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구 전역의 전파 망원경을 총동원해서 실제 모습을 포착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블랙홀, M87 중심 포웨히. 포웨히에서의 발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초의 블랙홀 그림자를 촬영한 이후 천문학자들은 그 주변에서 강하게 휘감긴 자기장의 형태, 블랙홀 제트의 모습까지 더해가며 초상화를 더 자세하게 완성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블랙홀에는 많은 비밀이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과연 한 점에 불과한 블랙홀이 정말 회전을 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최근 그와 관련해 놀라운 단서가 발견되었다.
점에 불과한 블랙홀이 회전하고 있다는 더 직접적인 관측 증거가 발견되었다.
태양계 탐사선들은 가끔 지구나 목성 등 여러 행성의 중력을 빌려 궤도를 틀고 속도를 얻는다. 이런 방식을 플라이바이(fly-by)라고 한다. 그런데 플라이바이 과정에서 탐사선의 속도가 예상보다 살짝 더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이상한 차이가 발견됐다. 이건 탐사선이 스쳐지나가는 행성 역시 가만히 있지 않고 자전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행성의 중력으로 인해 주변 시공간이 움푹 파인 상황에서 행성이 자전하면서 그 주변 시공간을 꼬집듯이 끌고 갈 수 있다. 그래서 자전하는 행성 주변의 시공간은 가만히 있는 행성 주변보다 미세하게 더 왜곡되고 휘어진다. 이로 인해 탐사선이 그 곁을 지나갈 때도 속도가 변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회전하는 질량 덩어리 주변 시공간이 더 꼬여 들어가는 현상을 ‘프레임 드래깅(frame-dragging)’, 일명 틀 끌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주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시공간을 왜곡하고 구멍을 뚫어버리는 블랙홀 주변에서도 이런 징후를 포착할 수 있을까?
사실 블랙홀이 정말 회전할지를 둘러싸고 최근까지도 논란이 많았다. 우주의 모든 별과 행성은 특정한 방향으로 자전을 한다. 그런 별들이 중력 수축해서 만들어지는 (항성 질량) 블랙홀 역시 자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수축하면서 회전 반경이 더 작아지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자전해야 한다. 나아가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 역시 아주 빠른 속도로 자전할 거라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의 회전 여부를 확인하는 건 어렵다. 블랙홀은 표면이 없다. 블랙홀 자체의 크기도 0이다. 모든 질량이 한 점에 모여 있다. 원래 회전하는 무언가가 아주 작게 수축하면 당연히 그 회전 속도가 빨라져야 하지만, 동시에 너무 작아져서 아예 점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은 블랙홀의 회전 여부를 선뜻 판단하기 어렵게 만든다.
결국 블랙홀이 정말 돌고 있을지 가만히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간접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블랙홀 자체의 회전은 볼 수 없으니, 블랙홀 주변 시공간이 블랙홀의 회전으로 인해 얼마나 더 휘어지고 꼬집혀 있는지, 바로 프레임 드래깅 현상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M87 중심 포웨히 블랙홀은 아주 강력한 에너지를 토해낸다. 그래서 그 회전축을 따라 길게 제트가 뿜어 나온다. 은하적 스케일로 뿜어 나오는 이 제트의 모습은 이미 오래전부터 관측되었다. 천문학자들은 한국의 KVN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전파 간섭계 어레이, 이탈리아의 전파 망원경까지 총 20개의 전파 망원경을 동원해 블랙홀 제트의 모습을 20년간 관측했다. 그 결과 제트의 방향이 약 11년 주기로 요동치며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치 지구의 자전축이 뒤흔들리는 세차운동처럼 포웨히 블랙홀의 회전축 역시 10도 정도로 뒤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 블랙홀이 빠른 속도로 자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회전하는 블랙홀, 커 블랙홀(Kerr Blackhole)이다. 블랙홀에 과연 회전하는 각운동량이 있을까라는 오래된 질문에 드디어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블랙홀은 회전할 수 있다!
