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을 찾은 것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에 따라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였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윤 대통령은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부산의 글로벌 거점화를 위한 방안으로 가덕도 신공항 개항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제안했다.
잠시 주요 현안에서 밀려난 듯 보였던 KDB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부산에 선발대를 보내는 등 본격적인 부산 본점 이전을 추진해왔지만 국회라는 변수에 막혀 있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발언을 명분 삼아 ‘민주당’에 협조를 요구했는데, 민주당은 부산 지역구 의원들의 입장과 당 차원의 입장이 같지 않아 난감한 상황이다.
#대선 공약이 총선 공약 되나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정부 출범 후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을 임명했고, 금융당국과 강 회장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특히 부산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기능을 옮기는 모델로 방향을 정하면서 노조의 반대는 더 거세졌다.
그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꾸준히 부산 이전을 지시했다. 금융당국 안팎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이 크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다닐 때 강석훈 산은 회장이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자리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을 챙겼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후 싸늘해진 지역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부산 산은 이전 카드는 다시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6일 “비약적 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모든 국토를 촘촘하게 빠짐없이 활용해야 한다”며 가덕도 신공항 개항·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부산항 북항 재개발 등 현안사업에 대한 차질 없는 추진 의지를 밝혔다.
#노조와 민주당의 입장 차이가 변수
여소야대 국회 구조 속에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이다. 산업은행법 개정안에 명시된 본점 소재지를 손봐야 하기 때문.
그동안에는 여야 간 이견이 분명했다. 지난달 21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관련 사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노조 등 직원들과의 대화를 포함한 노사 협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반대했다. 노조는 대선 공약으로 부산 이전이 등장한 후부터 지속적으로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노사 협의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다시 산은의 부산 이전을 언급하면서 정치권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엑스포 유치 실패를 산업은행 부산 이전으로 만회하려는 여당의 전략과,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줄 수만은 없는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이 분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국민의힘 부산시당 수석대변인이자 산업은행 부산 이전 추진단장인 김희곤 의원은 8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기업인들과 함께 부산 국제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은 것을 비꼬고 나섰다”며 “민주당은 떡볶이 타령 그만하고 산은법 개정부터 협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지난주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법률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서한을 민주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에 직접 전달했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은행 노조 측이 이전 반대 의사를 강하게 표명하면서 민주당 역시 뚜렷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총선이 다가올수록 부산 지역구 의원이나 출마 희망자들이 ‘찬성’을 내비치며 “당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책임 무마에 산은을 이용하지 말라”는 산업은행 노조의 외침이 총선 앞에서 작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부산 지역구 의원들은 부산 본점 이전을 담은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부결이 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본다”며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금융 공기업 관계자는 “산은이 제조업체도 아니고, 금융 공기업 하나가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지역 활성화 효과를 내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지금은 총선을 앞둔 ‘정치의 시간’인 만큼 산은 이전 여부는 부산 민심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판단에 달린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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