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은 사전에 입찰을 거쳐 거래처를 선정하고 거래조건을 결정하는 경쟁입찰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강제다. 경쟁입찰과 대비되는 제도로는 ‘수의시담’이 있다. 수의시담이란 이미 결정된 계약업체와 적절한 선에서 가격을 조율한 후 계약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서 ‘시담’이란 협의나 협상을 뜻하는 일본식 한자어다. 언어순화 차원에서 시담 대신 협의, 협상을 사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법령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데다 수십 년간 행정절차에서 사용돼 어감을 대체할 용어를 찾기 어려워, 지금도 시담을 쓴다.
관급사업에서 수의시담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전제 조건으로 경쟁입찰이 2회 유찰돼야 하는데, 경쟁입찰의 세부 절차인 입찰공고-투찰-개찰-낙찰자 선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적기에 사업을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유찰을 기다리느라 해가 넘어가면서 전년도 배정된 예산이 취소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수의시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업무 담당자는 수의시담으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워졌다. 내부적으로 수의시담을 비리나 유착의 산물로 간주해 내부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고, 탈락한 사업자가 민원이나 투서를 제기해 입찰 담당 공무원이 곤혹스러운 일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기관은 사소한 사업이라도 경쟁입찰을 거쳐 사업자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다. 나라장터 시스템에 입찰공고의 제목·사업 명칭 등을 검색해 보면, 경쟁입찰이라는 거창한 절차에 비해 사업 내용이 지극히 사소해 괴리가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사기업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사기업이 거래처를 선정할 때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할 가치는 효율성이다. 사업수행의 측면에서 최적의 사업자를 발견했다면 즉시 그 사업자와 담판을 지으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입찰은 지극히 비효율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경험적인 측면에서 이 같은 방식이 나쁘다고 볼 순 없다. 자문 변호사로서 거래처 선정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A 회사는 거래처 선정을 위한 업무 체계를 다시 구성해 경쟁입찰 제도를 의욕적으로 도입했다. 이후 경쟁입찰을 통해 최저가를 제안한 사업자(협력사)를 선정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최저가 사업자로 인해 회사는 엄청난 곤란을 겪게 됐다.
협력사의 업무 담당자가 갑자기 연락되지 않는 것은 사소한 수준의 문제였다. 협력사는 사업을 볼모로 막무가내로 계약대금 증액을 요구하거나, 사소한 시비를 문제 삼아 형사고소(배임 등)를 하거나 각지에 투서를 살포해 A 회사의 신용을 훼손했다.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A 회사의 업무 담당자였다. 경영진으로부터 “협력사한테 휘둘린다”라는 평가를 받아 승진에서 누락됐고, 경찰서에도 들락날락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면, 사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사전에 검증된 업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한 후 장기적으로 거래하는 것은 경영적으로 나쁜 선택이 아니다. 경쟁입찰 없이 회사 오너가 정한 협력사와 거래하는 것도 합리적일 때가 있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세상이 복잡하고 지켜야 할 법도 많다 보니 회사의 업무 담당자가 신경 쓸 문제도 많아졌다. 오너 또는 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사업자와 거래를 시작하긴 하는데, 혹시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가 될까봐 걱정인 것이다. 부당지원행위란 부당하게 다른 회사 등에 대여금 등을 제공하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또는 다른 사업자와 직접 거래하면 상당히 유리한 데도 거래상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다른 회사 등을 매개로 거래하는 행위를 말한다.
부당지원행위 규제는 IMF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1996년 공정거래법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과거 우리나라 재벌은 ‘호송선단식 경영’이라 불리는, 우량한 업체가 계열사를 이끄는 방식으로 기업집단이 운영했다. 이런 방식은 경제 호황기와 성장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경제 성장이 정체기에 이르자 기업집단이 동반 부실에 이르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는 호송선단식 경영 수단인 계열사 간 지원 행위가 문제라고 보고 IMF 사태를 계기로 부당지원행위 규제를 도입했다. 공정위가 규제 근거 중 하나로 꼽는 “부당지원행위는 기업집단 내 핵심역량을 분산시키고, 지원 주체인 우량 계열사마저 동반 부실에 빠지게 한다”라는 점을 제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 후 2013년 경제민주화 이슈를 계기로 부당지원행위의 성립 요건 중 ‘현저히 유리한 거래’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완화됐다.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다른 회사를 매개로 한 행위, 즉 통행세 거래도 부당지원행위 규제 대상 중 하나로 규정했다.
이처럼 부당지원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업무 담당자가 법 위반 여부를 걱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부당지원행위 리스크 관리 방법에 관한 질의를 받는 경우 복수의 사업자로부터 비교 견적을 받고(절차적 요건), 사업자 선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할 수 있는 효율성, 긴급성, 보안성 등의 사유를 미리 확보하는 것(실체적 요건)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다만 대부분의 거래가 관련 시장에서 경쟁 제한성을 초래하기 어려울 만큼 소규모 거래인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경우에도 부당지원행위 규제를 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정을 반영해 심사 지침을 개정했다.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전지대’의 요건을 명확히 한 것인데, 이로써 업무 담당자의 부담이 한층 가벼워졌다. 개정 전 심사 지침에는 상품·용역 거래 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전지대 조항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 이 때문에 모든 거래가 규제 대상에 포함됐고, 안전지대는 유명무실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2022년 12월 심사 지침의 개정으로 안전지대 조항의 요건이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 거래 당사자 간 해당 연도 거래총액이 100억 원 미만’으로 변경돼 연간 거래총액을 기준으로 안전지대 해당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결론적으로 어느 협력사와 거래를 하는데 그 거래 규모가 연간 100억 원 미만이고, 정상가격과의 차이가 7% 미만이라는 점을 입증할 자료가 있다면 부당지원행위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지는 셈이다.
이처럼 업무 담당자가 법령 위반 소지를 미리 파악해 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회사에 도움이 되는 안전지대 등 유리한 조항도 숙지해 놓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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