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아이폰 성능 저하를 두고 애플과 아이폰 사용자 간에 벌어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항소심에서 법원이 원심을 엎고 사용자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가 ‘사용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사용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 애플은 오는 9일 경기도 하남시에 국내 여섯 번째 애플스토어를 개장하며 한국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러 나선 가운데, 이번 소송 결과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서울고등법원 제12-3 민사부는 6일 애플과 아이폰 사용자 간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애플인코퍼레이티드(애플 본사)는 원고(사용자)에게 각 7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라며 “나머지 항소와 애플코리아에 대한 항소는 기각한다”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업데이트로 인한 기기 손상은 영구적인 피해가 아니고, 사용감 개선을 위해 시행한 것이므로 재산상 손해는 무죄로 봤다. 다만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에 정보 불균형과 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정신적 고통은 보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이폰 사용자인 원고는 iOS 업데이트가 당연히 기기 성능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지, CPU나 GPU를 제한할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애플은 소비자인 원고에게 업데이트 설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고지해야 했다. 성능 저하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라며 “소비자가 선택권과 자기 결정권을 상실했기 때문에 애플은 보상 의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보 제공 의무는 본사에 있으므로 애플코리아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애플이 전부 무죄를 받았던 1심 판결을 뒤집은 결과다. 더불어 업데이트로 인한 성능 저하 소송에서 처음으로 애플의 귀책이 인정되면서 추가 소송이 이어질지 주목된다.
애플과 아이폰 사용자 간의 소송전은 2017년 아이폰의 전원 꺼짐 현상을 막기 위해 배포한 업데이트가 발단이 됐다. 아이폰 6와 7 시리즈에서 진행한 업데이트(iOS 10.2.1, iOS 11.2) 이후 기기 이상 현상이 나타나면서다. 업데이트 이후 국내외 아이폰 사용자 사이에서 기기가 느려지는 등 성능이 저하했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논란이 커지자 애플은 공지문을 통해 “업데이트를 설치하면 간혹 앱 실행 지연 및 기타 성능 저하를 경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종합하면 배터리 성능이 낮거나 노후 기기일 경우 전원이 꺼질 수 있는데, iOS가 자체적으로 성능을 낮춘다는 것. 발생 가능한 현상에는 △앱 실행 지연 △일부 앱에서 프레임 속도 감소 △희미한 백라이트 등을 명시했다.
성능 저하 사건은 구형 아이폰 사용자가 업데이트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형 기기 구매를 유도한다’는 논란으로 확산했다. 미국, 칠레, 러시아 등 해외에서 소비자와 애플 간에 소송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2018년 3월 6만 3767명(소송 도중 취하 961명)의 아이폰 사용자가 재물손괴, 업데이트 고지 의무 위반, 정신적 피해 등을 근거로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섰다.
애플은 지난 2월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법 제31민사부는 1심 판결에서 성능 저하가 발생했다는 객관적인 감정 결과가 없으며, 업데이트가 전원 꺼짐 현상을 막기 때문에 유용하고, 성능 저하 내용을 고지하지 않은 점이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양측이 제출한 자료의 증거 부족도 주요 판결 이유 중 하나다.
아이폰 사용자를 대리한 법무법인 한누리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원고 측이 애플에 사건의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문서(업데이트를 적용한 아이폰의 성능을 분석한 서류 등)를 제출하라고 문서제출명령을 발령했지만 애플이 불응했다”라며 “법원이 이를 제재하지 않고 원고 측의 입증 부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라고 설명했다.
1심 패소 후 사용자 7명은 ‘임팩트 소송’으로 항소를 제기했다. 임팩트 소송이란 제도 개선, 사회 변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 소송을 의미한다.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법원은 양측의 조정에 나섰지만 결렬됐다. 항소심 판결도 당초 11월 22일로 예정됐으나 12월 6일로 미뤄졌다. 11월 9일 조정기일에서 불성립으로 결론이 나면서 변론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한누리 측은 “조정기일에서 애플이 피해자 집단 전체에 일정 금액의 배상금을 책정하고, 적절하게 증빙한 피해자의 신청에 따라 배상금을 지급하는 화해안을 논의했지만 애플이 응하지 않아 조정안이 결렬됐다”라고 밝혔다.
항소심에서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온 배경에는 업데이트 시기가 자리했다. 김주영 한누리 변호사는 “사용자는 업데이트한 시기가 애플이 성능 저하 내용을 고지하기 이전이라는 점을 증명할 수 없었다. 업데이트 내역과 시기는 애플 본사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1심에선 입증할 자료가 없어 패소했지만, 2심에서야 애플이 자료를 제출하면서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1심은) 다국적 기업이 증거의 우위를 이용해 배상 책임을 면한 것이다. 국내 소송제도가 피해자 구제에 취약하다는 점을 악용한 셈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에게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애플이 상고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좋은 선례로 남도록 판결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항소심에서 애플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사용자가 보상을 받을 길이 열릴지 주목된다. 애플은 2020년 미국 소비자와의 소송에서 인당 25달러(약 3만 2800원), 2021년 칠레 소송에선 총 25억 페소(약 37억 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업데이트의 결함이나 위법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애플은 이번 판결에 대해 “애플은 고객의 제품 업그레이드를 유도할 목적으로 제품 사용 경험을 의도적으로 저하하거나 제품의 수명을 단축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다”라며 “애플의 목표는 언제나 고객이 사랑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고객이 아이폰을 최대한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한편 애플이 국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는 가운데 이번 판결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눈길을 쏠린다. 애플은 오는 9일 국내 여섯 번째 애플스토어인 애플 하남의 오픈을 앞둔 상태다. 지난 3월 말 애플 강남을 개장한 데 이어 약 8개월 만의 추가 개점이다.
심지영 기자
jyshim@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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