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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암흑 물질은 무겁지 않다, 너무너무 가볍다?

'차가운' 입자 시뮬레이션과 실제 관측 결과 달라, '퍼지' 입자 적용하면 해결

2024.03.11(Mon) 13:49:13

[비즈한국] 18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는 혜성 사냥꾼이었다. 그는 가끔 예고 없이 밤하늘에 나타났다가 며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혜성에 주목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쉬지 않고 혜성을 관측했다. 평생에 걸친 끈질긴 관측 끝에 그가 새롭게 발견한 혜성만 13개나 된다. 한 사람이 살면서 일평생 볼 수 있는 혜성의 수가 평균 몇 개나 될지 생각해보면 굉장한 발견이다. 

 

그런데 평생 메시에를 괴롭힌 방해꾼이 있었다. 밤하늘 곳곳에서 마치 혜성처럼 뿌옇고 흐릿하게 보이는 이상한 천체들이었다. 사실 혜성도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는다. 꽤 긴 시간 동안 천천히 흘러간다. 그래서 하룻밤만 관측해서는 뿌옇게 보이는 천체가 실제 혜성인지 아니면 우주에 떠 있는 가스 구름일 뿐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메시에는 혜성과 착각하지 않기 위해 관측하는 틈틈이 이 이상한 천체들을 목록으로 정리했다. 천문학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그 유명한 메시에 카탈로그다. (밤하늘 덕후들은 하룻밤 사이에 망원경 하나로 메시에 카탈로그에 있는 천체를 한 번씩 훑어보는 레이스를 ‘메시에 마라톤’이라고 부른다.) 

 

샤를 메시에가 관측한 이상한 천체의 모음 ‘메시에 카탈로그’. 사진=astromaphilli14.blogspot.com


메시에 카탈로그에는 오늘날 우리 은하 속의 초신성 잔해, 갓 태어난 어린 성운, 성단으로 밝혀진 크고 작은 가스 구름을 비롯해서, 훨씬 멀리 떨어진 크고 아름다운 외부 은하들이 여럿 이름이 올라가 있다. 재밌게도 그 중에는 대체 당시에 메시에가 무엇을 보고 기록했는지 아직도 정체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천체도 있다. 

 

혜성을 쫓던 메시에가 헷갈리던 작은 가스 구름 목록의 첫 번째 버전을 발표한 때가 1774년이다. 그로부터 딱 250년이 지난 지금 천문학자들은 메시에의 뒤를 이어 우주의 더 깊은 어둠 속에서 더 희미한 구름을 찾고 있다. 

 

18세기 당시 메시에가 쫓았던 다양한 성운과 은하가 비교적 밝고 거대한 뭉게구름이었다면,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쫓는 존재는 훨씬 작고 흐릿한 우주의 조각구름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우주의 구름 조각을 찾고 있는 이유도 다르다. 메시에는 혜성이라는 독특한 천체와 헷갈리지 않기 위해 우주의 구름들을 따로 정리했다. 반면 오늘날의 천문학자들은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고 이상한 어둠의 존재를 쫓기 위해 우주의 구름 조각을 찾고 있다. 바로 지금껏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비밀, 암흑 물질이다. 

 

우주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밝게 빛나는 별과 가스 구름뿐 아니라 빛과 그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 암흑 물질이 있다. 빛으로는 볼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이지만 오직 단 하나 중력을 통해 암흑 물질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맴도는 별들이 은하의 중력을 벗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붙잡혀 있는 모습이나, 먼 우주의 빛이 강한 중력의 영향으로 왜곡되어 휘어져 보이는 중력 렌즈 같은 현상이 있다. 이런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간접적인 증거를 통해 천문학자들은 분명 우주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더 존재할 것이라 생각해왔다. 심지어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이 물질이 훨씬 많다. 빛으로 쉽게 관측할 수 있는 일반 물질에 비해 암흑 물질의 질량이 약 4~5배 더 많이 차지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질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미스터리한 존재, 암흑 물질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농담처럼 대꾸한다. “천문학자들은 할 일을  했다. 이제 입자물리학자들이 할 일을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천문학만으로는 암흑 물질이 정확히 어떤 입자인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명확한 답을 들려주기 어렵다. 별과 은하의 움직임, 중력 렌즈 등 천문학적 현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암흑 물질로 추정되는 무언가 있어야만 지금의 우주가 설명된다는 답답한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뿐이다. 솔직히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암흑 물질이란 게 필요하다는 건 이미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의 관측을 통해 수없이 입증되었다. 

