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이 극적 타결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SM과 카카오의 시너지는 감감무소식이다. 카카오가 주식을 인수할 당시 시세조종을 했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SM 주가까지 발목이 잡혔고 양 사의 결합을 발판으로 상장을 계획하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아이돌 세계관을 웹툰이나 웹소설로 녹여낸 콘텐츠가 카카오 플랫폼에서 공개된 적은 있지만 파급력은 미미했다. 법적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 사가 적극적인 협업 전략을 짜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SM은 올해도 사업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기보다는 새 체제에 적응하고 수익을 안정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지지부진’ 웹툰 한 편에 그친 카카오와의 협업
지난해 상반기 SM엔터테인먼트는 장기화된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 관련 리스크를 벗어던지고 경영권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수만 전 총괄이 고집했던 ‘광야’ 세계관을 내려놓고 현실로 돌아온 SM은 ‘SM 3.0’ 시대를 열었다. 오랜 기간 유지해온 1인 프로듀싱 체제를 탈피하고 아티스트별로 전담 센터를 나눠 효과적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SM은 지난해 2분기부터 이 전 총괄의 손을 거치지 않은 에스파의 미니 앨범 3집을 시작으로 3분기엔 신인 라이즈를 공개하는 등 수익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음반, 공연 외에 아이돌 캐릭터를 활용해 MD나 콘텐츠를 만드는 2차 IP 사업의 변화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기대됐던 거대 IT기업 카카오와의 시너지는 발휘하지 못했다. 홍은택 카카오 대표는 “SM이 보유한 글로벌 IP와 제작 시스템, 카카오와 카카오엔터가 보유한 IT와 IP 비즈니스를 활용해 시너지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구상은 인수 5개월만인 지난해 8월 들어 처음으로 실현됐다. 보이그룹 NCT 드림의 세계관 웹툰과 신인 라이즈의 성장사를 담은 웹소설을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선보이면서다.
하지만 대중은 물론 팬덤 내 호응도 크지 않았다. “그림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거나 “오글거리지만 참고 봤다”는 플랫폼 내 리뷰에 다수가 공감했다. 웹툰과 웹소설은 그나마 인수 단계에서부터 쉽게 예상됐던 협업인데, 이후 더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업계 안팎에서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부터 홍은택 카카오 대표, 김성수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까지 시세조종 의혹을 받으면서 카카오와 SM이 연계 사업을 적극 추진할 여건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장철혁 SM엔터 대표이사를 포함해 당시 SM엔터 경영진 4명도 조사 대상에 함께 올랐다. SM 역시 카카오 사법리스크의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증권가에서는 SM의 주가 부진을 두고 “카카오 관련 리스크는 법적 문제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한다. 엔터사 관계자는 “외부 요소를 고려하면 구체적인 협력안을 발표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며 “지난해 인수 직후 협업 논의에 속도를 내다가 한 템포 늦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과 절실한데…해외 현지화 그룹 성공할까
카카오와의 시너지는 미미한 상태지만 창사 28년 만에 이수만 없는 회사가 된 SM은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SM에 따르면 현재 5개의 제작 센터와 함께 버추얼 아티스트의 제작 및 운영 관리를 전담하는 별도의 센터가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 결정 권한을 각 디렉터에게 위임해 전문성은 키우고 프로젝트 기간을 단축하도록 한 특단의 조치다. 중소형 기획사를 인수해 여러 레이블을 구축한 하이브처럼 ‘사내 레이블’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인데, SM이라는 지붕 아래서 팀끼리 경쟁하게 됐다.
정체 조짐이 보이는 해외 시장에서는 K팝의 제작 시스템과 현지 인력을 결합하는 작업에도 착수한다. 최근 ‘빅 4’ 엔터사들이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이른바 ‘현지화 그룹’ 전략이다. 현재는 외국인 멤버가 일부 포함된 수준이지만 앞으로는 현지에 국내 기획사의 프로듀싱 시스템을 접목해 전원이 외국인인 그룹을 만들겠다는 것. K팝은 전에 없이 위상이 높아졌지만 북미나 유럽에서 여전히 ‘마니아 산업’으로 인식되고 내수 시장에서도 한계에 직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터주가 지난해 4분기 급락한 배경에는 K팝 산업이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전환했다는 피크아웃(정점 통과 후 하락) 우려가 있는데 여기엔 SM도 한몫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에서 입지가 높았던 SM 에스파와 JYP 스트레이키즈의 신규 앨범 초동(첫 주 판매량)이 직전 앨범 성적보다 크게 떨어졌다.
SM은 하이브, JYP의 뒤를 이어 현지화 그룹 발굴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 시장 진출을 위해 영국의 TV 리얼리티쇼 전문 제작사와 손을 잡았다. 현지 제작사가 영국에서 남성 멤버를 직접 캐스팅하고 SM은 음악·뮤직비디오·안무 등 자사의 아티스트 제작 체계를 제공하는 식이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점치기 어렵다. 벌써부터 K팝의 장르적 특성만 남을 것이라는 정체성 논란이나 노하우 유출 우려가 뒤따른다. 한국인 멤버를 선호하는 국내 팬들의 반발도 크다. 업계는 피할 수 없는 변화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아티스트의 국적과 기반 국가가 중요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지만 K팝의 고유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전략들이 나올 것”이라며 “K팝이 조금 더 풍성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독 북미 시장에서 고전해온 SM이 넘어야 할 산은 더 높다. 기획사가 어린 연습생을 훈련시켜 아이돌 그룹을 선보이는 육성 시스템의 시초이자 해외 기반 현지화 그룹 제작에 가장 많은 노하우를 가졌지만 아시아권에서만 통했기 때문이다.
신인 보이그룹 라이즈(위)와 걸그룹 에스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올해 SM은 수익성 개선과 글로벌 확장을 위한 기반 마련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SM과 카카오에 따르면 양 사는 지난해 8월 북미에 현지 법인을 세우고 각자의 미국 법인 역할을 통합하고 있다. 양 사의 협력도 “멈추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SM의 목표는 2025년 매출액 1조 8000억 원에 영업이익 5000억 원이다. 주가는 여전히 고전하고 있지만 지난 3분기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경영권 분쟁의 도화선이던 이 전 총괄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이 2022년 말 조기 종료된 데 이어, 2025년까지 매니지먼트 매출의 3% 등 추가 수수료 지급 약정도 종료 수순이라 수익성은 일부 개선된 상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하이브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SM은 레이블 제작에서 후발 주자다. 올해보다는 내년에 성과가 기대된다”며 “서양권 현지화 전략은 아직 성공 모델이 나오지 않아 물음표가 달린다. 외연을 확장하는 방법이지만 국내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이어지는 만큼 기존 팬덤이 위축될 여지가 있어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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