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홍콩H지수를 기초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이 늘면서 판매사의 자율 배상 여부와 배상 수준에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5년 전 대규모 환매 중단된 부실 펀드를 둘러싼 분쟁조정과 피해 보상조차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다. 기다리다 지친 투자자들이 법적 대응을 고민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늑장 대응이 투자자의 고통을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은 디스커버리 펀드, 독일 헤리티지펀드, 라임펀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 여러 사모펀드의 대규모 환매 중단이 발생한 해다. 환매 중단 규모는 2조 원 이상, 투자자 수는 8000명을 훌쩍 넘는다. 그 중 디스커버리 펀드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인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가 운용한 펀드로, IBK기업은행·하나은행·신한은행 3개 은행과 IBK투자증권·한국투자증권·유안타증권 등 9개 증권사에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판매했다. 이후 부실 펀드임이 밝혀지면서 2019년 4월 환매 중단돼 국내 투자자가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 투자자들은 민사 소송으로 배상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법적 검토에 나섰다. 소송 대상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사와 펀드 판매사다. 판매 과정에서 불법성이 인정되면 보상 확대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은 재조사를 거쳐 분쟁조정에 나선다고 했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진척이 없는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주요 투자자 피해 운용사 검사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고 2023년 8월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3개 자산운용사의 추가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대표와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나와서다.
디스커버리 운용사의 경우 ‘펀드 돌려막기’를 위해 투자 대상을 거짓으로 작성한 제안서를 이용하거나 펀드 자금으로 대출을 받아 이자를 면제해주는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또 관계자가 대가를 받고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등 배임수재·횡령 혐의도 밝혀졌다.
당시 금감원은 “운용사와 판매사의 책임이 커질 수 있고, 불완전판매 등에 해당할 수 있다”며 “분쟁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운용사의 위법 행위 등 새로운 사실관계가 확인돼 분쟁조정 실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조사 결과에 따라 9월에는 기업은행 등 판매사 현장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해를 넘긴 지금도 디스커버리 펀드와 관련한 분쟁조정위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투자자 피해 운용사 검사 TF팀은 해체돼 기존 부서에서 펀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2021년 5월 디스커버리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6792억 원대)한 IBK기업은행의 손해배상 비율을 40~80%로 결정했다. 분쟁 조정위는 판매사 동의 하에 미상환 금액을 손해로 가정하고, 분조위에서 정한 배상 비율에 따라 우선 배상 후 사후 정산하는 방식을 권고했다.
금감원은 2021년 손해배상 비율을 발표하면서 “사후정산 방식에 동의한 기업은행에 대해 우선 분쟁조정 한 것”이라며 “나머지 판매사에 대해서는 검사 진행상황 등을 고려해 배상 기준을 참고해 순차적으로 분쟁 조정할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분쟁조정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디스커버리 펀드를 111억 원대 판매한 IBK투자증권은 불완전판매로 제재 받았다. IBK투자증권은 판매 과정에서 영업점 직원이 투자위험 정보 등의 중요사항을 누락하고, 원금손실 위험이 낮다고 왜곡하는 등 설명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설명서 교부 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와 투자 광고 규정 위반 등으로 금융당국은 2023년 2월 IBK투자증권에 기관경고와 과태료 12억 7000만 원을 부과했다. 제재 이후 IBK투자증권은 언론에 분조위에서 최종보상액을 결정하면 피해액을 사후 정산하겠다고 밝혔지만, 분쟁조정이 열릴 기미가 없어 보상 수준을 정할 시기도 요원하다.
판매사와 금융당국이 미적대는 가운데 장하원 대표 등이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보상 문제가 남은 투자자에겐 불안한 소식이다. 디스커버리 펀드의 부실 문제를 알고도 판매한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진 장 대표와 디스커버리자산운용 등은 2월 2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손실을 명시하지 않은 것으로는 사기죄 성립이 어렵고, 운용사 측이 수익률 보완에 나섰다고 봤다. 검찰은 항소심 결과에 불복해 2월 21일 대법원에 상고를 접수했다.
사기 판결이 나오길 기다렸던 피해자들은 맥이 빠졌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대책위원회의 이의환 상황실장은 “금감원은 분쟁조정을 개최하지 않고, 판매사는 아무 대책이 없다. 조정 전에 재판 결과를 보려고 한 것 같다”며 “2021년 기업은행의 배상 기준안을 마련한 것처럼 나머지 증권사와 은행도 사적 화해나 조정에 나서야 하는데 시간만 지체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21년 나온 기업은행의 분쟁조정 배상 비율은 50%대로 다른 펀드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며 “현장검사와 재조사 이후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분쟁조정을 재개할 기미가 없고, 홍콩ELS가 터지면서 오랫동안 기다린 환매 중단 펀드의 피해자는 힘이 빠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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