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항성 질량 블랙홀은 태양보다 무거운 별들이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진화를 마치면서 남기는 잔해다. 이런 블랙홀은 얼마나 무거워질 수 있을까? 반대로 어느 정도까지 가벼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주에서 발견된 가장 무거운 블랙홀, 또 가장 가벼운 블랙홀의 질량은 어느 정도일까?
얼핏 생각하면 원자 질량 수준으로 아주 가벼운 초미니 블랙홀부터 태양 질량의 100배 이상에 이르는 아주 거대한 수준의 블랙홀까지, 다양한 질량과 규모를 가진 블랙홀들이 우주 곳곳에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실제 우주는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들의 질량 분포를 보면 너무나 명확하게 상한과 하한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항성 질량 블랙홀은 보통 태양 질량의 20배 수준에 머무른다. 그 이상으로 더 무거운 항성 질량 블랙홀은 어지간해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질량이 가벼운 블랙홀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가벼운 항성 질량 블랙홀은 적어도 태양의 5배가 넘는 질량을 갖고 있다. 그 이하로 가벼운 항성 질량 블랙홀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블랙홀보다 한 단계 밀도가 낮은 중성자별의 경우는 어떨까?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중성자별은 태양의 2배 정도 질량을 갖고 있다. 그 이상으로 더 무거운 중성자별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명확한 질량이 부재한다! 태양의 2배에서 5배 사이 질량을 가진 중성자별, 블랙홀은 발견되지 않았다. 또 태양 질량의 20배를 넘는 훨씬 무거운 블랙홀 역시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이처럼 블랙홀의 질량 분포를 보면 적어도 태양의 5배~20배 사이 질량을 가진 블랙홀들만 주로 발견된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블랙홀 질량의 명확한 한계를 블랙홀 질량의 간극(blackhole mass gap)이라고 부른다.
왜 이렇게 질량의 간극이 명확히 존재하는지, 이 범위 밖의 질량을 가진 중성자별과 블랙홀은 왜 지금껏 발견되지 않는지는 중요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처음으로 이 간극의 질량을 가진 블랙홀을 발견했다! 절대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규모의 블랙홀이 드디어 그 존재를 드러냈다.
지금껏 발견된 가장 무거운 중성자별보다 더 무겁고, 가장 가벼운 블랙홀보다 더 가벼운 존재가 발견되었다.
블랙홀 질량 간극의 상한을 넘는 더 무거운 블랙홀의 존재는 비교적 더 일찍 발견되었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는 길이 4km 규모의 거대한 중력파 검출기 LIGO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계속 쉬지 않고 지구 주변 시공간의 미미한 떨림을 감지하고 있다. 2015년 9월 드디어 LIGO는 모두가 기다리던 중력파 신호를 처음으로 포착했다. 당시 포착된 중력파는 1억 광년 이상 먼 거리에서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병합하면서 퍼진 결과였다.
중력파의 형태를 통해 추정한 당시 충돌한 두 블랙홀의 질량은 각각 태양 질량의 36배, 29배다. 두 블랙홀이 병합하면서 두 질량을 합한 태양 질량의 65배보다는 살짝 작은 62배 정도 무거운 블랙홀로 합쳐졌다. 그리고 사라진 태양 질량의 3배만큼은 E=mc^2만큼 에너지로 전환되었고, 그것이 바로 중력파로 퍼졌다.
LIGO의 역사적인 관측은 이전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태양 질량의 20배 이상의 무거운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첫 관측적 증거가 되었다.
그동안 기존의 엑스선 관측에서 태양 질량의 20배 이상으로 무거운 블랙홀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블랙홀의 존재를 엑스선 관측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보통 블랙홀이 곁에 있는 다른 별과 쌍성을 이루면서, 그 별의 물질을 빠르게 집어삼키고 있을 때다. 그런데 쌍성을 이루는 두 별은 일반적으로 질량이 엇비슷하다. 즉 태양 질량의 20배 이상으로 무거운 블랙홀이라면 그 곁에 있는 동반성도 엄청 무거워야 한다. 그런데 질량이 무거울수록 별의 수명은 매우 짧아진다. 결국 무거운 블랙홀 곁에 있는 동반성은 존재하는 시간이 별로 길지 않다. 당연히 블랙홀이 별을 집어삼키며 엑스선을 토해내는 순간을 볼 기회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 중력파 검출은 훨씬 유리한 측면이 있다. 엑스선은 어쨌든 빛이다. 따라서 거리가 멀어지면 관측되는 세기는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서 빠르게 약해진다. 반면 시공간을 타고 퍼지는 떨림, 중력파의 세기는 거리에 단순 비례해서 약해진다. 그래서 더 먼 거리에서도 중력파는 더 뚜렷하게 측정할 수 있다. 또 빛을 내는 별이 없더라도 시공간 자체의 떨림을 감지하기 때문에 충분히 육중한 천체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다. 2015년에 검출된 최초의 중력파 역시 빛을 내지 않는 두 블랙홀끼리의 충돌로 만들어진 결과였다.
