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기차 보급 확산으로 충전시설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옆에 들어서는 충전소를 두고 업체와 학교의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안전을 우려한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자 시흥시가 일단 공사를 멈추게 했는데, 행정심판에서 경기도가 공사중지 명령을 취소한 것. 이 부지는 은계지구 조성 당시 학교용지분담금을 마련하기 위해 LH가 공원에서 근린생활부지로 용도를 바꿔 매각한 땅이다. 현재는 공사가 재개됐지만 시흥시가 학부모 요청으로 부지 매입안을 꺼내든 상태다.
#통행로였던 길목에 ‘진출입로’ 조성
“아이가 입학하고 난 뒤 공사가 시작됐어요. 교문 바로 앞 통행로 중간에 차가 오가는 진출입로가 생기는 거라 아무래도 위험하죠. 초등학생 아이들의 안전이 걸렸는데 부모들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경기도 시흥시 은계지구 남쪽에 자리한 검바위초등학교에서는 지난해 봄부터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학교 인근에서 지어지는 전기차 충전소 때문이다. 이곳에는 내년 4월까지 4대 이하 규모의 전기차 충전시설과 카페로 활용될 단층 건물이 들어선다. 도면 상 계획된 주차 면수는 총 6대다.
아파트가 밀집한 동네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그보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학교 담장과 인근 지자체 시설 등에는 반대 현수막이 걸렸다. 전기차 화재 사례가 늘고 있는 탓에 막연한 불안감도 있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통행 안전 문제가 떠올랐다.
충전소 시설은 학교 교문과 한두 걸음 차로 맞닿은 데다, 진출입로가 등하굣길로 이용되던 통행로 중간에 생겼다. 현장에서 만난 검바위초 학부모 A 씨도 올해 2학년이 되는 아이의 안전을 우려했다. A 씨는 “기존에 있던 보도블록 일부를 철거하고 이미 출입로를 낸 상태”라며 “등하교 때마다 이 길에 아이들이 많이 몰리는데 어른들이 지도하더라도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또 다른 학부모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 건물 가림막이 있지만 시설 오픈 후 진출입용 차단기가 생긴다면 교문 바로 앞 통행로가 너무 복잡해질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학부모들이 주축이 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인도 폭이 좁고 아침 시간 특히 붐비는 이곳에 차량 통행을 유도하고, 통행로를 잘라 차량 진출입로를 내는 시설을 짓는 건 부적절한 건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반발은 지난 10월 말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가 시흥시의 공사중지명령을 취소한 이후 더욱 거세졌다.
시흥시는 지난해 6월 건축법 제1조와 제79조(위반 건축물 등에 대한 조치)에 따라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에 업체는 건물 신축을 허가했다가 번복한 시흥시에 “적법한 이유 없이 민원만으로 공사를 중지한 것은 위법한 행정처분”이라며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업체의 손을 들어주며 결정문에서 “업체가 숫자로 명시한 재산은 현실적인 피해지만, 학생 안전과 관련한 공인은 추상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통학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적정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시흥시, 뒤늦게 부지 매입안 꺼내들었지만…
경기도의 판단에 따라 공사가 재개돼 현재 공정률은 60% 내외 수준이다. 준공 시기는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8월이었지만 올해 4월로 8개월 지연됐다.
이 일대는 스쿨존이지만 주차장과 달리 충전소나 주유소가 들어서는 걸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업체가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축법상 전기차 충전소는 1종 근린생활시설에 해당하고 교육환경법에서 금지하는 시설도 아니다.
하지만 곧 새 학기를 맞는 학교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올해부턴 충전소 부지 앞 보도를 통해 등교하는 학생 수가 늘기 때문이다. 검바위초는 은계지구 정비 등으로 인해 인근 초등학교의 과밀학급 문제가 커지자 공동학군으로 지정된 곳이다. 실제로 지난해 처음 시행된 후 입학한 1학년은 130명으로 전년도 신입생(76명)에 비해 50명 넘게 증가했다. 올해 3월에는 159명이 입학하는데 이 중 공동학군 아이들이 75명이다. 학교 측에 따르면 공동학군 아파트에 거주하는 학생 대부분이 해당 통행로를 거쳐 등교한다. 등굣길을 다른 곳으로 고안하더라도 멀리 돌아와야 해서 저학년들에게 권고하기 난감한 상황이다.
허은규 검바위초등학교 교감은 “저학년 아이들이 그 길을 주로 이용하는데 내년엔 그 수가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라며 “학교 교문 바로 옆 통행로 20m 중 6~8m 정도가 차들이 통행하는 진출입로에 해당한다. 통행 안전 확보를 위해 학교에서도 대안 마련 논의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시흥시는 관할 교육청, 경찰서 및 학부모 비대위, 학교 관계자와 함께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충분한 고려 없이 건축 허가가 나고 늦장 대응을 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그 사이 집회에 참여한 학부모 등을 업체가 고발하면서 양쪽의 갈등은 더 깊어졌다. 최근에는 여야 지역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비대위는 시흥시의 공사중지 명령으로 행정심판을 받는 동안 시흥교육지원청이 교육시설 안전성 평가에서 업체에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고 지적했다.
시흥시 관계자는 “학부모들로부터 시가 사업시행자 토지를 매입하는 안을 요청 받아 협의 진행 중”이라며 “업체는 부정적인 입장이라 아직은 불투명한 상태”라고 말했다. 업체는 협의 진행 상황 등과 관련한 문의에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차량 통행량이 늘면 스쿨존 교통사고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안전 측면에서는 매입이 효과적이지만 비용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인력을 추가 배치하거나 하교 시간대 영업을 조율하는 등이 있지만 위험 요소가 여전히 남는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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