 

암흑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이제 거대한 입자 가속기로 우주를 ‘실험’하는 입자물리학자의 숙제다. 벌써 5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암흑 물질의 정체가 궁금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면 이제 더 이상 나 같은 천문학자를 괴롭히지 말기를 바란다. 천문학자는 정말 할 일 다 했다. 암흑 물질의 미스터리가 아직 풀리지 않은 이유는 입자물리 연구실에서 일하는 게으른 내 동료들 잘못이다. ^^

 

비록 천문학자들이 암흑 물질의 정체 자체를 명확하게 밝혀내지는 못하지만, 입자물리학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힌트를 선물해줄 수는 있다. 바로 암흑 물질이란 놈들이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른다. 정체도 모르면서 어떻게 성질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것이 가능하다. 

 

암흑 물질은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지만 은하와 은하단 속 육중한 질량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암흑 물질을 이룰 것이라 추정되는 가상의 입자를 ‘윔프(WIMP)’라고 불렀다. 상호작용을 아주 약하게 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뜻이다. 암흑 물질이라면 자고로 이런 입자여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동어반복인 셈이다. 

 

암흑 물질이 정말 윔프라면 오직 중력의 지배만 받을 것이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 때부터 우주 전역에 퍼져 있던 암흑 물질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에 이끌려 높은 밀도의 반죽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반죽 덩어리가 주변에 있던 가스 물질을 함께 끌어당기면서 은하와 별을 만들게 된다. 이처럼 순전히 중력에 의해서만 반죽되고 뭉치는 방식의 암흑 물질을 천문학에서는 차가운 암흑 물질(CDM, Cold 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근까지 많은 시뮬레이션은 차가운 암흑 물질을 적용했을 때, 우주의 진화를 꽤 잘 묘사해왔다. 초기 우주에 퍼져 있던 물질이 모여들면서 오늘날 관측되는 것과 비슷한 거대한 우주 거대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의 해상도가 더 좋아지고 정교해지면서 오히려 실제 우주와는 다른 시뮬레이션의 한계가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우선 하나는 시뮬레이션에서는 작은 위성 은하들이  실제 우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초기 우주에 탄생한 작은 은하들은 서로 반죽되면서 덩치 큰 은하로 성장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은 큰 은하 주변을 맴도는 굉장히 많은 수의 위성 은하를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 은하를 비롯해 주변의 많은 큰 은하를 아무리 관측해도 그 주변에 시뮬레이션만큼 많은 수의 위성 은하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렇게 실제 관측에서는 위성 은하가 적게 발견되는 문제를 ‘실종된 위성 은하 문제(Missing satellite problem)’라고 한다. 

 

