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유럽의 군사동맹이 다시 집결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방위비를 충분히 내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침공하도록 독려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이 3국 협력체인 ‘바이마르 삼각동맹’ 부활을 논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며 군사력 강화를 꾀하고 있다. 다른 유럽지역도 연쇄적으로 자체 안보 역량 확보 및 군사 동맹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의 방산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K-방산’ 수출 사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러시아와 가깝고 국방비 비율이 낮은 나토 회원국들이 주요 타깃이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방위비 문제를 두고 벌써부터 나토 회원국과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나토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했다. “현재 (나토 회원국에) 돈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내가 없기에 그들이 또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이건 틀렸다”라고 강조한 것.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부담하거나, 러시아가 나토 동맹을 공격해도 자국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과거 재임기에도 유럽 나토 동맹국들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하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고 시리아 북동부 미군 철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등 불협화음을 내며 나토 위기론을 불러왔다.
다시금 안보 불안을 느낀 유럽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독일, 폴란드 3국 외교장관은 파리 교외 라셀생클루에서 바이마르 삼각동맹 부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이마르 삼각동맹은 프랑스, 독일, 폴란드 3국의 비공식 협의체로 1991년 폴란드의 소련 탈퇴를 지원할 목적으로 창설됐지만, 나토 등을 통해 그 목적이 대부분 이뤄지며 논의가 중단됐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탈퇴 거론으로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다만 유럽이 현지에 주둔한 미군 8만 명과 미국의 핵우산에 안보를 크게 기대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등에 불이 붙은 폴란드가 제일 먼저 유럽 국가들이 뭉쳐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유럽의 군사 강국 프랑스, 독일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유럽은 갈수록 현실화되는 위협(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과소평가하는 이들에게 ‘찬물 샤워’ 같은 행동을 취해야 한다. 향후 12개월 내 더 큰 방공 능력과 탄약 생산 능력을 갖춰야 한다”면서 군사 부문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 안보 결합에 찬성하고 나섰다. 그는 유럽연합(EU)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유럽에서 나토를 보완하고 대서양 동맹의 기둥이 되는 안보 및 국방력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불협화음을 인지한 일본과 중국은 유럽과의 관계 개선 및 안보파트너십 체결에 나섰다. 도쿄통신에 따르면 EU 회원국들은 지난 19일 외교이사회에서 일본과 ‘안전보장 및 방위 파트너십’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력 강화를 검토하는 분야는 해양 안보, 기밀정보 교환, 사이버 공격 대응, 우주 안보, 공급망 강화 등 14개다. 중국도 악화된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 외교사령탑인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세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중국은 책임 있는 주요국으로서 그것의 주요 원칙과 정책을 일관성 있고 안정되게 유지하고, 격변의 세계에서 안정을 위한 확고한 힘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과 유럽은 지정학적, 이념적 분열을 피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트럼프발 안보 위협에 유럽은 군수품 생산을 급격히 늘리는 중이다. 프랑스는 국가적으로 방위 산업 육성을 시급히 진행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방산 업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자기만족에 빠져 (전쟁에) 무감각했다”며 업계에 ‘속도전’을 주문했다. 영국도 무기 생산을 서두르고 있다. 벤 브리지 에어버스 디펜스앤드스페이스 영국법인 회장은 영국 매체 시티AM과의 인터뷰에서 “중요한 건 생산 속도”라며 영국이 군수품 조달 속도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비 증대를 자제했던 독일마저 작년 2월 군비 지출의 ‘자이텐벤데(역사적 전환점)’를 선언하고 군수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방산 기업인 라인메탈은 독일 북부 니더작센주 운터뤼스에서 공장 기공식을 열고 “최우선 목표는 최대한 빨리 생산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독일이 탄약을 자주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생산을 서두르겠다”고 강조했다.
유럽과 미국의 안보 균열 움직임은 최근 우수한 무기 성능과 상대적으로 값싼 ‘가성비’로 인기몰이 하는 K-방산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폴란드에 이미 대규모 수출을 진행하며 무기체계의 우수성을 입증해 동유럽에서 관심을 많이 받는 터라 향후 더 큰 시장에 진입할 것이란 예측이다.
한국은 지난해 영국, 네덜란드 등과 방산협력을 강화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해 ‘반도체 동맹’ 구축과 동시에 ‘국방협력에 관한 MOU’를 체결하고, 한-네덜란드 방산 군수 공동위원회도 개최하기로 했다. 영국과는 공동으로 방산 수출의 기회를 모색하고 영연방 국가 등 신규 시장 개척을 위해 양국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등 긴밀한 방산 및 안보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은 G20 국가 중 한국과 방산 공동 수출을 위해 양해각서를 체결한 최초의 국가다.
한편으론 나토 방산의 선두 주자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생산량을 늘리며 유럽산 무기 구매 압력이 늘어나는 등 ‘블록화’를 주도한다면 K-방산이 진출할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영국이 최근 전차, 자주포 등 무기 사업을 펼치는데 같은 유럽 나라인 독일에서 생산한 무기를 사야 한다는 압력이 내부적으로 있다”며 “영국 전차 사업의 경우 독일이 영국과 합작 생산하고 있고, 영국 자주포 사업은 한국 K9과 독일산 자주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국 방산이 유럽 현지 생산, 새로운 모델 제안 등을 통해 사업을 따내야만 향후 유럽 수출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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