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여가부는 2024년 예산안에 청소년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해 ‘청소년 정책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비즈한국 취재 결과, 여가부 산하 준정부기관 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매년 진행하던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전면 폐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여가부는 올해 “청소년활동의 허브기관인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역할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이곳에서 진행하던 청소년 사업은 폐지·축소될 예정이다.
#청소년 정책 예산 2년 연속 삭감
여가부의 올해 예산은 1조 7234억 원이다. 여가부는 전년 대비 예산이 9.9% 증가했다며 사회적 약자 보호와 저출산, 위기 청소년 지원 강화 등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한다. 세부내용을 보면 가족 정책과 행정지원 등의 예산은 증가했지만, 양성평등과 청소년 정책 예산은 모두 삭감됐다. 특히 청소년 정책 예산은 2023년에 전년 대비 7% 삭감됐는데, 올해 역시 2392억 3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5.3% 줄면서 2년 연속 예산이 삭감됐다.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16.1%에서 2024년 13.9%로 줄었다.
지난해 10월 용혜인 의원실(기본소득당)은 “여성가족부 2024년 예산 사업 설명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관련 활동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고 밝혔다. 올해 여성가족부 예산에 잡혀 있던 청소년 활동 예산 38억 2000만여 원, 청소년정책참여 지원 26억 3000만여 원,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34억 원, 성인권교육예산 5억 6000만여 원, 청소년 근로권익 예산 12억 7000만여 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는 설명이다.
여가부가 청소년활동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지난해 10월 청소년 관련 단체들이 ‘전국청소년예산삭감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철회를 촉구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특히 국회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예산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잼버리 사태와 김행 전 여가부 장관 후보자 사퇴 등 논란이 겹치면서 여가위에서 처리해야 할 안건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것이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2024년 예산안 심사 자료도 받지 못했다. 원래는 여가부에서 올린 예산안을 여가위에서 조정해야 하지만, 전체회의가 개최되지 않으면서 제대로 논의를 못 했다. 그래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넘어가서야 논의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들을 다 확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관련 사업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비즈한국 취재 결과, 여가부 산하 준정부기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서 운영하던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은 지난해 국가 간 청소년교류, 청소년 해외자원봉사단, 청소년 국외역사체험활동, KOICA 글로벌 연수, 한일 직원상호교류 및 포럼 등 7개의 국제교류 사업을 진행했는데, 올해부터 모두 사라진다. 총 1200여 명이 참여하는 규모다.
국제교류 프로그램만 없어지는 게 아니다. 청소년 동아리, 공모사업 등 청소년 지원 사업도 사라진다. 남은 사업들도 대거 축소되거나 통합될 예정이다. 청소년과 전문가가 모여 청소년정책과제를 논의하던 청소년특별회의도 지역사회 청소년 참여활동 사업과 통합될 예정이다. 지자체와 연계해 진행하던 사업들은 모두 지자체 의지에 따라 유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청소년활동진흥원 관계자는 “청소년 예산이 축소됐기 때문에 사업 역시 축소된다. 폐지되는 사업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업이 전부 축소됐다. 전국적으로 청소년 관련 사업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될 예정이다”고 전했다.
여가부 지원으로 민간 청소년단체가 운영하던 국가 간 교류 프로그램들도 폐지될 전망이다. 한 청소년단체 관계자는 “청소년활동진흥원뿐 아니라 민간 단체가 여가부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글로벌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수년간 이어왔던 국가 간 네트워크가 전부 중단된 상황이다. 민간 단체에서 진행하던 청소년 공모사업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과 관계자는 “국제교류나 동아리 사업 등은 국가 재정과 부정 수급 등을 감안해 건전재정 기조 하에 예산이 삭감됐다. 대신 디지털 기반 활동을 중점으로 한 네트워킹 지원사업, 조기 학점제 프로그램 운영 보급 사업 등에는 예산이 반영됐다. 청소년활동도 많은 변화가 필요한 과정이라 예산에도 변화가 있었다. 다만 국제교류 프로그램 같은 경우 재검토해서 내년에 예산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가부 내부에서도 불만 목소리…청소년 단체 “통상적이지 않았다”
지난 2020년 청소년활동진흥원 국가 간 교류사업에 참여했던 20대 A 씨는 비즈한국에 “당시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교류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정부 지원 덕에 비용 걱정 없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 좋았는데, 교환학생이나 유학을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기회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보장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예산 삭감 과정이 통상적이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국청소년예산삭감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여가부가 예산안을 국회로 넘긴 후 비대위를 구성했지만, 최종적으로 복원이 안 됐다. 어쩔 수 없이 내년도 예산 복원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보통은 함께 사업을 진행하는 기관과 5월 정도에 예산을 논의하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미 예산안이 정해진 9월에야 삭감 사실을 통보하면서 ‘국회를 잘 설득해봐라’고 하는 식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새어나온다. 여가부 한 직원은 “새 장관이 부임해 직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조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직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취약계층 지원 사업도 대폭 줄었다. 다들 한탄하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이영일 한국청소년정책연대 대표(전국청소년예산삭감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는 “국제교류 사업뿐 아니라 청소년 관련 주요 예산이 전부 삭감됐다. 그러고선 부수적으로 진행하던 사업들을 부각하고 있다. 잼버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평가하면서 잼버리 파행을 명분으로 내세워 국제교류 예산을 삭감했다. 예산은 없는데, 청소년 활동을 활발하게 지원하겠다고 한다. 청소년 지원 육성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다. 결국 지자체에서 자체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도 지금으로선 이 부분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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