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온라인을 기반으로 유명인을 사칭하는 등 신종 투자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25일 불법 투자 사기를 제재하기 위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된 지 3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금융당국이 신종 범죄 및 불법 투자 행위의 단속을 강화하는 가운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에 눈길이 쏠린다.
유사 수신 및 투자 사기가 한층 더 교묘해졌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자금을 모집한 뒤 바로 잠적했다가 같은 수법으로 다른 피해자에게 투자금을 편취하는 금융투자 사기가 늘고 있다. 이 같은 ‘온라인 유인형’ 불법 유사 수신 수사 의뢰 건수는 2023년 기준 9건을 기록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유사투자자문업자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영업하면서 불법행위가 지능적이고 교묘해져 투자자 피해가 지속해서 발생한다”며 “투자금 편취 등 투자사기와 더불어 불공정 거래에 가담하는 등 사회적 물의를 초래한다”라고 적발 사례를 안내했다. 적발된 수법은 △유명인 사칭 △방송 플랫폼 기반의 불법 영업 △게시판 사기 △문서 위조 △무인가 투자 매매·중개 등으로 과거에 비해 다양하다.
그 중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유명인 사칭 수법은 이렇다. 소셜미디어에 유명인 얼굴을 내건 ‘재테크 책을 무료로 증정한다’는 광고로 투자자를 유인한 뒤, 전문가가 투자자문을 해준다며 가짜 주식거래 앱의 설치를 유도한다. 사기 일당은 가짜 앱에 공모주가 입고된 것처럼 화면을 조작해, 투자자가 출금을 원하면 수수료·세금 명목의 추가 입금을 지시한다. 일당은 대면 상담을 하지 않으며 투자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소통 채널을 폐쇄하고 잠적한다.
이처럼 온라인 기반의 신종 투자 사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투자자의 피해를 줄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배경에는 법적 한계가 있다.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서는 대면편취형을 포함한 ‘피싱 사기’를 전기통신금융사기로 규정한다. 신종 투자 사기는 온라인 기반임에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당국마저 “유사 수신업자에게 속아 손해가 발생하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불법 행위로 의심되면 일단 금감원이나 경찰에 신고하라”라고 강조하고 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피싱 피해자나 수사기관은 사기 이용 계좌의 지급정지와 피해 환급 절차를 신청할 수 있다. 절차에 따라 은행 등 금융사에 계좌 지급정지(구두)와 피해구제(서면)를 요청하면 금융사가 채권소멸 절차를 개시해 피해환급금을 지급한다.
계좌 지급정지는 금융 범죄에서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일차적인 조치다. 하지만 법에 해당하지 않는 투자 사기의 경우 수사 기관이 지급정지 공문을 보내도 은행이 거절하면 강제할 수 없다. 이렇다 보니 투자 사기 피해자가 보이스피싱으로 허위 신고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문제는 법적 의무가 없을 뿐, 금융사의 약관이나 내규에 따라 투자 사기도 지급정지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2023년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제외한 사기의 계좌 지급정지에 응한 곳은 5대 시중은행 중에선 하나은행이 유일했고, 인터넷전문은행 중에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가 협조했다.
요청에 응한 하나은행·카카오뱅크·케이뱅크 3사 중 일부 은행은 계좌 약관에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 서비스를 제한한다’ 혹은 ‘금융사고가 발생한 금융기관에 요청이 있는 경우 지급 정지한다’는 규정을 마련해 이를 근거로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은행 관계자는 “추가 피해를 막으려는 조치였을 것”이라면서도 “의무 사항이 아닌 데다 악용 가능성이 있어 타사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B 은행 관계자는 “약관에 관련 내용을 명확하게 담은 건 아니지만 넓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며 “금융사는 보수적으로 운영하니 다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지급정지는 피해금이 해외로 유출되거나 세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앞서 긴급하게 진행한다. 허위·오인 신고라면 금융사가 책임을 감수해야 하기에 나서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급정지에 응한 은행은 피해자 재산 보호나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 등을 근거로 자체 판단한 것”이라며 “허위·오인 신고로 문제가 생기면 은행이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의 부담을 안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신종 범죄를 막기 위한 법안들이 뒤늦게나마 의회 문턱을 넘고 있다. 1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의 김병욱 의원과 홍성국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을 통합·조정한 법안이다. 개정안은 유사투자자문업의 범위를 제한하고, 영업 규제와 진입·퇴출 규제를 정비하는 것이 골자다.
이 개정안에 따라 오픈채팅방 등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리딩방은 투자자 보호 규제를 적용받는 ‘정식’ 투자자문업자만 운영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투자 조언만 가능한 유사투자자문업자는 ‘알림톡’처럼 단방향 채널을 활용한 영업만 허용된다. 위반 시엔 미등록 투자자문업자로 간주해 징역 3년 이하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아울러 유사투자자문업의 진입 장벽은 높이고 퇴출 조건은 추가했다. 금융법뿐만 아니라 소비자보호법(방문판매법, 전자상거래법 등)을 위반한 경우 유사투자자문업을 할 수 없다. 반면 소비자보호법 위반 등을 위반한 부적격 업체는 시정조치 미이행, 벌금형 등을 받을 경우 직권이 말소된다. 영업규제를 어길 시 1억 원 이하의 과태료·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개정안을 기반으로 불법 행위의 암행 단속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에는 지급정지 제도를 악용한 ‘통장 협박’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장 협박이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계좌를 정지해 금전을 요구하는 범죄다. 개정안에 따라 통장 협박 피해자는 금융사에 협박 내역 등 소명 자료를 제시하면 빠르게 지급정지를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신종·변종 사기의 피해를 줄이려면 결국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법안은 수년째 의회에 계류된 상태다. 불법 금융사기 피해자 커뮤니티 ‘백두산’ 운영자는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보면 계좌 동결이 사기꾼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투자사기에 신경을 쓸지 의문”이라며 “투자 사기 피해자들은 얼마 전에도 집회를 여는 등 절박한 심정이다. 정치권에서 법 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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