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재계와 금융권 반응은 ‘모두 윈윈(Win-Win)한 거래’라는 평이 나온다. 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은 “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잘 털었다”는 평이, 하림그룹 안팎에서는 “승자의 저주는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본계약을 놓고 우려감도 적지 않다. 총자산 17조 원 규모의 하림그룹이 25조 원이 넘는 HMM을 인수하다 보니 자금 조달과 세부 계약 과정에서 채권단과 입장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하림 낙점된 배경 살펴보니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18일 보유 중인 HMM 주식 3억 9879만 주(57.9%)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그룹·JKL컨소시엄을 낙점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파트너스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HMM 인수전에 뛰어든 하림그룹은 6조 4000억 원가량을 적어냈다. 인수전에 참여한 동원그룹 측이 적어낸 인수가보다 수백억 원 더 써낸 덕분에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됐다.
팬오션을 앞세운 인수 계획이 높은 평가를 받은 부분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선박 등을 활용한 자산 유동화와 영구채 발행 등을 통해 팬오션만으로 3조 2500억 원 수준의 자체 인수 자금 조달 계획을 제시했다고 한다.
인수 작업이 종료되면 하림그룹은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과 함께 국내 1위·세계 8위 컨테이너선사 HMM까지 거느리게 된다. 재계 순위도 27위에서 10위권 초반으로 뛰어오를 전망이다.
#7조 쏟아부은 산은 “잘 털었다” 평가
HMM은 해운 업황 악화에 따른 경영 악화로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다 2016년 이후 산은 관리하에 들어갔다. 그동안 산은 등이 투입한 공적 자금은 7조 원가량. 몇 차례 처분하고자 했지만 시장이 좋지 않아 실패했다. 매각이 늦어질수록 공적 자금 회수도 차질이 불가피했던 터라 산은은 “잘 털었다”는 분위기다. 실제로 올해 3분기 HMM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7% 급감했을 정도로 최근 해운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정도면 성공’이라는 평이다.
이번 계약 과정에 정통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 입장에서는 하림과 동원의 경쟁 분위기 속에 흥행은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가격에 잘 털었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산은은 향후 세부 계약 조건에 대한 협상을 거쳐 하림그룹과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내년 상반기 중 거래를 종료할 계획이다.
#하림 “자금 준비 이중삼중…우려 없다”
하림그룹에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증권가에서는 ‘HMM의 실적 개선 기대감’을 더 높게 본다.
신한투자증권은 20일 보고서에서 “수에즈 운하를 우회하는 선사들이 늘어나면서 선복량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이슈에 따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며 “HMM의 실적 체력은 신조선을 인도받고 디얼라이언스에 정식으로 가입하며 개선됐다. 과거보다 경쟁하는 해운사 수가 줄어들고 혹한기를 날 현금도 쌓아두고 있다. 시장 우려만큼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고 내다봤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도 승자의 저주 우려에 대해 “당연히 우리가 잘해야 한다. 국적 선사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자금 준비를 이중삼중으로 안 하고 있겠느냐. 자금 우려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인수 성공 시 HMM에 쌓여 있는 사내 유보금이 하림그룹에 큰 메리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쌓여 있는 유보금이 10조 원이 넘기 때문. 2021년 말 기준 8343억 원이었던 유보금은 코로나19로 인한 해운업 호황으로 2년 만에 10조 원 가까이 늘었다. HMM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이익잉여금(사내유보금)은 10조 6585억 원에 달한다.
#10조 유보금을 인수자금 회수에 쓸 가능성도
이 때문에 하림이 인수 후 배당 등을 통해 유보금을 HMM 인수자금 회수에 쓸 가능성도 제기된다. HMM이 인수자금 마련에 문제가 생겨 유보금을 인수금융 이자 등에 사용하다가 탕진할 경우 HMM은 다시 흔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하림그룹은 입찰 과정에서 채권단이 보유 중인 1조 6800억 원 규모의 잔여 영구채에 대해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을 3년간 미뤄달라’고 요구했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채권단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하림의 HMM 지분율은 57.9%가 유지돼 3년간 매년 2895억 원까지 배당받을 수 있었다. 하림그룹은 이 밖에도 본입찰 과정에서 현금배당 제한 등 주주 간 계약 내용의 유효 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달라고 요청했다.
채권단이 이를 모두 거부했지만,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본계약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내년 상반기 해운 업황이 더 악화될 경우 하림그룹 측에서 다시 ‘영구채 전환 3년 보류’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지난 19일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림그룹의 자산 규모는 HMM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는다. 하림이 인수 비용을 충당하려다 HMM을 부실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고,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도 “내년부터 해운업계가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기업이 과연 살려낼 수 있겠느냐”고 우려했다.
앞선 금융당국 관계자는 “하림그룹도 그렇고 동원그룹도 그렇고 이번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이 모두 진심이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림그룹과 빠르게 계약을 마무리하는 것이 내년 초 가장 중요한 산은의 미션 중 하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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