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블랙홀만큼 우주에서 미스터리한 존재도 없을 것이다. 블랙홀이 특히 난감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절반은 잘 이해하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도통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이 비교적 잘 이해하는 블랙홀은 무거운 별이 폭발과 함께 남기는 항성 질량 블랙홀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블랙홀은 태양 질량의 10~100배 수준의 육중한 질량을 갖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랙홀의 씨앗을 ‘가벼운 씨앗'이라고 부른다. 이 정도 수준의 블랙홀은 탄생 과정을 꽤 잘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훨씬 무거운 블랙홀도 있다.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다. 보통 태양 질량의 수백만에서 수십억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질량을 갖고 있다. 단순히 가벼운 블랙홀들이 모여서 성장한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겁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항성 질량 블랙홀과는 기원이 전혀 다를 거라 추정한다. 빅뱅 직후 우주의 밀도가 훨씬 높았던 먼 과거, 한꺼번에 거대한 구름이 수축하면서 곧바로 무거운 블랙홀의 씨앗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이 가상의 씨앗을 ‘직접 붕괴한 블랙홀 (Directly collapsed blackhole)’이라고 부른다. 아직 그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이론 속 개념이다.
은하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항성 질량 블랙홀과 본질적으로 다른 종인지, 아니면 그들이 성장해서 만들어지는 같은 종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직접 붕괴한 블랙홀이 우주에 존재했는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그 전설 속 블랙홀로 의심되는 존재가 발견되었다. 제임스 웹을 통해 우주 끝자락에서 이제 막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한꺼번에 반죽된 것으로 의심되는 그 현장이 드디어 포착되었다! 아직까지 풀지 못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탄생 과정을 이번엔 밝혀낼 수 있을까?
블랙홀과 은하 중 어느 쪽이 먼저 만들어졌을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천문학에도 이런 비슷한 논쟁이 있다. 블랙홀이 먼저냐 은하가 먼저냐. 거의 모든 은하 중심에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 게다가 흥미로운 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딱 은하 중심부의 1000분의 1 정도만큼만 무겁다. 많은 은하들이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게 맞아떨어진다. 이것은 블랙홀과 은하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블랙홀과 은하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은하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은하 중심에 물질이 모여들면서 고밀도 블랙홀이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원시 블랙홀이 먼저 탄생하고 그 주변에 물질이 모여들고 별이 탄생하면서 은하가 완성되었는지 확실치 않다. 정말 말 그대로 천문학계의 닭과 달걀 논쟁이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도 무작정 폭풍성장을 하지는 못한다. 블랙홀의 성장 속도에도 한계가 있다.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물질은 아주 빠른 속도로 블랙홀 곁을 맴돈다. 그리고 뜨겁게 달궈진 강착 원반을 이룬다. 지나치게 뜨거워진 강착 원반은 거의 모든 파장의 빛에서 에너지를 방출한다. 가시광선뿐 아니라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까지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이 때문에 블랙홀로 끌려오던 물질이 더 이상 끌려오지 못하게 밖으로 밀어내는 압력을 만들어낸다.
결국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이고 성장하는 속도는 무한정 빨라지지 못한다. 블랙홀이 얼마나 빠른 속도까지 물질을 집어삼킬 수 있는지, 그 성장 속도의 한계를 에딩턴 한계라고 부른다. 아무리 블랙홀이라도 에딩턴 한계 이상으로 더 빠르게 초고속으로 덩치를 키우는 건 불가능하다. 블랙홀 스스로도 그런 성장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가 비교적 기원을 잘 이해하는 블랙홀은 초신성이 폭발하고 만들어지는, 고작 태양 질량의 수십 배 수준인 항성 질량 블랙홀뿐이다. 그런데 이런 자그마한 블랙홀만으로는 오늘날 은하 중심에 존재하는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만들 수 없다.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에딩턴 한계를 초월해서 엄청난 폭풍 성장을 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블랙홀의 성장 속도만으로 항성 질량 블랙홀을 초거대 질량 블랙홀까지 키우겠다면 우주의 나이보다 더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초거대 질량 블랙홀로 성장하는 씨앗이 따로 있었을 거라 추정한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서 거대한 가스 구름이 한꺼번에 수축하면서 태양 질량의 수천, 수만 배 수준의 블랙홀로 한꺼번에 붕괴해버리는 것이다. 그 어떤 별도 은하도 만들지 않고, 블랙홀의 씨앗으로만 반죽되어야 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개념이지만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현존하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이 블랙홀의 씨앗으로 의심되는 천체를 발견했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을 통해 판도라의 은하단을 관측했다. 수천 개의 은하들이 모인 은하단 너머 훨씬 먼 배경 우주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은하 11개를 새롭게 발견했다. 육중한 은하단의 중력으로 인해 주변 시공간이 휘어지면서 더 먼 배경 우주의 빛이 휘어져 보이는 중력 렌즈 덕분에 발견했다. 돋보기로 빛을 증폭하듯이 중력 렌즈로 휘어진 배경 우주의 희미한 빛이 증폭되면서 더 밝게 관측할 수 있옸다. 천문학자들은 빅뱅 이후 우주가 고작 5억 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존재한 원시 은하의 모습을 보았다.
