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공의 집단이탈이 4주 차에 접어들면서 빅5 수련병원을 둔 의과대학 교수들이 분주하게 의견을 모으는 가운데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1일 전원 사직서 제출을 의결했다. 교수협의회 비대위 측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는다면 18일을 기점으로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전원 사직서 제출 합의”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5시 서울대학교병원,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강남센터 교수진 430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지하 1층 CJ홀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18일까지 전원 조건부 사직서 제출을 의결했다. 방재승 비대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의료진의 한계 상황과 향후 진료의 연속성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단계적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합리적인 방안 도출에 나서지 않을 경우 18일을 기점으로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의결했다”고 말했다.
방 비대위원장은 “사직서 제출은 개별적으로 선택할 문제지만 18일 전원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합의했다. 외래진료를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줄일지에 대해서는 자율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응급환자, 중환자는 어떻게든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진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빅4(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 서울아산) 병원과 의견을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지난주 토요일 병원 비대위 측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구체적으로 사직서 제출에 대해 의견을 나누지는 않았고, 향후 행동을 연대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는 방 비대위원장이 선출된 후 처음으로 교수협의회가 모인 자리였다. 앞서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전공의와 학생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사퇴했다. 총회에서는 겸임해제, 외래 단계별 축소, 외래수술 전면폐지, 사직서 제출 등이 집단행동 방법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교수들 사이에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과 김정은 서울의대 학장의 사퇴 요구 목소리가 다수 나왔지만, 이에 대한 결정은 언급하지 않았다.
총회는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됐다. 오후 5시 시작을 앞두고 1시간여 전부터 교수들이 장소에 모이기 시작한 가운데, 병원 보안 인력이 강당 입구 앞에서 참석 인원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통제가 이뤄졌다. 일부 교수들은 회의가 길어질 것으로 예상한 듯 음식물이 담긴 봉투를 들고 입장했다. 당초 총회는 저녁 6시 30분께 끝날 것으로 예정됐지만 1시간 가량 늦어지면서 방 위원장의 브리핑은 7시 30분부터 진행됐다. 개인 일정이 있는 교수들은 총회가 마무리되기 이전에 나갔다. 이들은 비상계단으로 움직이는 등 취재진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부, 전면 재검토 선언해야…증원 2000명 근거도 부족”
이날 총회에서는 교수협의회를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응답률 78%)가 공개됐다.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해 필수의료정책패키지, 국민건강보험, 전공의 복귀, 집단행동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수협의회는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교수들이 일정 행동을 취하는 것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87%의 응답자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앞서 비대위는 이 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총회에서 집단행동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가 타협을 한다면 어떤 방안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66%의 응답자가 ‘전면 재검토 선언 후 객관적,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포함한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밖에 적절한 선에서 정원 증원 합의(28%), 정원 증원이 포함되는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합의 반대(4%), 기타 의견(2%) 등이 나왔다. 이들은 필수의료정책패키지를 두고 필수의료 분야에 오히려 해악을 끼칠 것이다(51%), 현 상황과 별 차이를 만들지 못할 것이다(38%)라고 응답하는 등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수협의회는 정부가 홍윤철 서울의대 교수,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논문 3편을 근거로 연 2000명의 증원안을 내놓은 것이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며, 2025년도에 늘릴 수 있는 규모가 2000명을 월등히 상회한다는 주장이 적절한 근거에 기초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들은 임상의학 실습 기회의 감소, 기초의학 실습 기자재 등의 부족, 도서관·기숙사·강의실 등의 시설 및 공간 부족, 교육의 질 감소 및 국민 피해 등을 예상 문제로 꼽았다.
국민건강보험과 관련한 내용도 설문조사에 담겼다. 연 2000명 규모로 의대 정원이 증원되었을 때 건강보험 재정이 어떻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지에 대해 응답자의 68%가 ‘증원된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기 전에 이미 의료시장에 진출한 의사들 사이에 경쟁이 생겨, 현재 예상보다 더 빠르게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거나, 더 큰 국고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고 답했다. 증원된 학생들이 전문의가 되기 전까지는 현재 예상과 별 차이가 없겠지만, 그 이후부터는 건강보험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29%였다.
교수협의회는 필수의료정책패키지의 결과로 건강보험 재정이 빠르게 고갈되는 경우 미국과 같은 의료체계(42%), 영국과 같은 의료체계(30%), 현재 한국과 같은 의료체계를 세금으로 유하(30%)되는 등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서울의대에 의과학과(가칭)이 신설되어 졸업생들이 의사면허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졸업생 중 상당수는 환자를 치료하는 분야로 편입되거나(83%), 의과학 분야에서 더 큰 기회가 있는 미국 등의 해외 선진국으로 이민을 갈 것(9%)이라고 답했다.
다만 이들은 과학적, 합리적,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결정된다면 논의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 95%가 동의했다. 또 정부가 정원 증원 규모를 못 박은 상황에서 전공의와 학생이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교수가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높은 4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현 의료사태 해결을 위한 제안서를 발표한다. 13일에는 보건의료단체, 시민단체, 정치계 및 각 의대 비대위와 국민 연대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은 오는 14일 의대생 집단 유급과 전공의 복귀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달 안에 의대생들의 등교 거부 등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 집단 유급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장에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게 면허정지 처분이 내려지는 것도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의대 교수들도 이번 주중에 의견을 모은다. 성균관의대 교수협의회는 오늘(12일) 오후, 가톨릭의대 교수협의회는 14일 회의를 연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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