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60대 후반 A 씨는 정년퇴임 후 저축해놨던 돈과 퇴직금 등 3억 원가량을 지난 2021년 초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했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저점인 것 같다는 얘기에 투자를 결정했지만 투자 시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다. 투자를 제안했던 은행은 최근 “지금이 가장 저점이고 바닥 같으니 환매하지 마시고 버텨보자”고 얘기했다. 만기는 내년 상반기다. A 씨는 “지금 환매하면 40% 정도 손실이 발생하는데 버티면 20~30% 정도로 손해가 줄어들 것 같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며 국내로 돌아온 60대 중반 B 씨. 10억 원가량의 투자금을 굴리는 B 씨는 생활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가 연계된 ELS에 1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손해 보지 않고 매달 수십만 원이라고 꾸준히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최근 40%가량 손해를 보고 환매를 결정했다. B 씨는 “항셍지수가 계속 하락하는 터라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해야겠다”며 “은행에서 추천해서 투자했는데 내 책임이다 싶어 손실을 감수하고 환매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은행권 불완전판매 여부 촉각
A 씨와 B 씨 사례처럼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를 기초지수로 한 ELS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면서 금융권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특히 판매사 중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불완전 판매 인정 시 배상비율 기준안’을 만드는 것을 검토 중인데,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금감원 등 금융당국이 이를 인정할 경우 금융권이 투자손실 일부를 떠안게 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은행권은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문제가 된 H지수 ELS의 경우 지난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이후 판매된 상품으로, 판매 절차가 까다로웠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적합성의 원칙이 기준”
일단 금감원 측은 “현재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단계”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번 사안만큼은 ‘적합하지 않은 상품은 권유 자체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적합성의 원칙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지난달 28일 이복현 원장은 “(판매사들이) 자필 자서를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해서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으니 소비자 보호를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면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와 적합성의 원칙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매 절차를 다 지켰다고 하더라도, 은행 등에서 투자자에게 “H지수 연계 ELS에 투자하라”고 제안했거나 관련해 내부적으로 판매 권유 가이드라인이 있었다면 은행권에 ‘책임’이 있다는 판단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A 씨 등은 H지수 연계 ELS에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은행 직원의 권유로 투자를 했다. 적합성의 원칙을 기준으로 삼으면 해당 은행이 투자손실에 대해 배상을 해줘야 하는 셈이다. 금융권은 지난 2019년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사모펀드 사태 당시에도 배상기준안을 산정, 금융사가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처리한 바 있다.
#은행권, ‘이복현 변수’에 촉각
그런 가운데 이번 대통령실 개편 및 대폭 개각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총선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되던 핵심 측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유임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 것. 다만 12월 개각에는 포함되지 않고, 이후 12월 말이나 1월 초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총선에 차출되는 안도 거론된다. 총선에는 출마하되, 중량감 있게 총선에 투입되고 그전까지 금감원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업적을 남기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은행권 때리기’에 앞장섰던 이복현 금감원장의 유임이 ELS 사태 후폭풍에 적지 않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이 혁신 없이 돈을 너무 쉽게, 많이 번다는 것이 이복현 금감원장의 생각”이라며 “ELS 사태에도 강한 어조를 드러냈기에, 이복현 원장이 개각에 포함되지 않는 것부터 아예 불출마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해 금융기관들이 많은 대응전략을 검토 중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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