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2021년 의대생 손정민 씨가 한강에서 실종돼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직후 마련된 추모공간을 서울시가 최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철거에 앞서 추모공간을 만들고 관리해온 이들에게 이해를 구하겠다고 했지만, 의견 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하천법에 의거해 조치”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이달 초 고 손정민 씨 추모공간의 철거 계획을 공지했다. 추모공간 맞은편에는 “손 씨의 추모 등을 위한 각종 동산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자는 정해진 기간(12월 20일)까지 해당 동산을 자진 철거하시기 바라며, 해당 기간까지 조치가 없는 경우 하천법 제33조 및 69조에 의거, 하천관리청에서 조치할 예정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자체 철거하도록) 다른 부서에서 해결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시간이 지체되다 보니 하천법으로 처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 씨 추모공간은 사건 발생 직후인 2021년 5월께 조성됐다. 초기에는 추모객이 꽃을 가져다 놓는 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손 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네이버 카페 ‘보이스 오브 트루스(voice of truth)’ 회원들을 중심으로 공간이 관리되는 듯했다. 이 카페에서는 회원들끼리 실시간으로 추모공간 상황을 공유하거나, 어떻게 정비했는지 등의 소식을 수시로 공유했다.
지난 18일 방문한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 손 씨의 추모공간에는 손 씨 얼굴이 담긴 현수막과 꽃다발 등이 놓여 있었다. 조화와 생화가 섞여 구성된 화단은 고르게 정돈돼 있었다. 화분에는 ‘진실 규명’, ‘힘내자’, ‘생일 축하’ 등의 글귀가 적힌 리본이 달려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누군가 놓고 간 눈사람 장식 대여섯 개도 자리했다. 손 씨 관련 기사와 유족이 작성한 글은 눈이나 비에 젖지 않게끔 유리 사이에 끼워져 있고, 바로 밑에는 탄원서 우체통도 있었다. 삽, 비료, 트레이 등 화단 정비에 필요한 장비도 추모공간 뒤편에 놓여 있었다.
#“존치” vs “철거” 시민들 의견은?
한강공원 측은 2021년 말에 한 차례 추모공간을 철거하려고 했다. 불법 점용인 데다, 이 공간이 공포심을 유발한다며 민원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가 공간을 만들고, 간헐적으로 집회 신고도 됐기에 쉽게 철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공원 이용객들로부터 철거를 요청하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접수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이번에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추모공간을 바라보는 공원 이용객들의 목소리는 엇갈렸다. 인근 주민 A 씨(63)는 “철거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시민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공간이지 않나. 있을 만큼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도 오래 있으면서 오히려 문제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B 씨는 “유가족을 생각하면 놔두는 것이 맞지만, 환경적으로나 공익적으로나 한강공원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철거 안내 현수막과 추모공간을 사진 찍으며 “당연히 철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추모공간의 존치를 바라는 이들도 강경해, 미래한강본부 측과의 대립이 예상된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공지 이후 서울시 응답소를 비롯한 여러 곳으로 스무 건이 넘는 추모공간 철거 반대 민원이 접수됐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카페 ‘보이스 오브 트루스’ 회원들로 추정된다. 이 카페의 ‘추모공간 철거 저지 관련’ 게시판에는 철거 공간 존치 민원의 답변 내용, 철거 통고 관련 법적 자문을 검토한 내용 등이 공유되고 있었다. 방문객들에게 추모공간 존치와 관련해 의견을 묻고 찬반 비율을 언급하는 내용도 있었다.
#추모공간 관련 법령 부재…무단점유 후 철거 반복
서울시 관계자는 “추모공간을 안 좋게 보는 시민들도 많은 만큼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천법에 무단점유는 고발 처분과 1년 이하 징역이 가능하다고 명시됐다”며 “존치 민원을 낸 이들 가운데에도 공간을 조성했다고 나서는 이가 없어 사실상 공간은 차지해놓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경찰 수사 등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서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시는 21일 한강공원 반포안내센터에서 민원인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추모공간 조성과 관련한 다툼이 반복되는 것은 관계 법령이 없어서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합의해야만 문제의 소지가 없는데, 이마저도 규정된 절차가 없다. 통상 합의가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 그 장소에 집회를 신고해 일시적으로 점유하거나 특별법 제정 등으로 넘어가게 된다. 집회 신고 역시 엄밀히 말하면 공간을 점유하는 것에 대한 승인은 아니다. 이에 대부분 지자체에서 추모공간을 불법시설물로 규정한 후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변상금을 부과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합의가 이뤄지곤 한다.
다만 관련 법령 제정을 두고는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뉜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추모공간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추모공간의 규모나 기간은 어떻게 할 것인지, 사안마다 기준을 다르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지자체별로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법보다는 조례로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에 의거해 사고를 예방해야 할 일이지, 이후 절차를 법적으로 다루는 것은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초영
기자
choyou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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