또 다른 재밌는 발견도 이어졌다. 천문학자들은 M87 은하에서 폭발하는 신성이 어디에 주로 분포하는지를 비교했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블랙홀에서 약 5000광년 길이로 뿜어 나오는 블랙홀 제트의 방향을 따라 더 많은 신성이 발견된 것. 은하에 있는 135개 신성의 분포를 비교한 결과 유독 블랙홀 제트의 방향대로 잘 정렬했다. 우연히 이런 어색한 분포가 만들어질 확률은 고작 3%밖에 안 된다. 생뚱맞게도 블랙홀 제트가 신성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크게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 블랙홀 제트는 아주 빠른 속도로 막대한 물질을 토해내는 과정이다. 신성은 진화 속도가 다른 두 별이 함께 짝을 이루는 쌍성에서 많이 발생한다. 둘 중 먼저 진화가 끝난 별이 동반성에게서 질량을 더 빼앗아와 질량이 과하게 무거워지는 순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다. 블랙홀 제트 역시 추가로 별에게 물질을 제공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블랙홀에서 수천 광년 멀리 떨어진 쌍성에게까지 블랙홀 제트로 인해 효과적으로 물질이 공급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두 번째 가설에 더 주목한다. 블랙홀에서 빠르게 뿜어 나온 제트는 그 주변 성간 물질도 빠르게 밀어낸다. 높은 밀도로 쌓인 성간 물질 속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흔히 블랙홀의 제트는 은하가 품고 있는 별의 재료, 신선한 가스 물질을 은하 바깥으로 날려버리면서 은하의 별 탄생을 오히려 저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높은 밀도로 쌓인 성간 물질 속에서 별이 폭발적으로 탄생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 제트의 방향을 따라 쌍성도 더 많이 탄생할 수 있다. 즉 신성이 유독 블랙홀 제트 방향을 따라 더 많이 보인 것은 애초에 어린 쌍성들이 블랙홀 제트의 방향을 따라 많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설명도 완벽하진 않다. 블랙홀 제트는 블랙홀의 회전축을 따라 위아래 양쪽으로 뿜어 나온다. 즉 블랙홀 제트로 인해 불려나간 성간 물질 속에서 더 많은 쌍성과 신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반대 방향으로 뿜어 나오는 제트를 따라서도 비슷하게 더 많은 쌍성과 신성이 발견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분석에 따르면 사진 속 선명한 제트의 방향을 따라서만 신성이 많이 확인될 뿐, 정반대 방향에서는 딱히 신성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신성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블랙홀 제트가 은하 속 신성 폭발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주 신박하다. 게다가 관측적인 증거를 통해 이런 주장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성의 폭발이 쌍성 자체뿐 아니라 주변 블랙홀이나 성간 물질 등 외부 요인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우주론에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까지의 거리를 잴 때 천문학자들은 그나마 밝게 폭발하는 신성과 초신성을 표준 잣대로 활용한다. 이 방법에는 거리와 우주의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신성과 초신성이 비슷한 수준으로 밝게 폭발할 것이라는 오래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같은 은하에 있는 중심의 블랙홀 제트까지 신성의 활동과 빈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앞으로 신성, 초신성을 활용한 우주론 연구에서 더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천문학자들은 블랙홀 제트의 방향과 신성의 빈도·분포 사이에 뚜렷한 관계가 존재하는지, 다른 은하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이번에 발견된 흥미로운 분포가 아주 희박한 우연으로 M87 은하에서만 벌어진 것인지, 아니면 거대하고 난폭한 블랙홀을 품은 은하들 대부분이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인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2019년 M87 은하 중심 포웨히 블랙홀의 초상화를 처음 완성했을 때 천문학자들이 드디어 블랙홀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그것은 블랙홀의 모든 비밀이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블랙홀의 새로운 비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제 겨우 블랙홀의 어설픈 초상화를 그렸을 뿐, 진짜 정체에는 아직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했다.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3-06479-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21-01506-w
https://ui.adsabs.harvard.edu/abs/2023arXiv230916856L/abstrac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
[사이언스] 제임스 웹, '적색 초거성'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다
·
[사이언스] 우주 나이가 138억 년이 아니라 270억 년이라고?
·
[사이언스] 제임스 웹이 오리온성운에서 포착한 '점보'들의 비밀
·
[사이언스] 유클리드 우주망원경 첫 관측사진 공개, 과연 뭘 담았나
·
[사이언스] 허블 우주망원경에 찍힌 20만 광년 길이 형체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