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 투자한 60대 A 씨. 은행원이었던 A 씨는 정년퇴직 후 3억 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했다. 이자를 받으면 생활비로 사용하려던 목적이었다. 하지만 다음달 만기를 앞두고 계산해보니 1.5억 원가량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H지수가 30%나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은퇴 자금을 투자했다가 최근 H지수가 급락하면서 50%의 손실을 떠안게 된 것. A 씨는 “그동안 이자 몫으로 받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25~30%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 것”이라면서도 “ELS에 투자한 것은 원금을 지키면서 이자도 받으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이자를 따져봐도 손해가 막심하다”고 토로했다.
#4개 은행 1월 손실액만 3400억 원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 만기가 돌아오면서 피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1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NH농협 등 주요 은행 네 곳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서 지난 8~12일 총 1067억 원의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 이 기간 3년 만기가 돌아온 상품은 2105억 원인데 이 중 1038억 원만 상환됐다. 전체 손실률은 50.7%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H지수가 지금처럼 5400선을 유지할 경우 국민 신한 하나 농협 등 4개 은행 H지수 연계 ELS 상품에선 이달에만 3400억 원가량의 손실액이 확정된다.
홍콩H지수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21년 1만 1000선을 넘었던 지수는 12일 종가 기준 5481.94까지 떨어졌다. 3개월 전만 해도 6200에 달했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해 5500선도 무너진 상태다.
올 1분기까지 H지수 급등이 없을 경우 손실 규모는 1조 5000억 원까지 확대되고, 올해 상반기 만기를 앞둔 10조 원이 넘는 투자액을 고려할 때 최대 5조 원까지 손실 규모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본격적인 피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이다.
H지수가 급등하면 추가 피해는 줄어들 수도 있다. 상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상품은 만기 시점의 H지수가 3년 전의 70% 수준은 돼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H지수가 지금보다 30% 이상 올라야 한다는 것인데 증권가에선 중국 부동산 경기 회복과 지방정부 부채 등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H지수 상승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원도 급증, 금융당국 “3월 안에 결론 목표”
지난 12일까지 은행권에 접수된 H지수 ELS 관련 민원은 1410건에 달한다. 만기를 앞두면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만 벌써 518건이 접수됐다. 민원을 제기한 이들은 “ELS가 고위험 상품임에도 은행에서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는 등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은행에서 홍콩H지수가 30%나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얘기해 투자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고위험 상품 가입에 필요한 투자성향서나 서명을 은행 직원이 대리 작성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민원을 제기하지 않은 이들도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A 씨는 “상품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투자했기 때문에 별도의 민원을 제기하지는 않았다”면서도 “정부에서 판매사들에게 ‘약간의 배상이라도 해야 한다’고 결정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8일부터 H지수 ELS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주요 판매사 12곳에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금융당국은 판매사들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중점적으로 확인 중인데, 이를 토대로 손실 부담 및 책임 소재를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9일 “ELS는 예·적금이 아닌 금융투자상품으로 투자자들도 자기책임 원칙 아래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서도 “본인 책임과 별개로 손실 부담과 책임소재 정리 등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확인되면 이를 토대로 판매사들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총선 전에는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3월이 지나기 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총선 전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잡았음을 시사한 다.
금융권에서는 2021년 라임펀드 사태 당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과 유사한 수준의 배상 책임 가능성이 거론된다. 당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손실액의 40~80%를 배상하라고 금융사에 권고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자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며 “다만 투자자들에게 제공된 정보가 충분했는지, 투자자가 고령인지, 투자자가 앞서 다른 금융상품들에 투자했던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 등에 따라 배상 비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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