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언젠가부터 넷플릭스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기대작들이 공개될 때면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곤 한다. 기대만큼의 만족감을 얻은 작품도 물론 있지만,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은 적도 적지 않기 때문. 12월 22일, 파트 1을 공개하는 ‘경성크리처’는 박서준과 한서희라는 대세 배우의 만남과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의 강은경 작가와 ‘스토브리그’의 정동윤 감독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그러나 이름값만큼 작품의 퀄리티가 좋은가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적어도 파트 1의 7화 중 언론 시사로 공개된 6화까지 보고 난 느낌은 그렇다.
‘경성크리처’는 1945년 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으며 그만큼 시대의 어둠이 가장 짙었던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배경으로 생존이 전부였던 두 청춘을 내세운다. 경성 최고의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이자 경성 최고의 정보통인 장태상(박서준)은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경무국 이시카와 경무관(김도현)에게 잡혀가 고문을 당한다. 사실 이시카와 경무관이 장태상을 잡아온 이유는 사라진 자신의 애첩 명자를 찾아내라는 것. 벚꽃이 지기 전까지 찾아내지 못하면 장태상의 모든 재산을 모두 빼앗겠다는 협박에 장태상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 태상은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는 토두꾼(실종된 사람을 찾는 사람) 윤채옥(한소희)과 그의 아버지 윤중원(조한철) 부녀를 만난다. 10년째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채옥과 어떻게든 명자를 찾아야 하는 태상의 목적이 얽히면서 이들의 행선지는 의심의 근원지인 옹성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경성크리처’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그로 인해 굴곡을 겪는 청춘을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많은 작품들이 오버랩되는 작품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목에서부터 강조하는 ‘크리처’인 괴물을 등장시킨다는 건데,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나 얼마 전 시즌2를 선보인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등 여러 크리처물을 접한 대중도 일제강점기 시대의 크리처물은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중국 하얼빈 일대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자행했던 일본 관동군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옹성병원의 실체도 시대적 배경을 잘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크리처물에서 괴물이 제 몫을 다한다지만, 그 외 인간들이 받쳐주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사랑에 빠지는 괴물처럼 괴물에게 엄청난 인격을 부여한 것도 아닌데.
‘경성크리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이 평면적이고 헐겁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그 캐릭터들의 행동에서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태어나보니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였기에 생존만이 목적이었던 장태상은 ‘조선판 개츠비’처럼 묘사된다. 그러던 그가 모든 것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고, 그 와중 첫눈에 매료된 채옥과의 만남으로 향한 옹성병원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현실에 눈을 뜨고 성장한다.
자신의 안위와 쾌락에 몰두하며 시대의 아픔과는 궤를 달리하던 청춘이 이성과의 접촉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드라마 ‘경성스캔들’이나 영화 ‘모던보이’ 등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것이다. 그러나 장태상의 성장 과정은 그리 매끄럽게 묘사되지 않는다. “나 장태상이요”를 외치던 능글맞은 남성에서 기어코 시대의 아픔에 눈을 뜨는 인물로의 변화가 그리 쉬운 연기는 아니겠지만, 이미 여러 전작들에서 그 어려운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 것을 보아온 대중에겐 박서준의 연기가 몹시 미흡하게 여겨질 터다. 물론 박서준의 잘못만은 아니다. 불협화음으로 여겨질 만큼 ‘톤 앤 매너’가 조화롭지 못한 탓이다.
친일파 집안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몰래 독립운동에 투신 중인 권준택(위하준) 캐릭터는 더 우울하다. 장태상의 친구인 준택은 태상이 조선의 청년으로 그 좋은 머리와 그 많은 돈을 가지고도 독립운동에 전혀 뜻이 없는 것을 시시때때로 힐난하는데, 그런 인물의 신념이 흔들리는 과정을 그리면서 그 어떤 고민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 건 문제 아닌가. 캐릭터가 그러하니, 그를 맡은 배우의 연기에서도 고뇌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소희의 비주얼은 여전하고, 안면 부상을 입을 만큼 온몸을 내던진 고난도의 액션신을 소화한 노력도 돋보인다. 그러나 깔아 놓은 판이 부실하니 그 안에서 뛰놀 수 있는 여지도 적을 수밖에 없다. 극의 흥미를 돋워줄 조연들도 마찬가지. 남편의 애첩을 옹성병원으로 빼돌린 귀부인 마에다 유키코(수현), 탐욕과 집착으로 괴물을 만들어낸 가토 중좌(최영준), 금옥당의 일을 돕는 나월댁(김해숙)이나 갑평(박지환)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누구에게도 큰 흥미가 일지 않는다. 아주 적은 시간 동안 얼굴을 비춘 채옥의 엄마를 맡은 강말금의 눈빛은 인상적이지만 그 이후로는···.
언론 시사에서 공개하지 않은 7화와 내년 1월 5일 공개될 파트 2가 있긴 하지만, 6화까지 보면서 맞은 뒤통수를 다시 후려쳐서 만족으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 후반부에 괴물과 채옥과의 본격 케미가 선보일 것으로 보이니 그건 좀 궁금하다. 아무쪼록, ‘이런 작품을 못 알아본 내가 잘못’이라고 통렬하게 반성하게 해도 좋으니, 남은 내용에서 반전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넷플릭스 기대작’에 점점 더 흥미가 떨어질 것 같으니까.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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