이후 지금까지 100번 넘는 중력파 신호 검출이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태양 질량의 20배를 훨씬 넘는 무거운 블랙홀 간의 충돌과 병합 순간이 많이 목격되었다. 태양 질량의 거의 100배, 200배 수준에 이르는 무거운 항성 질량 블랙홀들의 병합 순간도 관측되었다. 이를 통해 오랫동안 블랙홀 질량 범위의 상한으로 생각한, 태양 질량 20배의 벽은 쉽게 허물어진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쉽게 허물어진 블랙홀 질량 간극의 상한과 달리 하한의 경계는 아직 허물어지지 않았다.
2017년 천문학자들은 독특한 형태의 중력파를 감지했다. 뒤이어 1초 만에 강력한 감마선 폭발이 같은 방향에서 감지되었다. 그동안 포착된 중력파는 모두 빛을 내지 않는 블랙홀끼리의 충돌로 인한 것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빛을 내는 밀도 높은 두 별, 중성자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중력파가 감지된 것이다. 태양과 질량이 비슷하거나 살짝 더 무거운 두 중성자별의 충돌이었다. 그 결과 태양 질량의 2.7~2.8배 정도로 무거운 질량을 가진 중성자별 덩어리로 병합한 다음, 순식간에 블랙홀로 붕괴하는 과정이 포착되었다.
기존에 텅 비어 있던 태양 질량 2~5배 사이에 해당하는 블랙홀 질량 간극의 하한에 들어오는 새로운 기록이기는 했지만, 그 간극을 속 시원하게 채워주는 발견은 아니었다. 여전히 이 간극은 쉽게 채울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관측을 통해 빈 간극에 새로운 블랙홀 질량을 추가하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은 남아프리카 사막에 있는 대규모 전파 망원경 어레이 MeerKAT을 활용해 구상성단 NGC 1851을 관측했다. 그 속에서 1초에 170번 이상 빠르게 자전하면서 에너지를 토해내고 있는 펄사 PSR J0514-4002E를 포착했다. 그런데 이 펄사의 주기가 마냥 일정하지 않았다. 조금씩 그 주기가 뒤틀리고 있었다. 이것은 펄사에 해당하는 중성자별 근처에 또 다른 육중한 천체가 함께 짝을 이뤄 궤도를 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문학자들은 동반성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허블 우주 망원경 관측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 어떤 빛도 감지할 수 없었다. 즉 이 펄사 곁에는 빛을 내지는 않지만 아주 육중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짝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다. 펄사의 궤도가 뒤흔들리는 정도를 통해 추정한 동반성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2.09~2.71배에 해당한다. 놀랍게도 딱 아직까지 채워지지 못한 블랙홀 질량 간극의 하한 범위에 들어오는 수치다. 지금까지 발견된 역대 가장 무거운 중성자별 (태양 질량의 2배)보다는 무겁지만, 역대 가장 가벼운 블랙홀(태양 질량의 5배)보다는 가벼운 질량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태양 질량의 5배보다 더 가벼운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은 별들이 아주 높은 밀도로 빽빽하게 모인 구상성단에서 발견되었다. 이 독특한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진화가 거의 끝난 나이 많은 별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기에 중성자별-중성자별 쌍성, 중성자별-백색왜성 쌍성 같은 쌍성이 매우 많다. 이들은 가까이 있으면서 충돌과 병합을 할 수 있다. 쌍성을 이루던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면서 병합해 태양 질량의 2배를 살짝 넘는 수준의 블랙홀이 반죽된다. 이 블랙홀은 홀로 떠돌다 주변의 중성자별-백색왜성 쌍성 곁을 지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백색왜성은 궤도 바깥으로 쫓겨나고, 홀로 떠돌던 블랙홀이 중성자별의 새로운 짝이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이번에 발견된 펄사(중성자별)-블랙홀 쌍성의 존재는 이런 극단적인 과정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우주는 진공을 싫어한다”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우주는 빈틈을 허락하지 않고, 반드시 그 틈에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발견된 블랙홀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무거운 중성자별보다 더 무겁고, 가장 가벼운 블랙홀보다는 더 가볍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질량 간극의 범위에도 블랙홀은 존재했다. 진공을 싫어하는 우주의 법칙은 블랙홀의 세계에서도 통용되는지 모른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4290
https://journals.aps.org/prx/abstract/10.1103/PhysRevX.13.041039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880-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2839
https://www.mpg.de/21385526/0115-radi-lightest-black-hole-or-heaviest-neutron-star-150300-x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n1869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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