천문학자들은 제임스 웹으로 포착한 11개의 원시 은하 중심에 갓 반죽된 블랙홀의 씨앗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만약 한창 반죽되고 있는 블랙홀의 씨앗이 있다면 그 주변에 뜨겁게 달궈진 강착 원반에서 새어나오는 엑스선 빛의 흔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이를 검증하기 위해 NASA의 찬드라 엑스선 우주 망원경으로 제임스 웹이 발견한 11개의 원시 은하를 겨냥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딱 한 은하에서 뚜렷한 엑스선을 포착했다.
제임스 웹에 비하면 찬드라 우주 망원경의 분해능은 훨씬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확하게 제임스 웹이 발견한 은하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엑스선이 더 강하게 방출되었다. 특히 방출되는 엑스선이 넓게 퍼져 분포하지 않고 좁은 영역에서만 새어나왔다. 이것은 블랙홀처럼 아주 작은 크기의 특정 천체에서 방출되는 엑스선이라는 뜻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은하에게 UHZ1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대 가장 먼 초기 우주에서 발견된 블랙홀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은하다.
블랙홀에서 얼마나 강렬한 엑스선이 방출되는지를 통해 블랙홀의 성장 속도, 질량을 유추할 수 있다. 블랙홀 주변에 빨려들어가는 물질의 양이 더 많을수록, 그리고 더 빠른 속도로 맴돌면서 더 뜨겁게 달궈질수록 강한 엑스선이 방출된다. 천문학자들은 간단하게 계산하기 위해 이 블랙홀이 최대 성장 속도인 에딩턴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덩치를 키우고 있다고 가정했다. 이 가정에 따르면 이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60억 배 정도로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추정한 UHZ1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이 UHZ1 은하 별의 전체 질량보다 더 무겁다! 앞선 관측을 통해 추정한 UHZ1 은하 속 별의 전체 질량은 기껏해야 태양 질량의 4000만 배 수준이다. 이 은하는 자신보다 15배는 더 무거운 블랙홀을 품고 있는 셈이다.
보통 은하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아무리 무거워봤자 은하 전체 질량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은하 중심부에 비해서 질량이 1000분의 1밖에 안 되니 말이다. 그런데 제임스 웹은 빅뱅 직후 초기 우주에서 자신의 별 질량보다 더 무거운 블랙홀을 품은 은하를 발견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이 블랙홀이 거대한 구름이 한꺼번에 반죽되면서 별과 은하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탄생한 블랙홀 씨앗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 블랙홀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다음에 주변에 물질이 모여들면서 조금씩 별들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블랙홀이 먼저냐 은하가 먼저냐의 논쟁이 결론이 날지도 모른다! 이번 발견이 사실이라면 블랙홀이 먼저 반죽되고 그다음에 은하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빅뱅 직후 태양 질량의 수천, 수만 배 수준의 블랙홀 씨앗이 반죽되었다고 가정하면 현재 관측되는 UHZ1 은하 중심의 블랙홀 질량을 딱 설명할 수 있다. 태양 질량의 수천 수만 배 수준의 블랙홀 씨앗이 약 5억 년간 에딩턴 한계 이내에서 덩치를 키운다면 나오는 질량이 정확히 태양 질량의 60억 배 수준이다! 이번 관측으로 추정되는 UHZ1 은하 중심 블랙홀의 질량과 딱 들어맞는다. 이를 근거로 천문학자들은 빅뱅 직후 한꺼번에 반죽된 블랙홀의 씨앗이 성장한 결과물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물론 모든 비밀이 풀렸다고 결론짓기는 섣부르다. 일단 제임스 웹 관측으로 추정되는 먼 은하의 별 질량을 두고는 아직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엑스선의 세기로 블랙홀의 질량을 유추하는 방식에도 세심한 가정이 필요하다. 만약 블랙홀 주변을 짙은 먼지 구름이 에워싸고 있다면 블랙홀에서 방출된 빛이 다시 먼지 구름에 반사되면서 실제보다 더 강한 엑스선이 방출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실제보다 블랙홀 질량이 더 무겁게 보이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블랙홀의 질량이 얼마나 다르게 추정될 수 있는지 그 범위를 따져봤다. 그 결과 UHZ1 은하 중심의 블랙홀 질량은 태양 질량의 1000만 배에서 1억 배 수준까지도 줄어든다. 하지만 여전히 무겁다. 은하의 별 질량보다는 작지만 여전히 은하 전체 질량의 4분의 1 수준이 된다. 이것도 부담스러운 블랙홀인 것은 분명하다.
제임스 웹이 올라가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먼 우주를 보지 못했다. 현재 제임스 웹이 보여주는 머나먼 우주의 모습은 모두 우리가 처음 만나는 세계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조심스럽다. 제임스 웹이 보여주는 먼 우주의 모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지,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함께 느낀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놀라운 주장에는 그만큼 놀라운 증거가 필요하다고. 은하보다 더 무거운 블랙홀의 존재는 놀라운 증거로 남을 수 있을까?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3-02111-9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ccea5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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