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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 먹기' 잡으려다 '필요 예산'까지 날렸나…R&D 예산 삭감 후폭풍

윤석열 정부, 성과 분석 없이 일괄 삭감으로 공세 빌미를 제공

2023.12.08(Fri) 15:06:29

[비즈한국] 윤석열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5조 원 이상 대폭 깎았다. 정부는 R&D 예산이 여러 분야에 나눠 먹기 식으로 배분되었다며 이를 정비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 투입하는 예산을 늘린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는 R&D 예산은 올해보다 16.6% 줄이면서도 첨단 산업에 대한 R&D 예산은 20% 넘게 늘렸다. 첨단 산업을 지원해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내겠다는 의도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9월 25일 국회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기존에 진행되던 R&D 사업 예산들을 일괄적으로 삭감하면서 야당의 공세 빌미는 물론 과학계의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R&D 투자로 적지 않은 성과가 나온 사업들도 예외 없이 삭감된 데다, 예산이 늘어난 일부 첨단 산업의 경우 법이 정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민간 기업들도 투자를 확대 중인 첨단 산업에 정부가 투자를 늘리느라, 정작 정부 지원이 없으면 위기에 몰릴 수 있는 산업을 외면하는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2024년도 예산안 규모를 56조 9000억 원으로 올해(638조 7000억 원)와 비교해 2.8% 늘렸다. 하지만 R&D 예산은 25조 9000억 원으로 올해(31조 1000억 원)보다 5조 2000억 원(16.6%) 줄였다. R&D 예산이 감소된 것은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전체 R&D 예산을 줄였지만 첨단 산업에 대한 R&D 예산은 늘렸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AI와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 플랫폼 등을 4대 고부가가치 첨단 서비스 분야로 선정하고 올해보다 22.2% 늘린 4조 4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미래 국가를 먹여 살릴 산업들에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쓰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런 R&D 예산 편성은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야당은 물론 과학계의 비판을 받으면서 예산안 자체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내년도 R&D 예산을 증액해 단독 처리하는 등 정부 예산안에 강하게 반대하면서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겼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의 R&D 예산 감액 등을 비판하면 정부·여당과 합의가 안 될 경우 민주당이 마련한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지적대로 나눠 먹기 식으로 진행되던 R&D 예산을 수정할 필요는 있었지만, 내년 예산을 보면 성과에 대한 분석 없이 일괄 삭감이 이뤄지면서 공세 빌미를 제공했다. 국회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ICT) 신제품·서비스 개발을 희망하는 중소·중견기업을 돕는 ICT R&D 혁신바우처 산업의 경우 2024년 예산이 올해 382억 원보다 무려 95.2%나 깎인 19억 원 배정됐다. 바우처 지원을 받은 중소·중견기업의 사업화 성공률이 55.8%(2022년)로 성적이 좋았던 점을 감안하면 예산 대폭 감액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 중소·중견기업의 R&D를 지원하는 우수기술연구센터(ATC) 사업의 경우 정부 지원보다 사업화 금액이 2.37배나 높을 정도로 여러 R&D사업 중 성과가 우수했음에도 2024년 예산이 304억 원으로 올해 811억 원보다 62.5%나 삭감됐다. 글로벌 중견기업육성 사업 역시 정부 지원 대비 사업화 금액이 3.58배나 많았지만 예산은 올해 55억 원에서 2024년 2억 원으로 95.6%나 줄었다. 

 

또 정부가 예산을 신규로 투입하는 일부 첨단 산업의 경우 법이 정한 예타 없이 예산이 편성됐다. 국가재정법(38조)에 따르면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R&D 사업은 예타 조사를 통해 타당성을 검증받은 후 추진해야 한다. 그런데 2024년 예산안에 신규 R&D 사업으로 들어온 전자부품산업기술개발 중 반도체는 총 정부 지원금이 394억 원, 디스플레이는 352억 원인데도 현재 예타를 신청한 초기 단계다. 정부 지원금 1987억 원이 투입되는 소재부품기술개발(이차전지)은 예타가 아직 진행 중인 상태다. 자칫 대규모 예산 투입 후에 성과 부족 등으로 타당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AI와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도 중요하지만 자칫 그 외 산업을 도외시하면서 산업 간 불균형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정부 지원이 필요한 산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서 중소·중견 기업이 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현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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