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덕질’ 하던 케이팝 팬들이 ‘기후활동가’가 됐다. 케이팝 팬들은 더 이상 ‘소비만’ 하지 않는다.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 이야기다. 케이팝 팬덤이 모여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에 기후행동을 촉구하자, 엔터사들은 팬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변화를 요구해 결국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 중심에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가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기후활동 참여
일본 도쿄외국어대 국제사회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다연 활동가(21)는 2023년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된 유일한 한국인이다.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라는 슬로건으로 활동하는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2021년 이다연 활동가가 케이팝 팬들과 만든 기후 행동 단체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케이팝팬들이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단체’를 조직한 첫 사례다. 앨범 쓰레기를 모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반환’하거나 산림파괴를 막기 위해 ‘아미 숲 입양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블랙핑크 멤버들이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명품브랜드의 ‘기후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BBC는 “이다연은 케이팝포플래닛을 통해 기후 위기에 맞서도록 전 세계 K팝 팬들을 결집한다. 2021년 출범 이후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레이블과 스트리밍 서비스에 기후 대응과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의 이행을 요청해왔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된 한국인은 2022년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2020년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 2019년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 4명뿐이다.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다연 활동가는 “처음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놀랐다. 당황스러우면서도 감사하다.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가들과 케이팝 팬들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케이팝 팬들이 만들어낸 케이팝 행동이 영향력 있다고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다연 활동가가 ‘덕질’을 시작한건 중학생 때다. 여느 한국 학생들처럼 아이돌을 좋아했다. 이 활동가는 “처음에는 비스트가 시작이었다. 이후에도 매우 많은 그룹들의 팬이었다. 좋아하는 걸그룹도 많다. 지금은 에스파를 가장 좋아한다”며 웃었다.
이어 그는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진 건 2019년부터다. 고등학생 때 신문기사를 자주 읽으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됐다. 기후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하는 걸 체감했다. 미래 세대를 살아갈 청년으로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소년 기후행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다”고 말했다.
이다연 활동가는 여기서 만난 인도네시아 기후활동가이자 케이팝팬 누를 사리파 씨와 2021년 3월 ‘케이팝포플래닛’을 결성했다. 기후위기와 케이팝의 결합이다. 벌써 활동가만 8명, 다국적 앰버서더가 15명에 달한다. 대부분 20대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케이팝포플래닛에 참여하는 세계 각국의 팬들도 늘었다. 이 활동가는 “케이팝 팬이자 기후위기에 관심 있는 팬들이 캠페인에 참여한다. 각자 좋아하는 팬덤이 있는 이들이 모여 활동한다. 국적으로 보면 한국, 인도네시아 사람이, 팬덤으로는 BTS의 ‘아미’와 블랙핑크의 ‘블링크’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대응은 이미 케이팝 ‘팬덤 문화’였다
케이팝과 기후위기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다연 활동가는 “사실 케이팝포플래닛이 생기기 전부터 케이팝 팬들은 이미 기후 행동을 하고 있었다. 숲 조성 프로젝트나 야생동물 입양 등은 원래부터 케이팝 팬들이 하던 운동이다. ‘기후 행동’이라고 정의하지 않았을 뿐 팬들은 이미 케이팝을 통해 더 큰 변화를 만들고 사회 전체를 긍정적으로 바꾸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다연 활동가는 케이팝 팬덤의 이런 문화를 결집했다. 엔터테인트먼트 회사나 케이팝 아티스트가 광고하는 회사에 직접적으로 변화를 요구했다. 이 활동가는 “플라스틱 앨범을 모아 엔터사들에 전달한 후로 기업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JYP는 한국 엔터사 최초로 한국형 RE100(사용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을 달성해 인증서를 받았다. YG는 올해 블랙핑크 콘서트에서 탄소 배출량을 측정했다. 앞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논의 단계까지 가야겠지만, 굉장히 유의미한 변화라고 본다. 이렇게 한 단계씩 밟아나가면 엔터사업이 환경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바뀔 거라 본다”고 말한다.
케이팝포플래닛의 타깃은 ‘아티스트’가 아닌 ‘기업’이다. 이다연 활동가는 케이팝 산업이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이미 아티스트들은 많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블랙핑크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COP26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BTS는 UN에서 기후위기, 환경문제 등에 대해 연설했다. 에스파 역시 2022년 UN에서 지속 가능성에 대해 연설했다. 이 외에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환경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했다. 그러나 엔터 산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건 역시 엔터사다. 기업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말보단 실질적인 노력 보여야”
최근 이다연 활동가가 관심을 쏟는 건 ‘현대자동차’다. BTS를 앞세워 친환경 자동차를 홍보하는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석탄회사 아다로미네랄과 알루미늄 공급 업무협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에 케이팝포플래닛과 아미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현대자동차의 그린워싱을 반대한다. 아다로의 알루미늄 제련소 프로젝트에서 철수를 요구한다. 현대자동차의 모두를 위한 밝은 미래를 만드는 여정에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현대자동차도 팬들에 답장을 보냈다. 현대자동차는 “2045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저탄소 원자재 구입 정책으로 아다로미네랄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케이팝포플래닛의 우려에 깊이 공감하며, 아직 구체적인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논의해가겠다”고 밝혔다.
이다연 활동가는 “많은 기업에서 지속 가능성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현대자동차에서도 BTS를 앰버서더로 기용해 지속 가능한 이미지로 광고를 하지만, 석탄발전소를 세우려는 인도네시아 기업과 알루미늄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를 철회하라는 캠페인 이후 현대자동차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 지난 8월경 관계자와 만났다. 당시 우리 캠페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후로 특별한 변화는 없다. 업무협약을 취소하지도 않았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때까지 현대차 캠페인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생각은 쉽지만 행동은 쉽지 않다. 이다연 활동가는 대학교 생활과 케이팝포플래닛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캠페인뿐만 아니라 매일 화상회의도 한다. 이다연 활동가는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게 힘들 때가 많다. 큰 기업들을 타깃으로 활동하다보니 기획하면서도 막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가 캠페인을 한다고 기업들이 과연 바뀔까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 캠페인을 할 때는 엔터사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보수적인 엔터사들과 한국 스트리밍 기업 멜론까지 팬들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있다. 멜론은 2040년까지 무탄소 에너지를 쓰는 데이터센터로 전부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케이팝 팬들의 영향력을 느낌과 동시에 기업에서 이를 고려한다는 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다연 활동가는 “계속 케이팝포플래닛 활동을 해나가면서 케이팝 팬들이 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성숙한 커뮤니티라는 긍정적인 인식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케이팝 팬들과 청년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해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다현
기자
allhye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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