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일본에서 6년째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S는 10여 년간 한국에서 3번, 일본에서 3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S는 여섯 곳의 일터에서 만난 모든 상사 가운데 일본의 첫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Y 과장을 최고의 리더로 꼽는다. 남다른 실력과 성과로 능력을 인정받은 ‘성공적인 직장인’의 롤 모델이어서가 아니다. 고국이 아닌 낯선 땅에서 만난 상사로부터 받은 순수한 공감 덕분에 일을 지속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Y 과장은 남들이 더러워서 하기 싫어하는 일에도 제일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고 자기의 업적을 시시콜콜하게 늘어놓거나 으스대지 않았다. 자기를 낮추면서 능력은 있는 인간적인 사람, 부하직원이 사고를 치고 멍청한 짓을 할 때도, 문제를 제기하며 나대더라도 받아주는 사람. 다음 달 도래할 카드값 고지서 때문에 꾸역꾸역 출근하는 직장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런 리더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힘이 된다.
Y는 한국에 대한 관심은 없었으나 국적도 문화도 다른 부하직원이 새로 들어오자 그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에 한국 드라마도 찾아봤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끊기고 타지 생활의 외로움과 고립감에 S의 우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한글로 ‘힘내라’는 글자를 그려서 건네주었다. S는 그 종이를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볼 수 있도록 현관문에 붙여 두었다고 했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50%에 불과한 일본은 한국 사회보다 학력 차별이 심하지 않다. 하지만 Y는 고졸, 지방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과장 이상의 진급에서 늘 배제되었다. 하지만 사내의 웬만한 다른 관리자들보다 난이도가 높은 전문 자격증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동료와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워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 역시 학력, 지역, 계급 등의 기득권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사람이기에, S의 다름에 대해서도 기꺼이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행동이 몸에 새겨져 있었을 것이다.
Y 과장 덕분에 S는 한국에서 이주해 온 ‘젊은 여성 노동자’로서 자아를 애써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다운 모습으로 일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동일성을 중요시하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다양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도 있었다.
Y의 리더십은 마치 ‘돌봄’과 그 생김이 닮아있다. 실제로도 S는 ‘아빠(보호자) 같은 리더십’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여기에서 보호자, 혹은 아빠라는 단어는 전통적인 한국의 유교 가부장제 속의 위계적인 가족문화에서 드러나는 부모 자식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부적절한 언행으로 직장 내 괴롭힘, 혹은 갑질로 신고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길. (관련기사 직장 내 괴롭힘⑤ ‘가시나’ 잎에 달고 살던 부장이 불러온 나비효과)
돌봄이라는 행위는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는 독립적인 젊은 성인이 도움이 필요한 의존적인 타인(보편적으로 아동, 노인, 장애, 환자 등)에게 일방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외로움이나 고독, 고립감 같은 위태로운 감정을 느낄 때에도 곁에 나를 이해하려 애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정서적인 지지와 함께 돌봄 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제공한다. 돌봄은 누가 누구에게 ‘제공’하는 일방의 행위가 아닌 상호의존적인 행위이며, 서로 간에 돌봄을 주고받는 경험은 우리의 공감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준다. 그리고 닥쳐올 고립의 시대에 행복의 핵심이 되는 ‘관계’를 형성한다.
꼭 그 대상이 생물학적 혈연관계일 필요는 없다. 또한 이러한 돌봄 행위에 굳이 ‘경제’라는 단어를 매칭하면서 돌봄수당 몇 십만원, 새해의 소비 트렌드, 비즈니스 기회창출(=돈 벌 기회)과 같이 특정 개인의 이익이나 천박한 자본의 논리로만 직결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더십이란 무언가를 책임지기에 앞서,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이들을 돌보는 기술과 능력이다. 서로의 다른 모습까지 포함하여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 꼭 이해받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그의 생각과 감정을 느끼고 이해해 보려는 마음, 그것이 ‘돌봄의 리더십, 공감의 리더십‘이다. 그리고 그런 리더십 아래에서는 서로 다른 여럿이 모이더라도 하나의 팀이 되어 서로를 살리는 힘을 발휘한다.
필자 김진은?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직을 합쳐 3000명에 달하는 기업의 인사팀장을 맡고 있다. 6년간 각종 인사 실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비법을 ‘알아두면 쓸데있는 인사 잡학사전’을 통해 직장인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김진 HR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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