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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한국형 오컬트에 비친 가족의 불편한 진실 '선산'

스산하고 묵직한 분위기로 몰입도 극대화…장재현 '파묘'와 맞대결 구도 흥미진진

2024.01.18(Thu) 09:41:40

[비즈한국] 갑자기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선산을 상속받게 된다면? 선산은 조상들의 무덤이 모셔져 있어 후손들이 돌보는 가족의 화합 장소로 생각되지만, 때때로 혹은 종종 재산적 가치로 치환되어 가족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선산’은 갑작스레 선산을 상속받은 인물을 내세워 가족의 개념을 깊게 파고든다.

 

윤서하는 작은아버지의 선산을 물려받기 위해 장례식에 상주로 참여하지만, 이내 선산으로 인해 기이한 일들을 겪게 된다. ‘선산’의 윤서하는 ‘지옥’ ‘정이’와 달리 양면적이다 못해 찌질한 김현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 글로리’ ‘남남’으로 남다른 연기력을 보인 박성훈도 특별출연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대학교수 임용을 애타게 기다리는 시간강사 윤서하(김현주)에게 어느 날 경찰의 전화가 걸려온다. 존재조차 잊었던 작은아버지 윤명길이 사망했으니 시신을 인도하라는 것. 게다가 그의 명의로 된 선산의 유일한 상속자 또한 윤서하란다. 사실 윤서하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어린 시절 가족을 떠나간 아버지나 아버지를 대신해 어떻게든 남자에 빌붙어 살아보고자 했던 어머니나 윤서하에겐 좋은 기억이 아니다.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때문일까, 성인이 되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교수직을 얻기 위해 늙은 교수의 책을 대필하는 일도 기꺼이 맡지만 금수저 동료가 교수 자리를 가로챈다. 유일하게 내 편이어야 할 남편 양재석(박성훈)은 불륜을 저지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물려받은 선산은 윤서하에게 작은 희망이 될 것도 같다.

 

윤서하의 이복동생 김영호로 등장한 류경수 또한 ‘지옥’ ‘정이’에서 연상호 감독 및 김현주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설정된 캐릭터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이’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다소 과한 톤의 연기로 임해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직후부터 윤서하는 연이어 기이한 일을 겪게 된다. 작은아버지가 살던 마을사람들은 묘하게 작은아버지의 죽음으로 들뜬 분위기이고, 장례식장엔 서하의 이복동생이라는 김영호(류경수)가 나타나 자신도 선산에 지분이 있음을 주장한다. 불륜을 저지르던 남편은 선산이 부부 공동재산이라며 이혼을 못하겠다고 하더니, 그날 밤 사냥용 엽총에 맞아 사망한다. 심지어 남편의 불륜 증거를 의뢰했던 심부름센터 강 사장(현봉식)도 실종되고, 예리한 수사 감각을 지닌 형사 최성준(박희순)과 박상민 반장(박병은) 등 경찰의 눈초리에도 의혹이 섞인다.

 

예리한 수사 감각을 지녔지만 자신의 아들로 인한 모종의 사건으로 묘한 갈등 관계에 놓인 최성준 형사와 박상민 반장. 박희순과 박병은의 빈틈없는 연기로 윤서하-김영호 이복남매와 다른 축의 긴장감을 일으킨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선산’은 영화 ‘부산행’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등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대본을 맡고,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 세 편의 조감독으로 손발을 맞춘 민홍남 감독이 연출을 맡은 6부작 드라마.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 세계관을 구축해온 연상호 감독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면서, 동시에 무당과 부적 등 샤머니즘적 요소로 빚어지는 시종일관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나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 같은 한국판 오컬트가 연상된다.

 

다만 오컬트의 외피를 둘렀지만 이야기의 주제의식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연상호 감독의 의지에 맞닿아 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에서 부성을, ‘정이에서 모성의 메시지를 강하게 녹여낸 바 있는데, ‘선산’에서는 복합적인 개념이 뒤섞인 선산을 소재로 해 가족의 양면성을 다룬다. 갈등을 빚는 윤서하-김영호 이복남매 외에 죽은 아내와 아들로 인해 후배 박상민 반장과 갈등 관계에 놓인 최성준 형사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과 후반부 숨겨진 반전 또한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것.

 

무속신앙의 토속적 요소들이 주요한 역할을 하는 ‘선산’. 아름답기도 하지만 맹목적이고 광기 어리기도 한 가족의 사랑을 종교의 믿음과 결부시킨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6부작이라는 다소 짧은 스토리임에도 호흡이 빠른 편은 아니다. 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동시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서사의 힘이 강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절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이 작품 전반에 걸친 분위기 때문. 당장이라도 무슨 일인가 벌어질 것 같고,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묵직하면서도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일품이다. 이는 섬세한 연출과 웰메이드 프로덕션의 힘이기도 하다. 화려한 색감을 많이 쓰는 황해도 굿과 마을 어귀 서낭나무에 높이 매달아 놓은 오방색 천, 동물의 붉고 짙은 피와 불에 타오로는 검고 짙은 연기 같은 요소를 적극 활용해 스산한 공간을 부각시켰고, 공간 속에 인물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풀샷 화면으로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미술, 현관 목관악기를 바탕으로 태평소 등 전통악기를 활용한 음악도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

 

극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인물 간의 심리를 돋보이게 한 섬세한 촬영은 ‘선산’의 강점. 공간에 인물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풀샷 화면이 주는 스산한 분위기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배우들의 빈틈없는 연기도 ‘선산’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지옥’ ‘정이’에 이어 또 한 번 연상호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연상호의 페르소나’라 명명할 만한 김현주의 새로운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다. 밝고 정의로운 이미지가 강하던 김현주는 ‘선산’에서 사회적 체면을 내세운 대학 시간강사이면서도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찌질한 모습으로 시선을 붙든다. 특유의 저음으로 극의 분위기에 한몫 하는 박희순과 답답한 설정으로 한숨을 자아내는 박 반장을 찰떡같이 소화한 박병은, 현실에 있을 것 같은 심부름센터 강 사장 역의 현봉식 등 모두 제 역할에 충실하다. 초반부에 특별출연한 박성훈의 존재감은 여느 주연 못지않다. 다만 빙의된 것이 아닐까 의심을 사는 미스터리한 이복동생 김영호를 맡은 류경수는 다소 과한 톤의 연기로 호불호가 가릴 것으로 보인다.

 

몰입도와 별개로, 다소 단순한 인물 캐릭터와 후반부 배치된 반전은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를 만족시키는 데 다소 아쉬움을 남길 듯하다. 엔딩에서 윤서하가 남기는 대사에 얼마나 공감할지도 의문. 사진=넷플릭스 제공

 

그간 연상호 감독의 실사 작품이 호평과 혹평을 오갔기에 (연출작은 아니지만) 연상호의 색채가 지배적인 이번 작품이 얼마나 호평받을지, 개인적으로는 속물적 궁금증이 든다. 무속인과 무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2월 개봉 예정인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와 비교 거론되는 양상인데, 어느 작품이 대중의 마음을 훔칠지도 기대되는 대목. ‘선산’은 1월 19일에 전 회차가 공개된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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