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도시를 나타낼 수 있는 상징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표적으로 캐릭터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경우 지난 2009년 등장한 해치가 상징 캐릭터다. 그런 해치가 최근 15년 만에 대폭 바뀌었다. 외형부터 컬러, 재질까지 기존 해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했다. 인상도 똘똘한 모범생 같았던 기존 해치보다 어딘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변했다. 여기에 해치가 심심하지 않도록 사방신에서 모티브를 딴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소울프렌즈라 이름 붙인 패밀리도 붙여 주어 새로운 콘셉트를 구축했다.
서울시가 밝힌 중요한 리뉴얼 사유는 인지도 부족이다. 2021년 기준 30%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니 리뉴얼의 명분은 충분한 셈이다. 활성화를 위해 공식 SNS에 각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인스타툰(인스타그램+카툰)을 올리면서 캐릭터의 세계관을 알리고, 문구류와 머그컵, 키링, 목베개, 수면 안대, 봉제인형 등의 다양한 상품군을 계획 혹은 출시하는 등 최근 트렌드에 맞추려는 여러 시도가 보인다. 카카오 프렌즈나 라인 프렌즈의 사례도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 시민들도 있다. 가장 큰 비판 이유는 해치 같지 않다는 것이다. 바뀐 색깔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는 크게 중요한 의견은 아니라고 본다. 비판하는 시민 중 보기 좋다던 기존 노란 해치를 제대로 알고 누리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좋은 방향으로 밈이 된다면 부정적 의견은 곧 사라질 것이다. 퀄리티가 처참한 경우가 아니라면 캐릭터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지속적인 전개력이다. 미키마우스 같은 유명 캐릭터도 원본을 고수하지 않고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거듭하며 장수해 왔다.
물론 개선점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해치’ 스러운 디테일을 더 살려야 한다. 원래 해치는 몸 여기저기에 여러 특징을 갖고 있다. 관계자 인터뷰에서는 디테일을 하나하나 유지하다 보면 리디자인의 이유가 없어 확 바꿨다고 하는데 그러다 반대쪽으로 너무 나간 느낌이다. 단적인 예로 3D 해치는 목에 방울을 달고 있다. 그런데 2D 해치의 동일 요소는 방울로 보이지 않고 차라리 게임 캐릭터 팩맨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함께 등장한 소울프렌즈도 마찬가지다. 디테일의 지나친 생략으로 인해 모티브가 무엇인지 설명 없이 알 수 없다. 캐릭터 표현이 반드시 사실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어도, 이 동물 같기도 하고 저 동물 같기도 한 지나친 생략은 근본 없는 조형으로 보일 수 있다. 디테일이 무너져 ‘앵그리버드’를 연상시키는 주작의 형태가 대표적이다.
캐릭터를 둘러싼 그래픽 디자인도 본 캐릭터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공을 거둔 모든 캐릭터는 고유의 색상과 서체, 일관된 스타일의 부가적 일러스트레이션을 갖고 있다. 해치&소울프렌즈의 디자인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대충 친근한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기는 한데 아직 어수선하다. 캐릭터의 롱런을 바란다면 중구난방 그래픽이 정체성을 해치기 전에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통일된 디자인을 해나가야 한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네이밍이다. 소울프렌즈를 구성하는 주작, 청룡, 현무, 백호에는 각각 ‘빡친’ 주작, ‘댕댕’ 청룡, ‘욜로’ 현무, ‘돌격’ 백호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호를 제외하면 전부 속어나 유행어로 되어 있다. 수십 년간 쓰이면서 대중적 관용어로 완전 정착된 말이 아니라면 유행어의 적극적 활용은 좋지 않다. 해당 유행어가 사라질 때 그에 기댄 마케팅도 급속도로 쇠퇴하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지금은 전혀 쓰지 않는 유행어를 차용한 광고 혹은 가요가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보면 쉽다. 아무쪼록 험난한 세상에 다시 태어난 해치가 선전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필자 한동훈은?
서체 디자이너.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현재 서체 스튜디오 얼라인타입에서 다양한 기업 전용폰트와 일반 판매용 폰트를 디자인한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등에 기고했으며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서체 디자인 강의를 진행한다. 2021년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한동훈 서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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