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리나라 기업과 국가의 전략 자산인 첨단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범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년간 100조 원 넘는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이를 처벌하는 법률이 미비하고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특히 70여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개정이 없던 현행 형법 제98조 제1항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만 처벌 가능하도록 규정한 법 문항으로 우리 적국은 현재 북한뿐이기 때문에 그 외 어느 나라에 기밀을 유출하는 간첩행위를 하더라도 형법만으로 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발한 잠수함 설계 도면이 통째 대만에 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남경찰청은 전직 대우조선해양 직원 2명을 내부 기술 유출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경찰은 잠수함 설계도면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이들이 대우조선해양 재직 당시 도면을 빼돌려 잠수함 개발 컨설팅 회사로 이직 후 대만에 넘긴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2000쪽 분량의 도면은 대우조선해양이 독자 개발해 한국을 세계 다섯 번째 잠수함 수출국으로 만든 핵심 기술이다. 유출된 설계 도면은 대우조선해양이 2011년 인도네시아로부터 11억 달러에 3척을 수주한 ‘DSME1400’ 모델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업계에 따르면 대만 정부는 이 도면을 첫 자체 잠수함 ‘하이쿤’을 개발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화오션 측은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도면은 구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도면이 아닌 인도네시아가 1978년에 독일로부터 수입한 독일 업체 도면”이라며 ‘DSME1400’ 모델은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방산기술 및 군사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회사 기밀을 유출한 직원, 이에 연루된 업체 등에 대해서는 현재와 과거를 불문하고 단호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대만 내 친중 성향의 국회의원이 한국의 대만대표부에 제보할 때까지 국내에서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국과 대만 간 외교 문제로의 비화가 우려된다. 한화오션 측은 “국가 핵심기술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과거 대우조선 시절을 포함해 범죄 관련자들에게 단호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23년 7월까지 탈취된 첨단기술은 552건으로 피해 규모는 100조 원을 넘어섰다. 연간 2조 원의 피해가 생긴 셈이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처벌할 근거법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처벌 수위도 상대적으로 낮다.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법원 선고 445건 중 실형은 47건(10.6%)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대부분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졌다.
현재 반도체, 방산, 2차전지 등 우리와 산업 패권을 다투는 미국, 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은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경제 간첩죄’를 적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주요 경쟁국의 수준에 맞게 산업기술의 유출과 침해를 처벌하는 수위를 형법의 간첩죄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면서 형법 98조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형법 제98조에 따르면 ‘간첩’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한국의 적국은 북한이다. 이로 인해 적국이 아닌 우방국 및 비국가행위자의 간첩 활동에는 처벌 규정이 적용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미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은 적국에 국한하지 않고 자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것을 기준으로 간첩죄를 적용하고 있다.
강희주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G20(혹은 G12)에 속하는 OECD 국가 중 간첩죄를 적국에 한정한 유일한 국가”라며 “형법의 간첩죄 규정을 현대의 상황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건 기자
rimsclub@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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