시뮬레이션과 관측이 어긋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시뮬레이션에서 적용한 차가운 암흑 물질은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반죽되고 모여든다. 그래서 암흑 물질의 밀도 분포를 보면 은하 외곽에서 중심으로 갈수록 아주 빠르게 밀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분포를 천문학자 세 명의 이름을 붙여 나바로-프랭크-화이트 분포(Navarro–Frenk–White Profile), 줄여서 NFW 분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은하들을 관측해보면 그렇지 않다. 중심으로 갈수록 암흑 물질의 밀도가 높아지기는 하지만 모델만큼 가파르게 높아지지 않는다. 실제 은하에서는 은하 중심으로 가면서 물질의 분포가 천천히 증가하다가 중심부에서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시뮬레이션이 재현한 은하에 비해 실제 은하에서는 중심의 물질 분포가 훨씬 완만하다. 이처럼 은하 중심에 물질이 밀집된 정도가 시뮬레이션에 비해 훨씬 완만하게 관측되는 것을 ‘커스프-코어 문제(Cusp-core problem)’라고 부른다. (‘커스프’하다는 표현은 시뮬레이션 속 은하 중심부 물질의 밀도가 굉장히 가파르고 뾰족하게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차가운 암흑 물질 모델로 시뮬레이션을 구성하면 높은 밀도로 물질이 모여드는 ‘코어'가 형성된다.


이 두 가지는 윔프처럼 차가운 암흑 물질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에서 항상 튀어나오는 문제다. 그래서 일부 물리학자들은 암흑 물질이 중력에 의해서만 모여드는 차가운 성질이 아니라 다른 방식일 가능성을 고민한다. 윔프는 가상의 무거운 입자다. 전통적으로 우주 전체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 물질을 설명하기 위해 보통 암흑 물질은 무거운 입자로 생각해왔다. 그런데 만약 정반대라면 어떨까? 빛과 어느 정도 상호작용도 할 수 있는, 굉장히 작고 가벼운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오히려 아주 작고 가벼운 입자로 이루어진 암흑 물질이라면 기존의 차가운 암흑 물질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뮬레이션과 관측의 차이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 하나의 질량보다 1조 곱하기 1조 곱하기 1만 분의 1만큼! 암흑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가 정말 아주아주 가벼운 입자일 가능성을 한번 생각해보자. 양자역학에 따르면 이 정도로 작고 가벼운 입자는 사실상 파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 질량이 작아서 파동성이 강하게 두드러진다. 물리학자 드브로이의 물질파 이론을 적용하면 이 가상의 작고 가벼운 입자가 어느 정도 규모의 파동성을 갖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너무 질량이 가벼운 나머지 이 가상 입자의 물질파 파장은 길이가 3000광년이나 된다! 대략 지구에서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까지 거리의 8분의 1 규모에 맞먹는다. 작은 입자 하나의 물질파 파동 규모가 정말 천문학적인 스케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파동을 일으키는 작은 입자들이 한데 모이면 호수에 돌멩이 여러 개를 던졌을 때 크고 작은 다양한 파문이 뒤섞이듯 입자들의 파동이 서로 모여 부드럽게 간섭을 일으킨다. 이처럼 파동성을 크게 보이는 암흑 물질 입자라면 높은 밀도로 한데 모여 있기 어렵다. 더 넓은 범위에 부드럽게 퍼지게 된다. 입자들이 너무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모이지 못하게 사방으로 밀어내는 일종의 양자역학적인 압력이 작용하게 되는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암흑 물질을 펑퍼짐하게 퍼지려고 하는 암흑 물질이라는 뜻에서 이를 ‘퍼지 암흑 물질(Fuzzy 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퍼지 암흑 물질을 적용하면, 차가운 암흑 물질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말끔하게 해결된다! 퍼지 암흑 물질은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모여들지 못하기 때문에 은하 중심부 물질의 밀도 분포는 더 부드럽게 퍼진다. 실제 은하에서 관측되는 모습과 비슷하다. 

 

