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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입시부터 반영 안 되니 '뚝'…청소년 봉사활동 82% 급감

봉사시간 인정하는 헌혈도 수급에 영향…교육계 "'스펙화'가 문제, 교육 효과 커"

2023.12.29(Fri) 09:52:46

[비즈한국] ‘스펙 쌓기’ 경쟁을 불러온 주요 비교과 활동이 2024년도 대입부터 사실상 폐지된 가운데 자원봉사 현장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개인 자원봉사 실적이 입시에 반영되지 않자 청소년 봉사자가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이 같은 현상은 고교생들이 그동안 ‘입시용 봉사’를 위해 찾았던 시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요 비교과 활동이 대입에서 사실상 폐지되자 복지시설과 공공기관 등이 청소년 봉사자 ‘인력난’을 겪고 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배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코로나 가도 오지 않는 고교생, 입시 도움 안 되니 ‘구인난’

“일주일에 두 번 저소득 어르신들 댁에 밑반찬 배달을 하던 학생 봉사자들이 크게 줄었죠. 현재는 부녀회나 주민자치회, 노인봉사단 같은 주민 단체들이 복지관 일손을 거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면 봉사 활동이 위축된 데다 개인 봉사 실적이 더 이상 대학입시에 반영되지 않자 청소년들의 자원봉사 참여가 현저히 줄고 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연말의 복지시설에서도 느끼는 변화다. 서울의 한 노인종합복지관 직원 A 씨는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청소년 봉사가 이제는 선뜻 요청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중·고등학교와 맞닿아 있는 이 복지관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내 봉사동아리와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매년 꾸준히 운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생들은 주로 밑반찬 배달 같은 정기적 활동을 도왔다. 복지관이 반찬을 만들면 학생들이 매주 자신의 집 근처 노인가구에 배달하는 식이다.

면역력이 낮은 저소득 노년층을 대면하는 일이라 코로나19 시기에는 복지관 직원들이 직접 맡았지만, 복지관이 정상화된 후에도 여전히 학생들의 발길은 뚝 끊긴 상태다. A 씨는 “청소년 봉사자가 많이 필요하다. 현재는 자신이 정말 원해서 선생님을 통해 연락하는 학생들하고만 진행하고 있다. 학업에 지장이 생길까봐 학교 선생님조차 아이들을 독려하기 조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시설. 사진=강은경 기자


2019년 교육부는 대입 전형에서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2024학년도부터 봉사활동 등 모든 비교과 활동을 반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한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내놓은 대책이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올해 고3에 첫 적용됐다. 외부 봉사활동 내역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지만 대입자료로 평가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학교교육계획에 따른 교내 봉사만 한정적으로 반영한다.

이는 청소년 자원봉사 참여율에 즉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행정안전부 1365자원봉사포털을 통해 올해 11월 말까지 한번이라도 봉사활동에 참여한 14~19세 자원봉사자 수는 약 27만 8000명으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같은 기간(156만 5000명)보다 82% 이상 급감했다. 이는 4년 간 396만 명 규모에서 193만 명 규모로 절반 정도 줄어든 전 연령대 통계와 비교했을 때도 크게 꺾인 수치다.

#헌혈에도 여파, 봉사활동 위축 장기화될라

방학이 시작되면 늘상 청소년 봉사자 맞이에 분주하던 복지시설과 공공기관 현장도 하나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인천 남동구의 한 도서관 직원은 “학생들에겐 반납 도서를 제자리에 꽂는 일을 맡기는데 중학생은 있어도 고등학생은 잘 안 보인다”며 “청구기호 보는 법도 배울 수 있고, 춥고 더운 방학 때 쾌적한 실내에서 하는 활동이라 원래는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마포구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 관계자도 “어르신 봉사자가 가장 많고 인근 대학생들도 동아리 등 모임을 꾸려 자주 방문한다. 예전엔 개인 봉사를 위해 찾아오던 어린 학생들도 있었지만 요샌 거의 없다”고 말했다.

사진=강은경 기자

행정안전부 1365자원봉사포털 내 모집 마감이 임박한 자원봉사자 구인글. 사진=강은경 기자


자원봉사자 구인이 이뤄지는 1365자원봉사포털엔 마감일을 앞두고도 모집인원 대비 신청인원이 미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연말까지 10대 봉사자 총 5명을 구하는 경기도 광주의 한 요양원 모집 글에는 3개월간 3명이 지원했고, 인천 강화의 지역아동센터 학습지도 보조 업무에는 두 달 동안 목표치 10명에 못 미치는 8명이 신청했다. 12월 말일자로 모집 종료하는 서울 강동구의 지역아동센터 역시 초등학생과 중학생 대상 교과 지도를 위해 하루 최대 4명의 청소년 봉사자를 구인했지만 5주간 단 2명이 지원서를 냈다.

바뀐 입시 제도에 헌혈 수급도 비상이다. 한 회당 봉사시간 4시간을 주는 헌혈은 학생들이 주로 참여했던 봉사활동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는 학교 연간교육계획에 반영된 단체헌혈에 대해서만 대입시 봉사활동으로 인정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헌혈을 포함한 개인 봉사활동 실적이 대입에 미반영됨에 따라 올해 고3 입학년도인 2021년부터 고교생 헌혈참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헌혈관리본부에 따르면 고교생 헌혈실적은 지난해 기준 약 25만 건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1년(31만 건)보다도 약 20% 감소했다. 올해도 11월 말 기준 23만 명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한파로 헌혈자가 줄어드는 연말연초에 10대 헌혈자들의 공백까지 더해지자 혈액수급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개인 헌혈 봉사활동의 대입 미반영이 지속된다면 향후에도 헌혈 참여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헌혈은 객관적 증빙이 가능해 논란의 소지가 없고 자발적인 헌혈 경험을 통해 생명 나눔을 실천하는 교육 효과도 있는 만큼, 대입제도 공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혈액관리본부는 학생들이 헌혈의집에서 헌혈을 해도 입시용 봉사실적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에 건의 중이다.

한파로 헌혈자가 줄어드는 연말연초에 10대 헌혈자들의 공백까지 더해지자 혈액수급에는 비상이 걸렸다. 사진=연합뉴스


생활기록부 축소가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일으키면서 봉사활동이 갖는 의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입시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한때는 감염병 유행과 거리두기 정책이 장기화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해석됐지만, 더디더라도 회복세를 보이는 다른 연령대와 달리 좀처럼 늘지 않는 청소년 자원봉사 참여율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봉사에 소위 ‘급’을 매기고 ‘스펙화’ 하는 게 문제인데도, 입시 제도를 건드려 일반 학생들이 봉사 활동 경험을 쌓을 유인책까지 없앴다는 지적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봉사활동은 인성교육적 측면에서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입시제도에 반영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시작하더라도 교육적 효과가 높다. 현재도 자사고나 특목고 입시에서는 반영되고 있다”며 “입학 전형에 봉사활동 자체가 기본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다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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