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전국 어린이집이 2024년도 신입생 모집에 한창이다. 저출산 시대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인기 있는 어린이집은 부모들의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맞벌이, 다자녀 등의 가점 항목 없이는 입소가 불가능할 정도. 특히나 맞벌이 여부에 따라 대기 순번이 크게 달라지다 보니 자녀를 원하는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한 학부모들의 부정행위도 만연한 상황이다.
#‘어린이집 보내려면 ‘서류상 맞벌이’ 필수? “부정 입소 사례 자랑처럼 얘기해”
경기도에 사는 A 씨는 최근 동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전업주부 생활을 하는 지인들이 어린이집 입소를 위해 공문서 위조 등을 심심찮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이집은 입소를 희망하는 대기자가 많을 때 맞벌이 가정에 우선순위를 준다. 외벌이는 맞벌이보다 순위가 뒤로 밀리다 보니, 전업주부 엄마들도 맞벌이로 등록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얘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은 항목에 따른 배점을 합산해 높은 순서대로 입소가 가능하다. 입소 항목은 1순위와 2순위로 나뉘는데, 1순위는 항목 당 100점, 2순위는 50점을 받는다. 1순위 항목의 해당사항이 많아야만 입소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1순위 항목에는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차상위계층, 다문화가족, 맞벌이, 다자녀 등이 포함된다. 사회적 배려층이 아닌 가정이 1순위를 받기 위해서는 맞벌이이거나 다자녀 가구여야 하는 셈이다.
자녀를 적게 낳는 가정이 늘면서 맞벌이 여부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기 있는 어린이집이나 시립, 국공립 어린이집은 대기자가 수십 명을 넘어서기 때문에 1순위 항목에 해당하는 맞벌이 조건을 충족하지 않으면 사실상 입소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는 ‘서류상 맞벌이’를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는 가정 중 서류상 외벌이는 없을 것’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 학부모는 “어린 아이들이 많은 신도시는 맞벌이로 위장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는 일을 하지 않는 동네 엄마들이 맞벌이로 등록해 자녀를 원하는 어린이집에 보낸 것을 자랑처럼 얘기한다”라고 전했다.
맞벌이 가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입소 시 어린이집에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통상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를 위해 가족이나 지인의 사업장에 위장 취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이런 사례는 공공연하게 공유된다. 육아 관련 대형 커뮤니티에는 ‘주부인데 맞벌이로 대기 신청을 했다. 아는 분 사업자로 서류 제출이 가능한데 재직일을 언제부터로 해야 하나’, ‘맞벌이로 신청해놨는데 입소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류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이 단골 질문으로 올라오고 있다.
#‘서류상 맞벌이’에 뿔난 진짜 맞벌이, “신고해도 달라지는 게 없어 허탈”
구직활동증명서로 맞벌이 등록을 하는 형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의 맞벌이 범위를 부모가 모두 취업 중이거나 구직 중인 가구로 지정한다. 취업을 하지 않았더라도 구직 준비를 한다는 것이 확인되면 맞벌이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고용정보시스템인 ‘워크넷’에 회원가입을 하면 구직등록 확인증을 출력 받을 수 있고, 해당 서류와 함께 취업 활동을 했다는 구직활동 증명서(면접확인서, 입사지원서 등)를 제출하면 맞벌이 인정이 가능하다. 온라인상에서 구직 중인 회사에 이력서만 제출하면 구직활동 증명서가 발급되는 만큼 이를 악용해 실제 구직 의사가 없음에도 맞벌이로 등록된 가정도 적지 않다.
워킹맘 이 아무개 씨는 “친해진 동네 엄마가 워크넷에 구직 중으로 등록해 자녀를 원하는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얘길 들었다. 맞벌이로 등록하는 것이 그렇게 쉽다는 것에 놀랐고, 엄마들끼리 그런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고 말했다.
꼼수 입소가 만연하다 보니 정작 맞벌이 가정은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 씨는 “전업주부들이 모두 맞벌이로 등록하니 자녀 한 명인 맞벌이 가정은 원하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다. 연장보육도 안돼서 등하원도우미를 고용하느라 한 달에 백만 원 이상을 쓴다”며 “전업주부들이 맞벌이로 등록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보내며 연장보육까지 다 이용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어린이집 입소 관련 증빙서류 검토는 어린이집이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맞벌이 관련 서류는 어린이집 원장이 검토하도록 되어있다. 원에서 서류 검토를 꼼꼼히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류를 깐깐하게 체크하는 어린이집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상당수다. 한 어린이집은 “입소 시 구직 중으로 맞벌이 인정을 받은 경우, 입소 후에도 6개월마다 구직활동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안내한 반면, 또 다른 어린이집은 “입소 후 따로 취업이나 구직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입소 때도 굳이 서류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부정 입소와 관련된 민원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구직 중이라는 것을 증빙하기 위해 제출해야 할 서류를 정해놨고, 서류에 문제가 없다면 취업 의사가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며 “(구직 예정자로 등록해 맞벌이 혜택을 받는 것과 관련해)민원이 없지는 않다. 그래서 취업지원 프로그램 이수 시간을 강화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맞벌이 대상 심사를 강화할)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부정 입소 정황을 발견하더라도 마땅한 신고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부정 입소 의심 사례는 지자체에 신고하면 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지자체는 “수사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구청에 어린이집 부정 입소 관련 민원을 넣었으나 ‘수사권한이 없다. 직접 증거를 찾아 노동청에 신고하라’는 안내를 받았다”면서 “특정 어린이집 이름도 얘기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다들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 같아 허탈했다”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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