또 퍼지 암흑 물질 입자들은 서로 잘 반죽되지 못하게 밀어내는 양자역학적 압력이 작용하다보니, 비교적 가벼운 반죽 덩어리로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금방 흩어지고 파괴된다. 서로를 밀어내는 양자역학적 압력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반죽 덩어리만 살아남는다. 기존의 차가운 암흑 물질만 적용했을 때에는 가벼운 반죽 덩어리까지 너무나 많이 살아남다보니 큰 은하 주변에서 지나치게 많은 작은 위성 은하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퍼지 암흑 물질을 적용하면 가벼운 반죽 덩어리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큰 은하 주변을 맴도는 위성 은하의 수도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실종된 위성 은하 문제’ 역시 깔끔하게 해결된다! 그래서 최근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이 암흑 물질의 성질이 어쩌면 차갑지 않고 ‘퍼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우주의 어둠 속을 떠도는 아주 흐릿한 왜소은하에서도 암흑 물질의 퍼지한 성질을 엿볼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앞서 2015년 우주 전역을 훑어본 슬론 전천 탐사 관측을 통해 고래자리 방향의 하늘 한편에서 무언가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이상한 영역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워낙 흐릿한 탓에 망원경 센서에 주변 다른 천체의 빛이 번지면서 생긴 얼룩인지, 아니면 정말 흐릿한 천체가 숨어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천문학자들은 2019년 1월 카나리아제도 라팔마섬에 있는 지름 10.4m의 그랑 텔레스코피오 카나리아스 망원경(GTC)을 통해 같은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아주 흐릿한 새로운 은하의 존재를 확인했다. 너무 어두워서 주변 배경 하늘에 파묻힐 만큼 흐릿한 은하였다! 천문학자들은 이 흐릿하고 펑퍼짐한 은하에 스페인어로 구름을 뜻하는 ‘누베’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누베 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3억 광년으로 추정된다. 거리를 감안했을 때 밤하늘에서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누베의 전체 별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000만 배 수준이다.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아주 작은 위성은하, 소마젤란은하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가벼운 질량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벼운 질량에 비해 하늘에서 보이는 은하의 크기는 너무 크다. 누베의 지름은 대략 4만 5000광년. 우리 은하 지름의 3분의 1 수준에 맞먹는다. 우리 은하의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꼬꼬마 은하’가 우리 은하에 맞먹는 엄청난 크기를 가진 것이다! 

 

추가 관측을 통해 존재가 확인된 아주 어둡고 흐릿한 왜소은하 ‘누베’. 사진=GTC/Mireia Montes


누베 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3억 광년으로 추정된다. 거리를 감안했을 때 밤하늘에서 아주 흐릿하게 보이는 누베의 전체 별 질량은 태양 질량의 약 4000만 배 수준이다. 우리 은하 곁을 맴도는 아주 작은 위성은하, 소마젤란은하 정도밖에 안 되는 아주 가벼운 질량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벼운 질량에 비해 하늘에서 보이는 은하의 크기는 너무 크다. 누베의 지름은 대략 4만 5000광년. 우리 은하 지름의 3분의 1 수준에 맞먹는다. 우리 은하의 1000분의 1밖에 안 되는 ‘꼬꼬마 은하’가 우리 은하에 맞먹는 엄청난 크기를 가진 것이다! 

 

그만큼 은하 속 별과 물질이 굉장히 펑퍼짐하게 퍼져 분포한다. 워낙 별들이 넓게 퍼져 있다 보니 은하의 밝기가 굉장히 어둡게 보인다. 그래서 어지간한 관측에서는 주변 배경 하늘에 파묻혀 모습조차 거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별과 물질이 너무 넓게 퍼져 분포하면서 밀도가 낮은 은하를 울트라 디퓨즈 은하(UDG, Ultra-Diffused Galaxy)라고 부른다. 이번에 발견된 누베는 UDG 중에서도 아주 극단적으로 밀도가 낮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베는 어떻게 극도로 낮은 밀도로 파괴되지 않고 계속 은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까? UDG가 만들어지는 대표적인 메커니즘 중 하나는 훨씬 큰 은하들이 곁을 스쳐지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중력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면서 여러 개의 작은 은하 조각으로 쪼개지는 것이다. 이렇게 은하끼리 주고받는 중력, 조석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작은 조각 은하를 조석 왜소 은하(TDG, Tidal Dwarf Galaxy)라고도 부른다. 그동안 발견된 많은 UDG의 대부분 90% 이상이 이러한 TDG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누베 은하도 흔한 TDG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 보인다. 누베 은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는 누베로부터 무려 140만 광년이나 떨어진 UGC 929 은하다. 보통 TDG는 큰 은하 주변 5만~6만 광년 이내의 훨씬 가까운 범위 안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누베가 UGC 929와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조각 중 하나라고 보기는 어렵다. 누베는 사실상 주변에 이웃 은하가 없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떠도는 정말 이상한 은하다. 

