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인력 감축과 점포 폐쇄를 이어가는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고용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 전체 인력은 줄어드는데 비정규직 비중은 확대하거나, 1년 사이 10%가 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줄이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인력 감축, 점포 간소화 추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비중이 전체 인력의 10% 넘기도
4대 시중은행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하나은행을 제외한 3개 은행의 직원(정규직·비정규직) 수는 3년 연속 감소했다. 국민은행의 직원 수는 2021년 1만 7083명에서 2022년 1만 6978명, 2023년 1만 6293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1만 3635명, 1만 3604명, 1만 3263명으로 감소했다. 우리은행은 1만 4268명, 1만 3913명, 1만 3723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인력이 늘어난 하나은행도 증가폭은 작다. 2023년 직원 수는 1만 1885명으로 전년(1만 1753명) 동기 대비 1.1% 늘었다. 앞서 2022년에는 2021년(1만 2288명) 대비 5.2% 감소했다.
주목할 점은 은행의 전체 직원이 줄어도 비정규직 비중은 늘거나 유지됐다는 점이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하나은행의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정규직)’는 2021년 1만 1435명, 2022년 1만 835명, 2023년 1만 682명으로 3년 연속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기간제 근로자(비정규직)’는 853명에서 918명, 1203명으로 증가했다. 2022~2023년 인력이 증가세를 유지한 건 늘어난 비정규직 직원(285명)이 줄어든 정규직 직원(153명)의 거의 두 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4대 시중은행 중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은 비정규직 비율도 가장 높았다. 2021년 9.2%에서 2022년 12.6%, 2023년에는 13.0%로 늘었다. 하나은행도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이 10%를 넘었다. 하나은행의 비정규직 비율은 2021년 6.9%에서 2022년 7.8%로 증가해 2023년에는 10.1%를 기록했다. 신한은행은 2021년 7.0%, 2022년 7.6%, 2023년 7.3%로 3년 내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비중은 2021년 5.0%, 2022년 5.1%로 4대 은행 중 가장 낮았다. 2023년에는 4.4%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정성이 컸다. 2023년 정규직 근로자가 전년 대비 0.7% 감소(1만 3203명→1만 3113명)하는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는 14.1%(710명→610명)나 줄었다.
우리은행은 2023년 사업보고서에 직원 현황을 잘못 기재하기도 했다. 정규직·비정규직 직원 수에 단시간 근로자(1일 근무시간이 8시간 미만인 근로자)를 합산하지 않아 각 전체 직원 수와 다르게 명시한 것. 현재 보고서 상에는 정규직 1만 2868명, 비정규직 475명으로 표기됐으나 실제로는 각각 1만 3113명(단시간 근로자 245명 포함), 610명(135명 포함)이다.
다만 경미한 기재 오류로, 유가증권시장 공시 규정에 따른 의무 위반이나 공시 불이행에 해당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측은 “단순 표기 실수로, 정정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금융권 비정규직 늘어나는데…차별은 여전
복지 수준이 우수하다는 인식이 높은 금융권에서도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은 만연하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적지 않다. 이들은 상품 상담, 서류 관리 등 일선에서 고객을 응대하거나 정규직과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2~10월 증권·은행·보험사 등 14개 금융기관을 감독한 결과 12개 사에서 62건의 노동법 위반 사항이 확인됐다.
감독 결과에 따르면, 7개 금융기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향한 차별이 발생했다. △식비·명절비 등 금품 미지급 △근로계약서상 필수사항 누락 △계약직 운용 지침에 차별 문구 기재 등의 차별 행위로, 노동관계법 위반이 적발된 금융사에는 시정 지시와 과태료 부과 조치가 내려졌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 해소를 위한 금융업 간담회’에서 “금융업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은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책임이 요구된다”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점포 폐쇄를 가속하고, ‘디지털 전략’으로 인공지능(AI) 챗봇·행원을 도입해 인력을 대체해 왔다. 4대 시중은행의 점포는 2015년 3927개에서 2018년 3563개로 4년 사이 364개(9.3% 감소) 줄었지만, 2019년부터는 3525개에서 2022년 2883개로 642개(18.2% 감소) 줄어 감소하는 속도가 빨라졌다(연말 기준).
업계는 “비대면 거래 증가와 금융 환경의 디지털화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은 “비용 절감, 수익성 증대를 목적으로 근로자의 고용 불안과 소비자 불편을 야기한다”라고 반박한다. 비수도권 중심으로 점포 폐쇄 속도가 빨라지자 금융위원회는 2023년 4월 △사전영향평가 절차 강화 △점포 폐쇄 시 정보 확대 △소비자 지원 방안 등이 담긴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을 받았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은행은 영업 구조 재편을 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점포를 줄일 뿐만 아니라 내부 필수 인원을 줄이는 간소화 작업도 했다”며 “인터넷뱅킹, 콜센터 등으로 업무를 넘기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업무를 나눴다. 강제 구조조정은 어려우니 지속해서 인력을 줄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산업 재편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디지털화가 가속했고, 소매금융 서비스는 유지해야 하니까 처리할 업무를 비정규직 인원으로 감당하는 식”이라며 “디지털 전략과 수익모델 다변화를 하면서 인원을 줄일 건 줄이는 식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짚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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