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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덕텔링] '심리전 최강' 이스라엘이 한국서 범한 치명적 실수

한국용 선전 동영상 제작했으나 역효과…팩트 왜곡, 자만심 등이 실패 원인

2024.01.02(Tue) 13:51:41

[비즈한국] 지난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시작으로 벌어진 대규모 충돌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2만 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피해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양쪽은 전투만큼이나 치열한 심리전, 홍보전 등을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자국민과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일종의 홍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 대사관이 삭제한 홍보 영상. 사진=이스라엘 대사관 출처

 

하지만 ‘홍보 전쟁’이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엉뚱하게 진행됐다. 지난 26일 이스라엘대사관은 X(구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지에 홍보 영상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한국의 서울에서 테러범들이 시민을 공격하고, 테러범들에 의해 부녀가 다치고 아이가 납치되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대사관은 보도자료에서 “성탄절에 일어난 테러 공격을 담은 이 영상은 이스라엘인의 심정을 한국 국민에게 더 잘 전달하려는 의도로 제작됐다”고 밝혔지만, 한국 국민의 여론은 냉담했다.

 

문제는 내용이 단순히 이스라엘이 정의롭고, 피해자라서 억울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멋대로 한국인이 납치당하고 살해당하는 영상을 공식적으로 제작했다는 점이다. 분단된 국가로 핵 위협을 상시 받고 있고, 북한의 도발을 항상 걱정하는 한국 상황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우리 국민에게 이스라엘의 동정여론보다는 ‘부정적 여론’을 영상이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 외교부 측에서 “하마스의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살상과 납치는 정당화될 수 없으나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이를 타국 안보 상황에 빗대어 영상을 제작·배포한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는 논평까지 나왔으며 현재 이스라엘대사관은 영상을 삭제했다. 

 

현 정부가 절대적인 지지를 밝힌 이스라엘을 상대로 공식 성명의 형태는 아니지만, 대사관의 작업에 대해 외교부가 정식으로 항의한 이 사태는 이스라엘에 있어 엄청난 실수이자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물론 이스라엘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리전 사고’인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심리전 최강’이라 불리던 이스라엘이 심리전의 본분을 잊고 자만심에 빠진 탓이다.

 

21세기 들어 언론과 미디어, SNS가 발달한 현재 여론전에서 앞선다는 것은 단순히 병사들의 사기나 기분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다. 전쟁의 수행에 필요한 외국의 지원을 담보하는 것과 같다. 하늘을 장악하여 적은 아군은 폭격할 수 없고, 아군은 적을 마음대로 폭격할 수 있는 ‘제공권’을 장악하듯, 언론과 미디어를 장악하여 여론을 높이느냐가 사실 전쟁의 승패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까지 이스라엘이 ‘하이브리드 심리전’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았었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지난 21년도 5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와의 교전에서는 SNS로 의도적으로 대대적인 군사 공격을 알렸고, 하마스는 어쩔 수 없이 지상전을 준비하기 위해 은폐한 장비를 꺼냈다가 집중 공습을 당했다. 이와 함께 하마스가 민간인 지역에 무기를 배치하여 일명 ‘인간 방패’라는 비인간적 전술을 쓰는 증거를 폭로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일명 ‘가짜 뉴스 전쟁’으로 불리는 전투 중 사건과 사고의 팩트체크에도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보다 능숙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전쟁에서도 이스라엘은 알 아흘리(Al-Ahli) 병원을 폭격하여 500명 가까운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반박하기 위해 문제가 된 시간의 군 정찰 영상과 감청(도청)을 통해 얻은 음성 정보를 공개했다.

 

다만 나중에 영국 채널 4 뉴스(Channel 4 News) 등에서 정밀 분석으로 도청 음성이 편집과 조작을 거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빠른 초동 조치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친이스라엘 국가들의 공식 입장은 하마스의 조작 혹은 하마스 무기의 폭발 사고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최근의 심리전 싸움에서 많이 밀리는 모양새다. 한국의 ‘영상 삭제 사고’ 뿐만 아니라 과거보다 우호적 국제여론이 많이 줄었다. SNS를 사용한 심리전 역량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어떠한 사람이나 세력도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자기 과신과 자신감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작업 및 조작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계에서는 ‘진실은 힘이 세다’는 금언을 자주 인용한다. 전설적인 언론인 아이다 B. 웰스(Ida B. Wells)의 일생을 다룬 책 제목에서 나온 이 말은 하이브리드전, 혹은 인지전(Cognitive Warfare)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의 생각을 우리 편, 우리 군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법은 그저 있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거짓말쟁이로 몰릴 때 거짓말했다고 인정하는 방법뿐이다.

 

현대전에서 하이브리드전, 인지전 등 심리전이 중요해질수록,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이나 실수를 각국의 심리전 부서들이 저지르곤 한다. SNS에서 잘 정리된 논리나 자극적인 이미지로 자신들이 원하는 유리한 여론 환경 조성과 주도권 확보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심리전에서 광고나 마케팅에서 배어온 ‘포장’은 무기로 치면 탄약이나 포탄, 미사일이 아닌 무기에 설치된 무전기와 컴퓨터일 뿐이다. 구형 전차에 그 어떤 최신형 탄도 컴퓨터나 LCD 디스플레이를 달아도, 그 전차가 신형 전차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는 철갑탄을 장착했다면 그 어떤 장비를 갖춰도 전차전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이브리드 전쟁, 인지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기법과 방법은 많지만, 적 뿐만 아니라 아군조차 항상 의문을 느끼고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특정 학자나 문서, 자료가 아닌 ‘인간의 경험’을 무시하고 과거의 역사나 현재 상황을 왜곡하고자 하는 시도를 심리전으로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갈고닦은 수많은 하이브리드 심리전, 인지전 역량을 사용해서 그동안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의 전쟁이나 주변국과의 갈등에서 우위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갈고 닦은 심리전 능력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벌인 민간인 납치, 인간 방패, 기타 전쟁 범죄에 대한 공격은 여론전으로 잘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이 벌인 민간인 폭격이나 인권탄압에 대해서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무리한 이미지 왜곡이나 사실을 호도하는 한, 이스라엘의 심리전이 더 좋은 성과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강 하이브리드 심리전’ 능력을 갖춘 이스라엘의 추락, 폭주(暴走)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번 ‘한국인 협박 영상 삭제 사건’에서 우리 군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매우 명확하다. 심리전은 우리의 잘못을 지우고 은폐하는 선전 수단이 아닌 적의 잘못을 밝히고 우리의 실수와 실패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성찰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전에서 적을 공격하는 메시지는 실제 작전 수행 시 국제법적 정당성을 갖추고, 국내 헌법에 대한 수호 의지, 국가의 역사관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신념을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최근 발간된 ‘장병 정신교육 자료’ 2만 부가 전량 회수된다. 정신교육 자료는 단순히 장병들이 일주일에 한 번 듣는 강의 교안이 아니라, 우리 군이 하이브리드 전에서 적의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탄약’이다. 이 자료를 기반으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 군인들이 국가를 지키는 이유를 계속 설득해야 한다.

 

다행히 이번에 문제가 된 장병 정신교육 자료를 회수하게 되었으나, 이제는 개정판의 내용을 어떻게 고칠지 고민해야 한다. 국방부는 이번 정신교육 자료 회수 사건에 대해서 단순히 정치적 공방이 아닌, 진실한 개선의 기회로 생각하고 정신교육뿐만 아니라 우리 군의 심리전과 인지전 작전에 대한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길 간곡히 부탁해 본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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