 

누베 은하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보정한 사진. 사진=GTC/Mireia Montes


이처럼 아주 흐릿한 은하의 존재는 기존의 차가운 암흑 물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윔프로 구성된 차가운 암흑 물질은 서로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물질이 높은 밀도로 모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지나치게 높은 밀도로 물질이 모이지 못하도록 양자역학적인 압력이 작용할 수 있는 퍼지 암흑 물질이라면 누베와 같은 극도로 낮은 밀도의 펑퍼짐한 왜소 은하를 설명할 수 있다. 메시에 카탈로그의 뒤를 이어 21세기 새로운 은하 카탈로그에 이름을 올리게 된 누베라는 이름의 작은 조각 구름이 끈질긴 미스터리, 암흑 물질의 성질에 대한 작은 힌트를 제공하는 새로운 증거 조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번 발견을 조심스럽게 바라봐야할 한계가 남아 있다. 천문학자들은 누베 은하까지의 거리를 추정하기 위해 지름 100m 크기의 그린 뱅크 전파 망원경을 동원했다. 그리고 은하 속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을 관측해 거리를 파악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은하가 워낙 어둡고 흐릿하다 보니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된 수소 구름이 정말 누베 은하에 속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거리에 있지만 우연히 비슷한 방향에 겹쳐 보였을 뿐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만약 수소 구름이 누베 은하보다 훨씬 먼 배경에 우연히 겹쳐 보였을 뿐이라면? 우리는 누베까지의 거리를 실제보다 훨씬 멀다고 오해하게 된다. 만약 거리를 잘못 추정했다면 이건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관측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밤하늘에서 보이는 누베의 겉보기 크기뿐이다. 그 겉보기 크기를 은하의 실제 크기로 환산하려면 은하까지의 거리를 적용해야 한다. 여기에서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사실은 훨씬 작은 평범한 은하가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 그 뒤에 우연히 겹쳐 있던 먼 수소 구름 때문에 거리를 착각한 바람에 엄청 거대하고 흐릿한 은하가 아주 먼 거리에 놓여 있다고 착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발견이 정말 퍼지 암흑 물질의 새로운 증거가 될지를 결론짓기 위해서는 누베까지의 정확한 거리를 파악하는 관측이 뒤따라야 한다. 

 

아쉽게도 여전히 암흑 물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의 끈질긴 관측을 통해, 우리는 암흑 물질이 적어도 어떤 성질을 갖고 있어야 할지는 어렴풋하게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천문학적 관측을 통해 파악한 암흑 물질의 성질은 실제 실험 현장에서 암흑 물질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는 입자물리학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예상되는 암흑 물질의 성질에 맞춰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실험을 디자인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암흑 물질을 위한 덫을 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우주를 떠도는 크고 작은 조각 구름들을 제법 많이 찾아냈다. 암흑 물질의 정확한 몽타주를 그릴 수는 없지만 대강 어떤 성질을 갖는지 투박한 실루엣 정도는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뿐. 지구 위의 실험실 현장에서 이 미지의 구름을 재현해내는 것이다. 하루빨리 입자물리학자들의 실험실 현장에서도 새로운 발견이 뒤따라, 암흑 물질이라는 거대한 먹구름으로 가려진 우주가 빨리 개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아직 빈 칸으로 남아 있는 입자들의 표준 모형 카탈로그에 새 암흑 물질 입자의 이름이 당당히 추가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참고

https://www.aanda.org/articles/aa/full_html/2024/01/aa47667-23/aa47667-23.html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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