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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 휴직① 여성의 육아휴직이 기본값인 사회

출산율 급감하니 육아휴직 신청도 감소…저출산 원인, 여성 노동권·인권 관점서 접근해야

2024.01.11(Thu) 11:07:08

[비즈한국] 우리 집 둘째는 소화기관이 약한 편인데 아팠다 하면 꼭 밤 10시이거나 일요일 혹은 공휴일 이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밤새워 수 차례 토사물을 받아 내고 여러 개의 이불과 수건을 세탁기로 나르며 번갈아 보초를 선다. 가정에서는 제 아무리 공평하게 50 대 50으로 양육자 역할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동이 틀 때 한시라도 빨리 진료를 보고 수액이라도 맞고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소아청소년과를 찾아 나서는 것은 언제나 엄마인 나의 몫이다.

 

한창 자랄 나이의 아이들은 하루 중 언제라도 갑자기 아플 수 있고 언제라도 누군가의 손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긴급 호출에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24시간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역시도 대부분의 경우 여성인 ‘엄마’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한창 업무시간에 휴대전화의 진동벨이 울리면 제발 발신자명에 어린이집이 뜨지 않길 간절히 바라지만, 이미 첫 번째 진동이 울릴 때부터 직감하는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다. 보육시설이나 유치원, 학교에서도 주 양육자, 학부모 긴급연락처 자리 상단에는 언제나 ‘엄마’를 기본값으로 놓는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이곳저곳에서 걸려 오는 콜에 빛의 속도로 반응하다 보면 직장에서의 성공적인 커리어는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하다.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건 아무리 제도적 배려가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러한 여성의 노동권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사진=생성형 AI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나름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조직문화를 자랑하며 수년간 여성가족부로부터 여성 친화 기업 인증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생리상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면서 가정의 부름을 우선순위로 두고 당일 연차를 청구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보다는, 회사의 부름을 우선순위로 두고 일과시간 이후나 주말의 불규칙한 일정에도 맞춰 일하는 사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기혼유자녀여성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나가거나의 갈림길에서 서서 늘 선택을 강요받는다.

 

육아휴직 제도는 업무상질병휴직(산재휴직), 가족돌봄휴직과 더불어 법에서 정한 가장 대표적인 법정 휴직이다. 여성 근로자 비율이 절반을 훌쩍 넘는 우리 사업장은 상시근로자의 20% 이상이 언제나 육아휴직 중이며, 이들의 빈 자리를 대체하기 위한 계약직 직원 채용이 1년 내내 진행될 정도로 휴직 사용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육아휴직 신청서를 제출하는 젊은 여성 직원들이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채 1명이 되지 않는,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 지표를 실제로 목도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잉교육과 학력거품으로 신입사원의 평균연령은 과거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로 점점 올라 가고 있고 소위 ‘결혼 적령기’라고 할 30대 초중반의 나이는 모두가 한창 왕성하게 일하는 시기이다. 커리어를 쌓고, 일에서 자기 효능감을 찾으며 자아를 실현해 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미혼이든 비혼이든, 기혼이든 관계없이 커리어나 소득을 포기하고(혹은 잠시 미뤄두고) 결혼과 출산, 양육이라는 힘든 길을 택하라고 하면, 그 누구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보았다.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30년 대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늦게 하는 만혼(남성은 30세 이상, 여성은 23~24세 이상) 풍조에 대해 이광수, 김기진, 김억, 나혜석 등 문인들을 모아놓고 진행한 ‘만혼타개 좌담회’이다.

유일한 여성 문인 나혜석은 ‘선배들의 결혼생활을 보며 느낀 환멸, 신학문으로 교육받은 여성으로서 자아실현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나머지 남성 문인들은 ‘경제적 이유’를 들거나, 결혼난 완화책으로 이혼남성을 환영하는 풍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도 이혼여성은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기에 적합하지 못하다며 이중잣대를 들이밀고, 결혼이 여성에게 한 평생 밥 주고 옷 입혀주니 일생을 취직시켜 주는 것이라고 갑론을박 하는 모습을 보면 2024년에 쓰인 글이라고 해도 이질감이 전혀 없을 정도라 실소가 나온다.

 

대통령의 신년사에는 ‘저출산을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원인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말들은 있으나 ‘성평등, 여성, 인권’ 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나마도 ‘경제 성장을 위해 저출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며 여성의 출산과 출생할 국민(노동력)을 오로지 도구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하다는 점만 확인시켜 주었다. 무려 한 세기가 흐르도록 이 사회의 소위 기득권층이라고 하는 이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와 돌봄, 여성의 노동과 인권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저출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지 묻고 싶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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