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연말, 대한의사협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어느 의사가 ‘소아과 오픈런’ 의 원인을 저출산에 따른 소아 인구 감소 외에도 직장 생활하는 워킹맘이 늘어난 점,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를 즐기려는 일부 젊은 엄마들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써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듣게 되었다.
이 얘기를 전하며 노여워 한 이는 평소 가깝게 지내는 후배 S였다. S는 갓 돌이 지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아내의 육아휴직이 종료되는 시점 즈음에 맞춰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가 얼마 전 복직했다. 2024년부터 육아휴직이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연장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와 관련해서 문의를 했다가 소아과 오픈런 이야기까지 나누게 된 것이었다. (*육아휴직 1년 6개월 연장은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에 한해 적용됨)
S는 육아휴직 급여 특례제도인 ‘3+3 부모 육아휴직제도(생후 12개월 이내 자녀에 대해 부모가 동시, 또는 순차 육아휴직 시 휴직급여를 기존 통사임금의 100%까지 받을 수 있는 휴직 장려제도. 2024년에는 6+6으로 기간 및 사용 가능 연령이 늘어남)’가 도입되었던 2022년에도 제일 먼저 해당 제도를 문의하고 사용했을 정도로 자녀 돌봄이나 양육 관련 이슈에 매우 기민하게 대응하는 타입이다.
요즘 2~30대, 간혹 자녀의 초등 입학을 앞둔 40대까지 포함하여 기혼의 남성직원 중 S와 같이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최근의 고용노동부 통계를 살펴보면 2022년 전체 육아휴직자 수는 13만 명 정도이며, 이 가운데 남성 육아휴직자는 3만 7천 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의 28.9%를 차지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 만 해도 한 자리 수에 불과했던 남성 육아휴직자가 이제는 10명 중 3명꼴로 늘어난 것이다.
자기 자녀의 학교 반 번호, 친한 친구 이름도 잘 모르는 것이 당연했던 과거의 가부장적인 아빠들과 달리 요즘의 젊은 아빠들은 자녀의 예방접종일과 소아과 진료일정을 챙기고 육아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것은 물론 요리와 청소, 집 정리와 같은 가사노동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한다. 스스로가 살림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기를 갖고 싶어서, 혹은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시적으로 제도를 사용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면 무사히 회사로 복귀하며 숙련된 경력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 나간다.
회사 입장에서도 다년간의 업무 경력을 보유한 이들의 외부 이탈을 막고 장기적으로 충성도 높은 고급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득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성별을 막론하고 언제든 일과 돌봄 사이의 패러다임을 자유롭게 전환하면서 커리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북유럽식의 일-돌봄 모델이 요즘 같은 ‘대퇴사 시대’에는 기업에도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누군가에게(그 대상이 꼭 어린 자녀일 필요는 없다) 실질적으로 돌봄을 제공해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성별과 나이, 배경과 학력 등의 경계 구분 없이 누구와도 수월하게 잘 소통한다. 유연한 대화의 기술을 장착하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위에 언급했던 소아과 오픈런 망언을 뱉는 쪽의 사람이 되기 보다는, 그 말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지적할 수 있는 동료시민이 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생명체를 오롯이 내가 책임져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하는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돌봄’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노동의 가치를 온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과거의 어느 순간 나에게 그런 노동을 한없이 베풀어 주었던 이들에게 진정한 감사함을 느낀다.
그렇게 끊임없이 상대방과 대화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나눌 수 있는 감성과 능력을 배우고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자기성장과 자기성찰이라는 값진 경험을 얻는다. 이런 경험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내재적인 가치, 특히 좋은 리더로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협력과 소통, 공감 능력을 쌓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밑거름이 된다.
그런 인적자원을 많이 보유한 조직일수록 ‘가고 싶은 직장, 오래 다니고 싶은 일터’가 되지 않을까. 기회가 된다면 나이와 성별, 돌봄의 대상을 막론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돌봄의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휴직을 고민하는 남성 직원들의 상담은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이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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