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나는 소수자다. 의사이기 전에 환자이고, 인간이기 전에 여성이다. 병마와 싸워야 했고, 유리천장을 깨야 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까지 지낸 의사가 무슨 소수자 타령이냐는 힐난이 들린다. 하지만 환자이며 여성이라는 정체성 없이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 -12쪽 ‘책을 펴내며’
서울대 의대 졸업, 예방의학·가정의학·산업의학 전문의,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초 아시아계·여성 의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첫 여성 원장. 의사 김선민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담관낭종, 대장암,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아니, 그런 어려움을 겪었기에 지금의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듯싶다.
‘나는 소수자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책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는 저자 김선민이 ‘누군가의 엄마로서, 조직의 수장으로서, 신념을 가진 직업인으로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기록이다.
: 병원과 사회를 이어가는 의사 김선민이 꿈꾸는 세상
김선민 지음 메디치미디어
320쪽, 2만 원
어릴 때부터 원인 모를 복통에 시달린 저자는 의대 재학 시절 담관낭종 진단을 받았다. 의사로 성장하는 동시에 환자로서 수술과 재수술, 긴 투병 생활을 겪었다. 그 경험이 그를 ‘남다른’ 의사로 만들었다. 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의술 못지않게 사회 환경이 중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투병은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이 병을 이기려면 온 사회가 필요하다. 아픈 이들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나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회, 그것이 내가 바라는 세상이다. -44쪽
질병과 노동을 함께 헤아리는 직업환경전문의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돈 걱정보다는 치료에 집중했던 저자가 지방병원에서 수련하며 맞닥뜨린 환자들은 돈과 생계 걱정이 우선이었다. 그들이 치료받도록 회사를 압박한 일이 오히려 환자들을 궁지로 내몰았을 수 있음을 아프게 깨달았다.
“선생님, 고혈압 환자에게 산재가 발생한다고 사측에 자꾸 말씀하시면, 그분들 계속 일하기 어려워요. 지난번에 만난 그 환자 오늘은 안 보이는데 찜찜해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내 치기가 그분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76쪽
죽도록 아파도 회사에서 잘리지 않으려 일하는 노동자들, 남편에게 맞고도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내들. 저자가 훗날 의료 정책과 인권을 위해 일하게 된 것은 그런 약자들이 치료받고 보호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값싼 인슐린을 투약하지 못해 죽어가는 재소자를 치료한 일을 계기로 저자는 훗날 국가인권위원회에 들어가 재소자의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에 힘쓰게 된다.
아파도 마땅한 사람은 없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정말 없다. 한 집의 청결도는 화장실에서 확인할 수 있고, 한 나라의 인권상황은 교도소에서 가늠할 수 있다. -89쪽
자신이 아팠기에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했고, 자신이 나았기에 의료 정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편집실장이 되어 지면에 담았고, 이후 국민건강권확보를 위한 범국민연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의료보호와 정책을 연구했다. 2001년 8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에 합류했다. 법제도 인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을 연 인권상담센터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장애를 이유로 보건소장 임용에서 차별을 당했다는 제자를 대신해 제삼자 진정을 한 의대 교수가 1호 사건이었다. 그분은 내 은사님이었다. (중략) 민주노총 간부, 양심적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아들을 대신해서 온 유명 성우, ‘살색’이라는 크레파스 명칭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진정을 낸 목사, 국가보안법에 대한 진정…. 그 이후 한참동안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군 의제들은 모두 11월 26일 인권위로 모였다. 인권 상담 첫날 총 진정 건수는 122건이었다. -219쪽
그가 일한 3년 동안 국가인권위가 해결한 문제는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다른’ 목소리를 들어주는 국가기관이 있음을 국민들이 또렷이 인식하게 된 것만으로도 큰 성과일 터. 이라크 파병을 공식 반대한 인권위를 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바람직하다’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와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이것이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당연한 현상이고 그것이 존중되고 수용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31쪽 세계인권선언 기념식 연설에서
인권위에 헌신한 저자는 대장암에 걸려 또 한 번의 혹독한 투병기를 이겨낸 후 건강심사평가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2018년에는 기획이사로 승진한다. 징계위원장을 함께 맡아 조직 내 성폭력을 드러내고 해결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2020년 4월 심평원 첫 내부승진 여성 원장으로 취임했다. 원장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고, 스스로 설정한 한계를 뛰어넘어 이룬 성취였다.
나 정도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남성이었다면, 어떤 면에서 내가 심평원장에 적합한지 스스로에게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라면 심평원장을 맡아서 무슨 일을 할지를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고 다닐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정말 심평원장을 하고 싶었다. 원장을 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도 분명했다. 내게도 심평원장직을 ‘욕망’할 권리가 있었다.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적임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을 인사권자가 잘할 터였다. -256쪽
심평원장으로 재직하던 3년간, 한국은 ‘코로나19’라는 보건의료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저자는 내부 출신 원장으로서 시스템을 개선하고, 여성 원장으로서 성차별과 성폭력을 타파하는 데 집중했다. 코로나 확산에 대응해 입국자의 해외여행력 정보를 제공하고, 마스크 중복 구매 확인 시스템을 만든 것도 그가 이끌던 심평원이었다.
이 밖에도 저자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수석기술관으로 일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DC) 의료의 질과 성과 워킹 파티에서 여성 최초, 아시아계 최초 의장을 역임하는 등 의료 정책과 평가 분야에서 오랫동안 헌신했다. 심평원장을 퇴임한 뒤 지난해 9월부터는 강원도 태백에 있는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새 삶을 꾸려가고 있다.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짚듯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는 ‘개인 인생 이야기를 넘어 여성 의료인, 병원과 사회를 잇는 의료인, 한국 의료와 세계 의료를 잇는 의료인으로 자기 삶을 채워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오늘날 많은 의료인이 놓치는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을 다시 일깨우고, 여성이 사회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의 앞선 걸음에서 따뜻한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남희 기자
namhee@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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