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같은 형태의 거래라도 그 거래에 관여하는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제도적으로 보호를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건설공사 계약에서 발주자와 종합건설사(원사업자) 간에는 원자재 가격이 인상돼도 공사비를 증액하지 않는다는 특별 조항이 유효하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형 건설사 간에 체결한 도급계약에서 턴키계약(일괄수주계약) 등의 명목으로 공사비 증액을 일체 거절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종합건설사(원사업자)와 전문건설사(수급사업자) 간에는 공사비 증액을 배제하는 특별 조항이 하도급법에 위반된다. 이러한 특별 조항을 강요한 종합건설사(원사업자)는 과징금 등 행정상 제재 처분과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종합건설사가 발주자로부터 한 푼도 증액하지 못한다고 해도 전문건설사에 원자재 가격이 인상된 비율만큼 공사대금을 증액해 줘야 한다.
이처럼 같은 건설공사 계약임에도 전문건설사는 보호하고 종합건설사는 보호하지 않는 등 보호의 유무나 정도가 다른 이유는 당사자의 거래상 지위가 서로 같지 않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발주자-종합건설사는 서로 거래상 지위가 대등해 주요 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협상이 가능하나, 종합건설사-전문건설사는 거래상 지위에 차이가 있어 전문건설사가 불공정한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사인 간의 거래임에도 국가가 행정 또는 형사절차로 개입하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인사·노무 분야, 노동법 중 개별적 근로관계 부분이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노사관계를 다루는 집단적 노사관계와 달리, 해고·임금 등을 다루는 개별적 근로관계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경우가 적다. 그러나 해고·임금 등은 근로자 개인은 물론, 이 문제를 직접 처리하는 사용자 측 관계자에게도 심각한 부담이 되고 이 과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국가는 개별적 근로관계에 특별하게 관여한다. 예를 들어 근로자는 임금을 못 받거나 억울하게 해고당하는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노동부에 체불임금을 신고한다. 또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고, 이런 절차에서 임금체불 또는 부당해고를 확인하는 경우 사용자는 형사 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일반적인 거래상 분쟁에선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직접 민사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 발생의 요건을 일일이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개별적 근로관계에서의 분쟁은 국가기관이 나서 조사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잘못이 확인되면 고발하거나 사용자의 잘못을 확인하는 유권해석을 한다.
국가가 근로자를 보호하는 이유는 당연히 근로자의 계약상 지위가 사용자보다 열위에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처럼 근로자의 개념에서 ‘사용 종속성’이 핵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근로자는 사용자의 취업규칙, 인사 명령, 처분에 따라야 한다. 그 결과 근로자가 사용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가가 여러 제도를 통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근로자로서 보호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사람이 근로자여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근로자성’을 결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판례에 따르면 계약 관계의 계속성과 종속성, 종속 노동성, 독립 사업자성, 보수의 근로 대가성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로자성을 판단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정규직으로서 평일에 일정한 시간 동안 지정된 장소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판단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근무시간·장소를 개인이 직접 결정하거나, 대가로 지급받는 금액이 일정하지 않거나, 독자적인 권한과 판단에 따라 업무의 형태를 결정하는 등의 경우에는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임원, 영업사원, 수리기사, 연기자 등의 경우 사실관계에 따라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도 있고 이를 부정하는 판결도 있는 이유다.
이 같은 사건을 직접 접하고 느낀 분쟁의 동향은 다음과 같다. 중소기업의 경우 근로자는 회사에 계속 근무하는 것에 별다른 미련이 없다. 그래서 중소기업 사안에선 해고보다 임금, 수당 등이 분쟁의 대상이 된다. 간혹 해고가 문제 되는 경우가 있는데 경영권 분쟁에서 밀려난 임원, 투자자, 동업자 등이 근로자임을 주장하며 회사에 계속 관여하는 등 주로 예외적인 사례이다.
중소기업은 노동법의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는데 한계가 있다. 임금·연차 등을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는 경우도 많다. 현실적인 이유로 중소기업에는 사원의 퇴직·이직 시 단기간 내 모든 사항을 정리한 후 서로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게 된다.
대기업의 경우, 근로자가 계속 회사에서 근무하기를 원해 상대적으로 부당해고 사안이 많다. 최근에는 근로자도 적절한 법적 조언을 받는 경우가 많고 대기업엔 HR팀이 있으니 부당해고를 다투는 절차가 대단히 치열한 다툼이 돼, 그 과정에서 마치 이혼 사건처럼 인간관계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예를 들어 회사(사용자)는 근로자의 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근로자가 회사에 남아 있으면 회사 동료가 힘들어한다고 주장할 때가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동료 사원의 확인서를 제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고 당사자는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다.
회사는 근로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을 근거로 조사나 수사 등을 받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의 보편화로 근로자가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근로자 보호가 사회적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따라서 회사가 법적으로 만반의 준비를 다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회사의 미래가 ‘사람’에 달려있음을 인지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관행이 자리 잡아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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