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서울 종로구 세운지구의 초고층 개발이 속도를 내면서 세운상가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고 양옆으로는 고밀 개발을 하겠다는 서울 도심 대개조 구상에도 시동이 걸렸다. 서울시는 종묘 앞부터 5호선 충무로역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세운상가군(세운·청계·대림·삼풍·풍전·신성·진양)을 허물고 그 자리에 긴 녹지축을 만들 계획이다. 이른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이다. 그러나 사업 진행이 과연 되겠느냐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토지 보상 문제, 빽빽이 터를 잡은 상가 세입자의 이주 대책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개발과 보존을 반복한 세운지구 개발 사업이 오세훈 시장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기도 쉽지 않아 동력이 이어질지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간신히 자리 잡았는데” 상인들 ‘답답’
“4구역에서 영업하다가 세운상가로 옮겨온 지 2년 밖에 안됐어요. 부품을 들고 이사를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받고 나온 보상금도 터무니없는데 반복되니 답답한 상황이죠.”
40년 넘게 세운지구에서 부품 가게를 운영해 온 A 씨는 세운상가 개발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을 내쉬었다. 2021년 이주가 시작된 세운4구역에서 인근의 세운상가 4층으로 가게를 이전했는데 곧이어 상가까지 철거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전 당시만 해도 세운지구는 구역별로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병행 추진되고 있었다. 세운4구역은 각종 전자제품과 기계, 부속을 취급하는 점포와 공장이 밀집한 곳이었다.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 진행되자 상인들이 용산 등에 뿔뿔이 흩어졌고 일부는 세운상가로 들어왔다. 또 다른 부품 가게 주인도 “주변 상가 건물이 허물어지자 대피소처럼 모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인들의 말처럼 세운상가는 오랜 재개발 부지인 데다 1967년 지어진 노후 건물인 것치고는 건물 내 점포 대부분이 영업 중이다. 10년 전 60%에 달하던 공실률은 현재 꽤 회복된 모습이다. 세운상가 시장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전체 460여 점포 중 영업하는 곳은 약 370개로 80% 정도다.
한동안 잠잠했던 세운상가 개발을 두고 상인들 사이에서 다시 우려가 나오는 것은 서울시의 새로운 개발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171개 구역으로 쪼개진 세운지구를 다시 23개 구역으로 묶어 민간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10월 확정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은 종묘 앞 세운상가부터 중구 퇴계로 진양상가까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약 1km의 세운상가군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고, 상가 좌우에 위치한 기계공구상가나 인쇄소 밀집지역에는 초고층 복합업무단지를 세우는 내용이 핵심이다.
연말을 기점으로 종묘 앞 ‘마천루’를 조성하는 청사진에는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었다.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세운3-2·3구역과 세운 3-8·9·10의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 건축계획안이 지난달 26일 서울시 건축위원회에서 조건부로 통과됐다. 계획대로라면 두 구간에는 지상 36층~39층 규모의 업무시설이 2개 동씩 들어선다.
3구역은 6구역과 함께 세운지구에서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이다. 바로 앞 3-1, 3-4·5구역에 지어진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최고 27층) 두 단지보다도 10층가량 높게 지을 수 있는 건 이 구역이 중심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된 탓이다. 일반 상업지역인 세운지구는 원래 90m 높이까지 건물을 올릴 수 있지만, 서울시가 세운지구를 일반 상업지역에서 중심 상업지역으로 상향하면서 최고 203m까지 가능해졌다. 현재 중구 도심 내 두타몰(158m), 미래에셋센터원빌딩(148m)보다 고층이다. 개발 주체가 세운상가를 전부 혹은 일부 매입해 시에 기부채납하고, 시는 이를 수용해 녹지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번엔 개발될까, 소유주·세입자 반대 관건
서울 도심의 핵심 입지지만 수십 년간 개발이 꼬이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세운상가에 입주한 영세 세입자들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상인들은 보증금과 임대료가 싸다는 장점도 있지만 같은 업종이 모여 내는 집적 효과나, 일대에서 발주부터 부품 수급, 가공까지 이어지는 연계 효과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종로3가역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못해도 20~30년 전 터를 잡은 가게들인데 아예 종로, 중구 일대를 떠나야 한다면 쉽게 포기하고 나가기 어려울 거다. 대로변 상가는 소유주도 적정가를 받지 못할 거면 (재개발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진행된 개발 사업에서 상인들의 재정착을 위해 공공임대상가 건립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결과물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5-2구역에 마련된 공공임대상가 ‘상생지식산업센터’는 고객 유입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침체된 분위기고 일부 구역의 경우 진행 과정에서 백지화됐다.
안석탑 세운상가 시장협의회 총회장은 “아직까지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영업 보상, 점포 이주 대책과 관련해 상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려는 시도는 전무한 상황”이라며 “정책 때문에 밀려나는 상인들에게 영업을 이어갈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며 협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소유주 보상 문제도 난관이다. 전문가들은 세운상가가 철거되기까지 관련 조례, 복잡한 상가 지분 문제가 정리돼야 하고 부지 매입과 수용 절차를 마무리하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급등한 서울 도심 중심부 땅값을 어떻게 반영할지도 관건인데, 오 시장은 새 계획 발표 전인 지난해 9월 최후의 수단으로 상가 강제 수용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 경우 시세보다 싼 가격에 땅을 넘겨야 하는 소유주들의 반대를 피하기 어려워 사업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과 달리 상가는 수입과 관계돼 이해관계가 얽혀 더 까다롭다. 장기간 사업이 진행될 것”이라며 “재산권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분이 적다는 이유로 개발 사업에서 배제되는 건 적절하지 않고 면적대별로 차등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오는 10일 주민 대상 공청회를 열고 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상안이나 세입자 대책은 사업 시행 단계에서 시행 주체들이 세부적으로 결정한다. 서울시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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