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증시가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은 기술주 강세에 올해 들어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AI가 미래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핵심으로 떠오르면서 기업들은 물론 세계 주요국들은 AI와 이를 지원하는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데 주력 중이다. 애플은 10년간 투자했던 전기차를 포기하고 인력을 AI에 재배치하기로 했고, 미국은 ‘제2의 반도체법(칩스법)’ 마련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AI 전쟁에서 미국에 밀리자 ‘AI+ 행동’이라는 AI 산업 육성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AI 지원을 위해 발의된 13개 AI 관련 법률이 담당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또 K칩스법이라 불리는 국내 반도체 투자 기업 추가 세제지원 제도는 종료를 앞두고 있다. AI와 반도체 지원에 머뭇거리다가는 한국 경제가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보고한 올해 업무보고에서 ‘A+ 행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빅데이터, AI 등의 연구·응용을 심화하고 ‘AI+ 행동’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 반도체와 AI 기술 제재를 강화하자 이를 벗어나기 위해 국가 차원의 AI 산업 육성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린 3789억 위안(약 70조1500억 원)으로 책정했다.
AI 분야 선두주자인 미국은 AI 수요 충족을 위해 반도체 제조업을 육성·지원하는 정책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달 21일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 화상연설을 통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 및 업계의 다른 고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칩(반도체)의 양은 놀라울 정도”라며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려면 ‘칩스법 2(Chips Act Two)’라고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지속적인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2년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지원(5년간 총 527억 달러)을 위해 발효한 칩스법(Chips Act)의 2탄을 준비 중임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들에 비해 한참 뒤쳐진 상태다. 영국 데이터분석 미디어 토터스 인텔리전스(Tortoise Intelligence)에 따르면 우리나라 AI 산업 수준은 62개국 중 6위이다. 순위는 나쁘지 않지만 1위인 미국(100.0점)과 비교하면 40.3점으로 기술력 격차가 크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AI 투자를 늘리지 않을 경우 미국을 따라잡기는 요원하다는 점이다. 미국 AI 개발 업체인 AIPRM은 우리나라가 AI 산업 관련 투자를 2023년 수준으로 장기간 유지할 경우, 미국을 따라 잡는데 447년이 걸린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38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사정이 이렇지만 AI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법률안은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AI와 관련돼 21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13건이다. 이 중 ‘AI 연구개발 및 산업 진흥, 윤리적 책임 등에 관한 법률안’과 ‘AI 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 ‘AI 기술 기본법안’ 등 7개 법안의 경우, 지난해 2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이 7개 법안을 통합한 대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후 논의가 미뤄지면서 과방위 전체 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 외에 ‘AI 교육진흥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 ‘한국 AI·반도체 공과대학교법안’과 ‘AI 집적단지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은 해당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AI 개발에 핵심이 되는 반도체 지원도 지지부진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3월 미국 칩스법을 본 따 국내 반도체 시설 투자 기업에 추가 세제 지원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일명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확대됐다. 문제는 해외 주요국들이 반도체 시설 투자 기업에 대한 세액 공제를 5~10년 유지하는 데 반해 K칩스법은 올해 말이면 혜택이 끝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K칩스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경제계 관계자는 “올해 우리나라 반도체 지원 예산이 1조 3000억 원에 불과하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K증시가 기술주가 이끄는 세계 증시 호황의 혜택을 못 받는 이유가 다 있다”며 “AI 법안 제정이나 K칩스법 개정이 늦어지면 당장 증시에서 저평가되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첨단 산업 분야에서 뒤쳐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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