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대통령은 6개월 전 국무회의에서 세금이 지원되는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검증을 각 부처에 주문했다. 민간단체에 국고보조금이 지급된 사업에서 1800여 건의 부정·비리가 드러난 때문이었다. 이에 경찰은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적발 특별 단속에 들어갔고, 각 부처는 국고보조사업을 전면 재검토해 올해 예산에 반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올해 국고보조금 예산안을 보면 지난해 실효성 조사에서 즉시 폐지나 단계적 폐지, 감축 판정을 받은 국고보조사업들이 버젓이 살아남거나, 오히려 예산이 증액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 스스로 국고보조사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세금이 새나가도록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3일 국무회에서 국고보조금 검증 강화 시행령을 심의·의결하면서 “민간단체 보조금이 지난 정부에서 2조 원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제대로 된 관리, 감독 시스템이 없어 도덕적 해이와 혈세 누수가 만연했다”며 향후 보조금 사업 부정 발생 시 사업자는 물론 담당 공직자도 책임을 묻는 시스템 가동을 예고했다.
경찰은 지난해 6월부터 6개월간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특별 단속을 벌여 489건을 적발하고, 1620명을 검거했으며 이 중 24명을 구속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29일 국고보조금 수령 사업자가 허위·지연 공시에 따른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삭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고보조금 관련 5개 하위지침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처럼 국보보조금에 대한 단속과 감독을 강화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올해 예산안에서는 국고보조금 관리지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폐지·감축토록 판정했던 사업에 예산을 편성하거나 증액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고보조사업들에 대해 3년 단위로 연장 여부를 판정하는 평가를 매년 하고 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국고보조금 엄격 집행 지시에 따라 지난해 연장 평가 대상이 된 국고보조사업 278개 중 63.3%에 해당하는 176개 사업을 폐지·통폐합·감축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는 2016년 연장 평가가 도입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의 구조조정안이었다.
하지만 올해 예산안을 보면 이러한 국고보조사업 구조조정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지난해 평가에서 즉시 폐지 사업 11개 중 1개인 ‘어린이 통학차량 LPG차 전환 지원’ 사업의 경우 올해 20억 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지난해 예산(90억 원)보다는 감액된 것이지만 공식적인 재평가 절차 없이 살아난 것이다.
또한 단계적 폐지 평가를 받았던 22개 사업 중 3개 사업은 오히려 올해 예산이 지난해보다 늘었다. ‘한국 한의약진흥원 운영지원’ 사업은 올해 예산인 123억 4000만 원으로 지난해(122억 9000만 원)보다 증가했다. 역시 단계적 폐지 평가로 선정된 ‘여성 폭력 방지 정책 추진 기반 구축’ 사업과 ‘문화유산 방문자 센터 건립’ 사업도 올해 예산이 각각 8억 2000만 원과 37억 원으로 지난해(각각 6억 원, 10억 원)보다 늘어났다.
지난해 평가에서 감축 판정을 받은 사업은 141개인데 이 가운데 22개 사업의 경우 예산이 증액됐다. 이들 사업은 사업 부분 중 감축 지적을 받은 부분의 예산은 감축했지만, 다른 부분 예산을 증액하는 방식을 사용해 전체적인 예산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고용 인력관리’ 사업의 경우 ‘농업 근로자 기숙자 건립 지원’이 감축 대상이 되자 이 부분 예산을 줄인 대신 ‘영농도우미’를 새로 만드는 한편 다른 부분 예산을 늘려 총액이 오히려 지난해(2023년 127억 2000만 원→2024년 219억 1000만 원)보다 대폭 증액됐다. ‘모자보건’ 사업(133억 9000만 원→243억 5000만 원)이나 ‘장애인 의료비 지원’ 사업(286억 2000만 원→358억 7000만 원), ‘건강가족 및 다문화 가족 지원’ 사업(1079억 5000만 원→1461억 3000만 원)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국고보조사업에 대해 역대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으면서 실제 예산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며 “보여주기식 평가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평가 결과를 엄격하게 예산에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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