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소아과 오픈런’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문 여는 시간에 방문해도 오랜 대기를 인내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소아과 전문의 부족이 오픈런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맞벌이 부부가 늘다 보니 오전에 환자 수요가 집중되고, 수가 인상 등 적절한 보상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인원을 늘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소아청소년과 현장을 찾아 부모와 전문의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문 열자마자 대기인원 ‘111명’
16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한 소아청소년 전문병원. 오전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아직 진료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대기실은 기다리는 아이와 보호자로 가득했다. 오전 9시까지 접수를 마친 인원은 모두 111명. 대부분 오전 7시께 예약을 마쳤다고 한다. 대기실에서는 진료 전 체온 측정을 안내하는 방송이 계속 흘러나왔다.
학부모 A 씨는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왔다. 오전 7시에 접수했는데 순번이 28번이다. 보통 한 시간에 15명 정도 빠지는 것 같아 2시간 정도 기다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전보다 나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모바일 예약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오전 6시부터 병원 밖 대기 인원이 30~50명에 달했다고 했다.
3세 자녀를 둔 학부모 B 씨는 “오전 7시 예약이 열리자마자 접수하고 한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전 진료는 받기 어렵다. 초진인 경우에는 현장 접수만 가능해 최소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맞벌이 부부는 할머니가 봐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들은 모바일 사용이 어려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의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맞벌이 부모가 늘어난 점을 소아과 오픈런이 발생하는 이유로 꼽았다. 출근 전에 아이가 진료를 받게 하려다 보니 오전에 사람이 몰린다는 것. 아이가 전날 밤부터 아파도 긴급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응급실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결국 집에서 돌보다 아침에 소아과가 문을 열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병원에 들렀다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A 씨는 “조부모나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있어도 집과 (병원이) 거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결국 부모가 데리고 와야 한다. 저도 친정에서 아이를 봐주지만 병원에 와야 할 때는 오전에 반차를 써서라도 왔다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한다”고 토로했다.
#“오픈런, 일부 병원의 일…오후 되면 환자 뚝 끊겨”
이렇다 보니 오전 9시 이전에 문을 여는 소아과는 학부모 사이에서 귀한 곳으로 통한다. 오전 8시 30분에 문을 여는 서울 서초구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C 씨는 “아이들은 낮에는 활발하게 돌아다니고 자극도 많으니까 아픈 줄 모르고 지내다가 밤에 증상이 나타난다. 부모가 낮에는 직장을 다니다 보니 아침과 저녁 시간대에 붐비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C 씨는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C 씨는 “오후 시간대만 돼도 환자 발길이 뚝 끊긴다”며 “오픈런은 일부 병원에 쏠림 현상이 나타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C 씨는 “오픈런의 원인으로 소아과 전문의 부족이 거론되지만, 지금 당장 소아과를 가 보면 환자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오전 10시부터 사람이 거의 없다가 아이들 하교 시간인 오후 4시 이후에 드문드문 오는 게 전부다. 버티지 못한 개원의들이 병원 문을 닫고 보건소나 요양병원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언제 가도 진료가 가능한 곳을 원하는데, 대부분 전문의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밤늦게나 공휴일에도 문을 여는 병원이 그렇다”며 “더욱이 부모는 가던 병원을 계속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다 보니 그런 대규모 병원을 중심으로 오픈런이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보건사회연구원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년)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소아과 오픈런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외래 수요가 집중되는 시간대에 ‘시간 가산’을 확대해 문 여는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D 씨는 “왜 소아과에만 일찍 문을 열 것을 요구하나. 혼자 운영하는 곳은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을 좋아해 사명감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큰돈은 못 벌더라도 병원이 망하지 않도록 정부가 도움을 줘야 한다. 정부가 소아과라는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발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공의 확보율 25.5% “열악한 진료 환경 개선해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확보율은 2020년 71%에서 올해 25.5%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소아청소년과 개업 건수 역시 2018년 122곳에서 지난해 84곳으로 줄었다. 이에 정부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 매월 100만 원의 수련 보조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고, 소아 진료 정책 가산금 인상 등에 나섰지만 호응을 받지 못했다.
전문의들은 무엇보다 소아청소년과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의 C 씨는 “아이들한테 혈관 주사 놓는 게 어렵다는 걸 다 알지 않나. 혈관 주사 가장 잘 놓는 사람들이 소아과 전문의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보호자가 불만을 품는다. 주사 놓고 받는 돈이 1100원에 불과하다. 아이들을 진료하기 위해 의사들이 기울이는 노력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낮은 수가뿐 아니라 의료진 7명이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끝내 무죄 판결을 받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1가구 다자녀 시대일 때도 소아과 오픈런 등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초저출산 시대에 소아과 오픈런이 말이 되냐”고 반문하며 “소아과 오픈런이 발생한 원인은 정부가 말하는 소아과 의료 인력 부족이 아니라 저수가, 소아필수약 공급 부족,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소송 등 열악한 진료 환경 때문에 소청과 의사의 상당수가 진료하기 좋은 환경을 찾아서 진료 영역을 변경했거나 아예 다른 업종으로 전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발표 이후 정부와 의사단체는 연일 대립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을 수련하는 전국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집단연가 사용 불허 및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발령했고,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으로 맞선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치닫는 상황,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
김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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