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출보고서 공개 과정의 관리와 원칙만을 제시할 뿐 개입하지 않으며 실제 조정은 당사자 간 협의에 의해서만 이뤄진다. 이는 구체적인 경제적 이익 제공 관련 당사자 간 사정 등이 개별 사안별로 달리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조정이 완료될 때까지 보고서 내역 비공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 비공개대상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통보받은 경우에만 해당 내용이 특정될 수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한 후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27일 수백억 원대 리베이트 혐의를 받는 종근당 그룹 계열사 경보제약의 임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경보제약은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병·의원 수백 곳에 400억 원대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는다. 회사는 약값의 20% 정도를 현금 등으로 병원에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경보제약 본사를, 1월에는 수도권 소재 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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